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끄랑, 제주] 페인트닥터, 내 몸과 지구에 좋은 따뜻한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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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끄랑, 제주] 페인트닥터, 내 몸과 지구에 좋은 따뜻한 빨강
우리가 몰랐던 천연페인트의 세계
  • 2020.07.23 14:32
  • by 전윤서 기자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기, 하계 휴가철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를 피하고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온 스스로에게 충전의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누군가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누군가는 낯선 도시로 향한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만큼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이들이 많다. 이에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 역시 증가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관광지인 제주도를 조금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행을 보다 의미 있게 즐기고 여행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올여름, 제주도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지역, 사회와 연대하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들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라이프인은 제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회적경제조직과 소셜벤처가 운영하는 장소를 소개하고, 제주 지역 사회적경제 분야를 지원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공공기관과 중간지원조직을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봉끄랑'은 가득차다, 풍요롭다, 빵빵하다는 의미의 제주도 방언이다.

 

조소와 건축디자인을 전공한 페인트닥터의 최유라 대표는 졸업 후 공공미술과 커뮤니티아트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2012년 제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제주로 이주해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했다. 최 대표는 이때 생태 미장 워크숍에서 만난 생태 미장 전문가에게서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말에 최 대표는 "제가 그 일을 진지하게 배워보고 난 후 생각해 봐도 될까요?"라고 답했다. 이렇게 최 대표는 한 달 반가량을 생태 미장에 대해 배우면서 생태 미장 기술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최 대표는 해외의 천연페인트에 관해 공부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도료에 의해 생기는 문제를 알게 되었고 모든 사람과 이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해 나갈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 페인트닥터 최유라 대표 ⓒ라이프인
▲ 페인트닥터 최유라 대표 ⓒ라이프인

■ 친환경 페인트?! NO! 천연페인트!

최 대표가 발견한 현대 사회, 도료에 의해 생기는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일반 페인트는 가장 저렴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석유,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을 혼합해 만들어진다. 일반 페인트는 주로 건물 외벽에 칠해지고, 도로의 유도선과 표시용으로 사용된다. 이 페인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벗겨지고 대기 중으로 날아가 미세먼지가 되거나 빗물에 씻겨 내려가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일반 페인트로 칠해진 사무실, 매장, 가정 등 생애 82%를 실내에서 보내는 인간에게 장기적으로 해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친환경 페인트는 환경에 도움이 될까? 최 대표는 "말하자면 일반 페인트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인간에게 해롭지 않은 정도라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시중에 판매되는 친환경 페인트는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의 방출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화학 제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에 덧붙여 최 대표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더욱 엄격한 절차로 친환경 페인트 인증을 받는다. 국내의 친환경 인증 기준은 관용적이라 유해물질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천연페인트는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의 모든 도료를 말한다. 여기에는 단 1%의 석유화합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 원료가 자연에서 얻은 순수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옛날부터 사람들이 사용해오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일정 기간 물에 담가 안정화된 석회 가루 또는 대리석 가루, 모래, 규사로는 원료를 만들고,  우유 단백질(카제인)과 아교, 찹쌀풀로는 바인더로 만들어 점성을 내는 방식으로 천연페인트가 만들어진다. 화합물이 들어가지 않은 천연페인트는 냄새가 나지 않을뿐더러 곰팡이에 강한 페인트, 공기정화 기능이 있는 페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착한 페인트이다. 특히 페인트닥터가 공기정화 그림그리기에 사용하고 있는 페인트는 실험으로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1제곱미터(㎡)로 만들어진 육면체 공간에 천연페인트를 바르고 포름알데히드 가스를 넣은 실험에서 지속해서 가스의 농도가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천연페인트가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일반 페인트와는 다르다. 자연을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땅의 색이라고 했을 때 제주의 땅, 서울의 땅 색이 다른 것처럼 자연에서 온 색은 미묘한 차이를 가진다.  페인트닥터 임범진 기획개발실장은 "인공적인 원료들이 눈을 굉장히 현혹시킨다면 자연에서 나오는 원료들은 새 빨강은 없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한 색이다"라고 설명했다. 

최 대표와 임 실장은 '건강한 삶과 지구를 위한 페인트'를 널리 알리기 위해 소셜아이디어벤처경연대회에 출전해 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2018년 7월, 페인트닥터가 설립된다. 

▲ 페인트닥터 매장 한 켠에 마련된 각종 인증서 및 상장 ⓒ라이프인
▲ 페인트닥터 매장 한 켠에 마련된 각종 인증서 및 상장 ⓒ라이프인
▲ 따뜻한 파스텔톤이 매력적인 천연페인트 ⓒ라이프인
▲ 따뜻한 파스텔톤이 매력적인 천연페인트 ⓒ라이프인

■ 뭐든 잘해야 한다는 생각, 잠시 덜어내 보세요.

유럽, 60%
일본, 30%
한국, 1% 미만

이 수치는 국가마다 천연페인트를 사용하는 비율이다. 유럽의 경우 전체 건축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천연페인트이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은 30% 수치를 보이고, 한국은 안타깝게도 1% 미만의 수치를 보이며 정확한 집계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페인트닥터는 사람들이 직접 사용해보는 방법으로 천연페인트를 알리기로 결심했다. 제주 한림읍의 어느 한적한 수풀 사이에 자리 잡은 페인트닥터의 아담한 매장 겸 작업실. 우리나라 최초의 공기정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 천연페인트에 대해 알아가고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해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 체험자들은 냄새가 없고 몸에 묻어도 해롭지 않은 천연페인트를 장점을 알아가면서 금세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페인트닥터는 그 흔한 '도안'을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 최 대표는 "페인트닥터를 찾는 사람들이 '도안 없나요?', '연필이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평가에 익숙하고 실수를 두려워하는 어른들이 특히 그렇다. 우리는 뭐든 잘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을 없애주고 싶었다. 체험할 때 남의 그림과 내 그림을 비교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재밌게 행복하게 그 시간을 보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도안이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페인트닥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기 
▲페인트닥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기 

그림을 그려본 지 너무 오래되어 그리는 것이 무섭다는 체험자도 페인트의 색을 섞어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받으며 나만의 작품을 완성한다. 천연페인트로 신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되찾아가는 신기한 공간이 바로 페인트닥터이다. 임 실장은 "그림 그리기가 끝나고 남은 찌꺼기는 땅으로 돌려보낸다. 우유, 단백질, 천연안료로 이루어진 천연페인트는 한 마디로 비료가 되는 것이다. 쳔연페인트는 자연으로 순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잘못된 것을 고쳐주는 사람, '닥터(doctor)'. 최 대표는 일반 페인트에 의해 생기는 문제들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에 페인트닥터라는 이름을 정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페인트닥터는 체험, 시공, 판매 이외에 건강한 삶과 지구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누구든지 시중에서 천연페인트를 조금 더 값싼 가격에 접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직접 페인트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현재는 페인트 제조에 성공해 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 향후, 제주 환경 교란 종인 조릿대와 괭생이모자반을 활용한 페인트 개발도 구상 중이다. 내 몸과 지구에 좋은 페인트를 우리 집, 내 방 벽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빨리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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