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업종 종사자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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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업종 종사자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하다
[라이프인·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 칼럼]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 2018.02.13 18:32
  • by 라이프인
이진우 (민주노총 보건안전부장)

근로기준법 59조 전면 폐기는 노동시간 단축의 시작이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오구조 씨는 어제 밤 11시에 일이 끝났다. 자정 마지막 차를 타고 집에 온 그는 다음날 새벽 6시 출근시간을 맞추려 4시간 겨우 자고 일찍 집을 나섰다.

잠시 후 오구조 씨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인천공항 근처까지 가는 광역버스에 올라타니 운전석에 앉은 기사의 두 눈도 벌겋다. 인력이 적게 든다고 격일제를 고수하는 회사 때문에 하루 17시간 씩 이틀 일하고 다음날 쉬는 복격일제로 일하고 있다. 오늘은 어제 17시간 일한 다음 날이라 더욱 피곤하다. 방금 화물차와 아차사고가 날 뻔한 버스 기사는 새벽잠을 쫓으려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인다. 잠을 청하려던 오구조 씨는 높아진 라디오 볼륨에 짜증이 난다. 시민의 편의를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전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엊그제 경부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 끝에 50대 부부의 자동차를 덮친 사고 뉴스를 다시 떠올리면 마음한편은 계속 불안하다.

조금 전 졸음운전을 하다가 광역버스와 추돌사고 날 뻔한 화물운송 노동자는 새벽 한시에 부산에서 출발했다. 보통 하루 13시간 정도는 일하는 데, 부산에 내려갔다가 빈차로 올라오기 아까워 새벽에 화물을 싣고 올라가는 길이다. 기름 값이다 지입제다해서 나갈 돈이 너무 많으니, 위험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처지이다. 방금 뉴스에서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38%가 화물차에 의한 사망이라는 얘기를 듣고 정신이 바짝 든다. 정부에서는 졸음운전 대책이라며 4시간 운전하면 30분 쉬라고 하는데, 시간 안에 납품 못하면 손해를 내가 물어줘야 하니 잠깐 휴식 취하기도 어렵다.

버스는 오구조 씨의 딸이 다니는 방송국 앞을 지난다. 딸은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의 조연출이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어 하던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번 드라마가 시작하면 얼굴보기가 힘들어 걱정도 많이 된다. 어제도 엄마 생일인데,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지난 번 드라마 찍을 때는 6일 동안, 누워서 잠든 시간이 6시간이었던 적이 있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 적이 있다. 진짜 그렇게 열악한가 싶으면서도, 드라마 막바지로 갈수록 지쳐가는 딸의 모습에 안타깝기만 하다. 딸이 만드는 드라마를 동료에게 자랑도 하지만, 딸의 피땀과 잠도 못자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드디어 오구조 씨가 일하는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이루어지는 모든 업무인 항공기 지상조업이 그가 하는 일이다. 착륙한 비행기를 지정된 주기장으로 안내하고, 공항 게이트와 비행기 탑승구를 연결해 승객들이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며, 여객기 수하물 운반, 화물기 상하역, 비행기 급유, 정비 등 수많은 작업을 오구조 씨와 동료들이 한다. 야외에서 일하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고된 육체노동도 힘들지만 오구조 씨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장시간 노동이다. 보통 하루에 16~18시간 씩 일을 하다 보니, 집에 가는 일이 더 힘들어 컨테이너에서 쪽잠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출퇴근길이 멀어 월요일에 출근해서 수요일에 퇴근하는 소위 2박 3일 근무를 하는 동료도 부지기수다. 어제는 오구조 씨 부인의 생일이라 무리해서 퇴근했던 것이다.

오구조 씨가 상하역 작업한 화물기에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택배가 한 가득이다. 직구가 유행하면서, 해외택배가 많이 증가했다. 택배를 배달하고 있는 집배원은 지난 주 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구정 특별소통기라, 택배 물량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새벽 6시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오늘도 아마 어제처럼 밤 11시는 되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작년에만 동료 우정노동자가 19명 사망하는 등 과로사와 과로자살로 많이 있었다. 노조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해 노동부가 실태조사를 했지만, 결과는 허망했다. 우편업이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에 해당하기 때문에 24시간 365일 일을 시켜도 위법이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사람을 죽을 때까지 일을 시켜도 어떠한 법 위반 사항도 없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항공기 지상조업 노동자, 버스노동자, 화물노동자, 방송 노동자, 집배노동자 뿐만 아니라 택시, 영화산업, 보건업, 사회복지 노동자 등 수많은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노동시간 상한에 대한 특례에 속해 무제한 연장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1961년 도입된 노동시간 특례제도는 “공익 또는 국방상에 특히 필요한 때”, “보건사회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업종을 명시하고, ‘상한시간’도 규정했다. 그야말로 ‘특례’였던 것이 무분별하게 규제가 완화되면서 현재는 근로자 대표와 합의만 하면 아무런 절차나 요건 없이, 무제한 노동을 강요하는 독소조항이 됐다. 현재 특례업종 해당 사업체는 60.6%, 종사자 비중은 42.8%에 달한다. 59조 특례라는 적폐로 우리 주변 수많은 오구조 씨가 장시간 노동에 고통 받고 있다. 또한, 장시간노동은 시민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과로사와 노동시간 단축은 주요한 사회문제다. 특례 59조는 과로사를 막기 위해 시급이 폐기되어야 할 악법인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주 52시간 단계적 시행, 휴일근무 중복할증 문제 등 근로기준법 개악과 엮이면서 여야 이견으로 파행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는 구정 이후 노동시간에 대해 다시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많은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 근로기준법 59조는 도입 취지가 왜곡되고, 현장의 필요성도 사라진지 오래다. 노동자를 위해, 시민의 안전을 위해 59조 특례는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국회는 특례업종 종사자들의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하다. 근로기준법 59조 특례를 조속히 폐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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