재난은 우연히 찾아오는 불행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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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우연히 찾아오는 불행일 뿐인가
[라이프인.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밀양 화재를 통해 본 재난 사회의 구조 / 최희천 (한국열린사이버대 재난소방학과 교수, 한국화재감식학회 이사)
  • 2018.01.30 15:31
  • by 라이프인

어느새 우리의 무의식에서 재난은 무작위로 찾아오는 불행한 일들로 여겨지는 듯하다. 사고 소식을 들을 때 나와 가족들은 그 재난의 희생자가 아님에 안도하면서도,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아픔과 죄책감이 동시에 들기도 한다.

재난으로 이끄는 우연적인 상황이란 우리의 예측 밖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불행한 일들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연적인 상황이란 언제든지 다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2018년 1월26 일 발생했던 밀양 화재를 보면, 여러 조건들이 맞물려 참사로 이어졌다. 응급실의 매트리스와 같이 불에 타기 쉬운 물질들로 가득한 공간,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의 문제, 무리한 증개축과 구조의 변경, 대피에 어려운 실내의 이용현황 등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되어 있었으면 이처럼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했던 2017년 12월 21일의 화재에서도 값싼 건축·설비 재료, 화재를 확산시키는 건축구조와 불법 증개축, 소방설비의 문제, 탈출의 어려움, 기타 판단의 문제 등이 모여 29명을 희생시켰다. 5명의 생명이 희생된 2015년의 의정부 아파트 화재와 21명이 희생했던 2014년의 장성 요양병원 화재 등 우리가 기억하는 다른 재난들도 불행한 상황들이 맞물려 참사를 만들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간의 사례들에서 재난을 만들었던 조건들은 정말로 우연적인 것이었을까? 비슷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재난의 위험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재난의 위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간의 재난들을 들여다보면, 비극적인 상황의 단면들은 확률적인 우연이지만 재난의 조건들은 필연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밀양의 화재도 마찬가지이다.

장성 요양병원 화재로 2018년 6월까지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었지만, 병원은 제외되었던 입법의 미비는 밀양 병원의 화재를 만드는 조건의 하나가 되었다. 밀양 화재의 시작은 천장 속 전기배선 발화가 천장의 스티로폼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제천의 화재도 필로티 천장 전기공사가 값싼 충전재를 태움으로써 확산된 것으로 조사결과가 나왔다. 화재를 확산시키고 대피를 어렵게 하는 건물의 구조 또한 무리한 증개축의 결과로써 화재의 필연적인 조건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형 화재들은 비슷한 상황과 건물들 앞에서 다시 찾아올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 모른다.

재난의 위험이란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서 상존하고 있는 것이고, 사회의 구조를 따라 그물처럼 얽혀 있다. 밀양의 화재는 해당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재난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며, 재난을 만드는 사회적 조건들은 사회 전체의 제도적 결과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재난위험이 높은 것도, 서울보다 지역의 위험도가 높은 것도 재난의 위험은 사회적 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해 그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치부하고 하루하루 살아남았다는 데 안도하고 살 수는 없다. 지난번에는 요양병원이었고, 이번에는 스포츠센터와 중소형 병원이지만, 다음에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 모른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간의 재난들에 있어 우리 사회는 재난이 어디에서 왔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대신, 빨리 해결하고 빨리 잊고 싶어 해 온 측면이 있다. 재난을 만드는 위험들은 편안하고 편리하기에,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변하고 있다.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더 이상은 이러한 요청을 외면할 수 없다.

새롭지만 익숙한 재난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난을 만드는 근원적인 위험들을 억제하거나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선 할 수 있는 일들로는 비상구임을 알 수 있도록 하고 비상구 계단을 치워 놓는다든지,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비상벨이 제대로 울리는지 확인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병원이나 기관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건물 안의 사람들을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고, 실질적인 계획과 반복적인 대피 훈련이 필요하다. 재난 상황에서는 미리 연습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수 있고, 패닉상태에서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는 대피 훈련이라 할지라도 예고 없이 실전처럼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기숙사에서 비상벨이 울리면 샤워하던 채로 나오기도 한다. 소방관들은 사람이 남아 있는지, 대피 도중 비상벨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대피에 지장을 주는 요인은 없는지 등을 확인한다. 실전 같은 훈련의 결과물은 건물 내부의 시설 배치나 대피 계획의 수정에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안전을 개선한다. 미국처럼 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훈련에 실제로 참여한다면, 긴급한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뉴스에서 보듯이, 밀양 현장 6층에서는 요양보호사가 연습한 대로 이불을 적시고 물수건을 만든 덕분에 16명의 환자가 무사할 수 있었는데, 장성 요양병원 화재를 기억하고 훈련에 참여했기에 가능했다. 밀양 병원과 연결된 요양병원에서 94명의 환자를 무사히 대피시킨 것도 불편을 참았던 연습의 힘이다.

지난 해 서울시에서 실시했던 요양병원들에 대한 점검과 같이 위험의 현실을 확인하고 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밀양화재를 계기로 29만개 시설을 점검하려는 국가안전대진단 계획도 현실에 맞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근본적으로는 재난을 만드는 위험의 조건들에 대하여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제도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가 적폐로 지목되었지만, 진정한 적폐는 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를 만드는 우리의 제도이며 현실이기 때문이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일이지만, 국민의 관심이 가장 큰 변화의 원천인 만큼 사회에 주의를 기울이고 감시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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