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걸의 자유를 향한 창⑥] 스스로 서는 노력들 : 동자동 쪽방촌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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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의 자유를 향한 창⑥] 스스로 서는 노력들 : 동자동 쪽방촌의 사람들
  • 2020.07.27 15:00
  • by 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

쪽방이라는 공간

서울역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과 지방 방방곡곡으로 각자의 길을 정한다. 서울역 광장 맞은편에는 큰 도로를 두고 현대식 빌딩들이 병풍처럼 줄지어 있다. 세브란스빌딩, 서울스퀘어, 힐튼호텔 등의 스카이라인은 남산과 경계하며 현대도시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빛나는 장벽 뒤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쪽방촌 사람들이다. 쪽방이란 방 하나를 쪼갤 정도로 작은 방을 일컫는 곳으로, 10인 정도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과 화장실이 있고, 샤워 시설은 없다. 부엌이나 화장실 한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씻을 수밖에 없다. 쪽방이 군집한 지역을 쪽방촌이라 말하며 전국에 16곳 형성돼 있다. 

▲ 동자동 쪽방건물 내부모습.  ⓒ 동자동사랑방
▲ 동자동 쪽방건물 내부모습. ⓒ 동자동사랑방

쪽방이라는 공간에서 연상되는 주민의 이미지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병든 독거노인들이지만, 실제로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이다. 대부분은 아직 노동 능력을 갖고 있다. 20,30대의 입주자도 그런대로 있다. 대부분은 정부 보조금(기초수급자 혹은 차상위계층)에 의존하거나, 정부 공공근로사업 또는 자활근로사업에 투입되든가, 아니면 일용직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산다. 도심지역에 쪽방촌이 밀집되어 있는 이유는 이러한 일용직 파견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자조 금융

동자동 쪽방촌에는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가 있다. 2011년 동자동 주민들은 스스로 모은 자금으로 제도권에서는 빌려주지 않는 자금을 싼 이자로 서로 빌려주는 금융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대출 규정」에 따르면, 일반 대출은 회원(가입비 1,000원)에 한해서 대출받을 수 있고, 6개월 이상 꾸준히 출자(1구좌는 5,000원)한 회원이어야 자격이 주어진다. 단 소액 대출(10만 원 미만)의 자격은 3개월 이상 꾸준히 출자하면 별도의 심사 없이 대출이 가능하다. 6개월 20구좌(10만 원) 이상 출자한 회원은 최대 50만 원까지 대출되며, 긴급자금은 20만 원 이내에서 대출된다. 자신의 출자금이 많은 사람은 출자금의 70% 내에서 대출도 가능하다. 모든 대출의 이자율은 2%이며, 연체이자율 또한 4%로 무척 낮다. 대부분 신용불량자인 주민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된다(『제9차 정기총회 자료집』, 2019. 3). 

2020년 1월 10일 개최된 이사회 자료집(『2019년 결산 및 평가 자료집』)은 이들의 활동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의 총출자액은 1억 9,446만 원(설립 이후 2019년까지의 총 출자금은 3억 2,768만 원)이다. 월평균 165명이 출자하고 있으며, 100만 원 이상 출자한 사람도 82명이나 된다. 2019년 총 532건의 1억 4,564만 원이 대출되었다. 대출 건수 중 51%는 10만 원 이하이며, 50만 원 이상은 8%이다. 대출 사유의 상당수(53%)는 생활 안정(생활비 부족, 실직, 담뱃값 등)이며, 18%는 가족·지인 관련(결혼, 돌, 장례 등), 7%는 의료비(검사비 및 치과 치료비 등) 등으로 이어진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대출 상환율이 극히 높다는 것이다. 상환율은 2012년의 66.4%에서, 73.5%(2013), 81%(2014), 83.1%(2015), 86.2%(2016), 87.5%(2017), 88.1%(2018), 88.7%(2019)로 일관되게 높아졌다.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한국의 각종 빈곤층 대상 서민금융의 대출 상환율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생각해보면 이 숫자의 비밀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는 삶의 안전장치다. 이 관계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되며, 이것이 높은 대출 상환율로 귀결된다. 흔히들 서민금융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관계금융'이라고 말한다. 즉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처럼, 삶의 안전장치로서의 이들의 관계망이 금융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동자동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연혁과 2019년 활동 상황

■ 연혁
- 2010년: 자활공제협동조합 아카데미 참가(1월). 협동조합 준비 모임(2월).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 추진위원회 결성(3월)
출자금 납부 시작(4월). 출자금 2,000만 원 마련을 위한 후원 주점(11월)
- 2011년: 창립총회(3월 19일)
대출 시작(4월)
- 2012년: 전국자활공제협동조합연합회 가입(4월)
- 2014년: 출자금 1억 원 달성(10월)
- 2015년: 총대출건수 1,000건 돌파(9월)
- 2016년: 누적 대출금 총액 3억 원 돌파(5월)
- 2017년: 출자금 2억 원 달성(1월). 누적 대출금 총액 5억 원 돌파(12월)
- 2018년: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로 명칭 변경(3월)
- 2019년: 대출 3,000건 달성(3월), 누적 대출총액 8억 달성(12월)

■ 2019년 활동 상황
- 회의:   정기총회(3월) 회원 415명 중 175명 참석(140명 출석 + 위임 31명)
정기이사회 총 26회, 임·위원 전체회의 9회 개최
- 공동 행사: 어버이날(400인분 점심 대접), 추석 행사(300인분 점심 대접 + 민속놀이), 부탄가스 공동 구매(305박스). 
- 지역사업: 마을 대청소(20회), 장례(17회의 장례 주재/도움), 병문안(77회), 의료비 지원(10명 총 349만 7,200원), 기타 각종 연대사업 참석(제정구 선생 20주기 추모 미사 등). 
- 교육사업: 신규회원 교육(총 9회), 주민지도자 과정 교육(2회), 임원·위원 역량강화 교육(2회), 소식지 제작 및 배포, 각종 홍보.  

※ 자료: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제9차 정기총회』(2019. 3. 16)에서 정리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출자 및 대출현황. 자료: 『2020년 사랑방마을 협동회 제1차 이사회(2019년 결산 및 평가 자료집)』(2020. 1).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출자 및 대출현황. 자료: 『2020년 사랑방마을 협동회 제1차 이사회(2019년 결산 및 평가 자료집)』(2020. 1).

 

따뜻한 주민의 사회안전망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에서는 조합원 스스로 참여하는 각종 '사업'들이 많이 벌어진다. 이러한 관계망을 통해 공동체 속에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느끼며, 스스로도 경제적·사회적으로 도움을 받게 된다. 이들이 2019년 했던 사업들만 열거해도, 어버이날 행사(400인분 점심 대접), 추석 행사(300인분 점심 대접 + 민속놀이), 부탄가스 공동 구매(305박스), 마을 대청소(20회), 장례(17회의 장례 주재 및 도움), 병문안(77회), 의료비 지원(10명에게 349만 7,200원), 신규회원 교육(9회), 주민지도자 과정 교육(2회), 임원·위원 역량강화 교육(2회), 소식지 제작·배포(9회) 등 다양하다.

많은 활동들은 2007부터 9월부터 동자동에서 활동해온 주민조직인 '동자동 사랑방'과 공동으로 이루어진다. 동자동 사랑방의 2018년 정기총회 자료(3월 31일)를 보면, 총 144명 회원이 있으며, 이들이 CMS(92명), 계좌이체(26명), 주민 직접 납부(26명) 등의 방식으로 회비를 내고 있다. 2017년 결산 자료에서 본다면 총수입은 5,000만 원 정도이며, 그중 회비 및 후원금이 70%를 차지한다. CMS 송금이 개인회원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그 액수는 1인당 연평균 11만 원이 된다. 나머지는 기독교 교회(분당 사랑의 교회, 겨자씨교회 등) 및 학교(예원여고), 공익재단(재단법인 동천, 화우공익재단 등)으로부터의 지원금이다. 

위에서 말한, 어버이날 및 추석 행사, 마을 장례 등과 같은 행사 이외에 동자동 사랑방 자체적으로 하는 사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017∽2019년의 '동자동 사랑방'의 『정기총회자료집』). 

첫째, 밥상공동체 '식도락'을 운영한다. 식도락은 2012년 9월 마을 부엌으로 시작했다. 10평 남짓의 조그마한 부엌과 식당에서 하루 평균 40여 명의 주민이 이용한다(식대 1,000원 자율 납부). 거동이 불편한 쪽방 주민에게는 매주 목요일 반찬을 만들어 나눠준다. 이 공간은 마을 장례 시 분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둘째, 각종 복지 활동을 한다. 2018년에는 '아름다운가게' 나눔사업의 일부로 좋은 품질의 전기매트를 70세 이상 고령자 대상 71명에게 제공했으며, 떡나눔 행사, 노숙자에 대한 쪽방생활 주거비 지원(6명) 등의 활동을 했다.  

셋째, 쪽방 안에 선반을 만들어주는 작업을 한다. 이것은 2015년부터 실행된 오로지 주민들만의 봉사활동으로, 매년 약 40여 가구의 선반을 만들어주었다. 한 평 쪽방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벽에 선반을 만들어주는 작업이 주민에게 무척 도움이 된다. 

넷째, 매주 금요일에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법무법인 화우, 법무법인 동천에서 번갈아 가며 무료 법무 상담을 하고 있다. 대포폰, 위장 결혼, 독촉장 등 일반인들에게는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 단어들이 이들 생활에는 깊숙이 들어가 있다. 실제 2017년 총 108건의 상담 중 명의도용 23건(중복 집계), 부채 문제 18건, 통장 압류 14건(중복 집계), 공무집행 방해·사기·쌍방 폭행 등 형사 관련 14건, 임금 체불·산업재해 등 국가나 기업에 대한 보상·배상 관련 상담 9건, 기타 이혼 상담 등이었다. 

이 외에도 교육사업(동자동 주민 주거권 교육), 연대사업(홈리스 추모제 등 반빈곤 연대 활동), 사랑방 미술 시간(만다라 그리기) 등이 이루어진다. 

▲ 사랑방 사무실 앞에 나란히 줄 선 신발들. ⓒ 동자동사랑방
▲ 사랑방 사무실 앞에 나란히 줄 선 신발들. ⓒ 동자동사랑방

가난 극복의 힘은 '지원'이 아니라 '운동'에서 나온다.

사랑방마을 주민들은 제도권 금융에서 찍어버린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지워나갔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어버이날과 추석날의 따뜻한 식사를 준비했으며,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무연고로 죽어가는 쪽방의 시신들을 수습했으며, 정성스럽게 장례식도 치러냈다. 외부 지원 단체와의 협력 속에서 법률 상담, 주민 교육 등도 잘 이끌어갔다. 살벌한 아파트촌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 냄새 나는 관계망이다. 그리고 그 관계망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겠다는 책임 있는 참여를 통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2019년 스스로도 쪽방 주민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유영기 이사장은 한 국제회의(동아시아 포용도시 네트워크 워크숍)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자동 주민들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 고독 등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이런 쪽방 주민들의 사정을 알고, 외부 단체에서 물품을 많이 기부합니다. …… 주민은 음식이나 물건을 받는 대상이 됩니다. 대상화된 주민은 뭔가를 스스로 하려는 생각이 마비됩니다. 받는 데 길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받는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동자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선동수 간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난한 주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여기저기서 쏟아붓는 물량공세를 통해 닦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가난한 주민들이 함께 협동하여 스스로 돕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입니다. 사람이 아닌 물품을 앞세운 외부의 선의는 오히려 주민을 비인간화, 대상화시켜 힘든 여건에서도 주민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몸부림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런 저의 말을 동자동 주민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복지를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노동이 갖는 의미다. 한국의 기초부조의 기본 골격은 '생산적 복지(workfare)'이다. 일하는 대가로 복지를 제공받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자활노동 시스템이었다. 자활노동이 비록 생산성이 낮을지라도, 그 자활노동을 통해 취약계층은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확보한다. 자칫 '기본소득'의 논의가 자활노동 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면 곤란하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일자리에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일자리 마련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사회적경제이다. 

여기에 한 가지 난점이 있다.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스스로 살고자 하는 자생력을 잃어버린 채 정부기구의 기생조직으로 변화되어버린다는 것이 그동안 정부 지원의 역사가 보여준 역설이었다. 여기저기서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을 늘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을 위해 '사회적경제 기본법' 등도 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경제를 발전시키는 기본 동력은 정부의 '정책과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자발적 의지를 결집하고 사업으로 성공시켜 가는 '운동'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동자동 성공의 비결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가 문제를 풀어갔다는데 있다. 동자동의 경험에서 우리가 숙고해야할 내용이다. 

▲ 동자동 사랑방 앞에서 필자가 주민 및 간사님들과 관계자와 함께한 사진. 맨 왼쪽이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선동수 간사,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동자동 사랑방의 박승민 간사이다. [이미지 제공 = 필자]
▲ 동자동 사랑방 앞에서 필자가 주민 및 간사님들과 관계자와 함께한 사진. 맨 왼쪽이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선동수 간사,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동자동 사랑방의 박승민 간사이다. [이미지 제공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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