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통신] 브라질의 사회연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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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통신] 브라질의 사회연대경제
사회적경제부터 연대경제까지
작성자 : 히로타 야스유키(廣田 裕之). 발렌시아대학교 사회적경제 박사이자 스페인 사회적화폐 연구소 공동창설자
  • 2020.11.25 20:00
  • by 히로타 야스유키(廣田 裕之)

필자는 스페인에 살고 있지만, 사회연대경제에 관해 중남미 몇 개 국가를 방문하여 중남미의 현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이번 편에는 그 중에도 사회연대경제 운동이 상당히 활발하여 세계적으로도 리더 역할을 하는 브라질을 소개하고자 한다.

브라질은 남미 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나라로, 북단에서 남단까지 그리고 동에서 서까지의 거리가 4,000km가 넘게 퍼져있으며(서울에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상당함) 면적은 850만㎢(한국의 100배 가까이)로 러시아, 캐나다,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지며,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보다도 넓다. 하지만 대서양 연안과 그 부근에 인구가 집중된 한편, 내륙부 특히 이어서 설명할 북부와 중서부는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인구가 희박하다.
 

▲ 브라질 시군구 별 인구 밀도 (2007년 데이터, 출처: Wikipedia)
▲ 브라질 시군구 별 인구 밀도 (2007년 데이터, 출처: Wikipedia)

행정적으로는 26개 주와 연방 특별 구(수도 브라질리아)로 나뉘어 있으나 하나의 주가 매우 넓어(실제로 브라질 26개 주 중 18개 주가 한국보다 넓으며 가장 큰 아마조나스주는 한국의 16배 임) 주로 북부·북동부·남동부·중서부·남부의 다섯 개 지역으로 나누어 표현한다. 각 지방은 고유의 기후와 문화를 가지며 연대경제를 실천하는데도 각 지역의 특징이 드러나므로 이 다섯 지방을 소개하고자 한다.
 

▲ 브라질 전체 지도와 각 주의 명칭 (Wikipedia 지도 위에 작성)
▲ 브라질 전체 지도와 각 주의 명칭 (Wikipedia 지도 위에 작성)

북부 : 아마존강 유역을 위주로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열대 우림이 펼쳐져 있었지만, 최근 농업 용지를 확대하기 위해 삼림 벌채가 진행되면서 그곳에서 전통적 생활을 하는 원주민을 학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아마조나스주의 주도(州都) 마나우스는 공업 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은 기본적으로 아마존 열대우림과 공생을 모색하면서 (자연)혜택을 활용하는 형태의 연대경제가 펼쳐지고 있다.

북동부 : 브라질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개발이 진행된 곳이며, 바이아주의 주도 사우바도르시는 식민지 시절 첫 번째 수도였다. (1763년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전) 가뭄이 심한 척박한 기후로 인해 남동부가 개발되면서 버려진 듯 되어 브라질 내에서도 빈곤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며 한편으로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문화가 지금도 남아있다. 전통적인 소규모 자영농을 지원하는 활동과 공정무역이 이 지역 연대경제의 주축이다.

남동부 : 1960년까지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와 경제 중심지 상파울루, 그리고 광산이 많아 주 이름의 유래가 되기도 한 미나스제라이스(넓은 광산이라는 뜻-역자 주)가 있으며 브라질의 경제와 문화 중심지이다. 부유층이 많지만 빈민가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아 이 지역의 연대경제는 빈민가 주민의 경제적 자립 지원을 중시하며, 폭넓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유기농 식품 운동도 진행한다.

중서부 : 연방 정부의 각 관청과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대사관이 집중해있는 수도 브라질리아를 제외하면, 건조한 고원과 광활한 습지대가 펼쳐있다.

남부 : 독일, 이탈리아, 동유럽 등 유럽계 이민자의 후손이 많아 브라질에서 가장 유럽적인 지역이라 불린다. 파라나주의 주도 쿠리치바는 계획도시로 국제적 명성이 높은 반면 최남단의 히우그란지두술주는 본래 목동 문화 지역으로, 아르헨티나·우루과이와 문화적인 공통점이 많고 유럽계 이민자들에 의한 전통적 농협 운동이 활발하다. 연대 경제로는 남동부와 마찬가지로 빈곤층 지원 활동이 있으며 중산층에 의해 유기 농업이나 물물교환 시장 등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이어서 소개할 브라질 최대의 박람회가 히우그란지두술주의 산타마리아시에서 개최된다.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는 예전 스페인령으로 스페인어가 공용어지만 브라질은 포르투갈령이었기에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며, 현재 브라질인 대부분이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포르투갈어는 스페인어와 비슷하면서도 나름의 차이가 있어 전통적으로 브라질은 중남미 내에서도 독자노선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연대경제의 학술에 관해서는 포르투갈과 긴밀한 관계를 적지 않게 맺어왔다. (물론 지식층을 중심으로 스페인어로 이야기하거나, 대화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스페인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아 그들을 통해 스페인어권 국가들과의 교류도 이뤄지고 있지만)
한편 영어는 그다지 보급되어 있지 않고 연대경제 관계 대학교수라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브라질과 교류할 때는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지식은 필수적이다.

브라질 연대 경제의 계보를 따라가면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20년 이상 지속된 군사정권과 그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브라질은 1964년부터 1985년까지 20년 동안 군정을 경험하여 이 뒤에 등장하는 파울로 프레이리는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망명했으나 당시 군정에 반대하는 각종 사회 운동 간의 연대가 깊어져, 폭넓은 시민사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러 '또 다른 세계도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세계 사회 포럼을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 사회 포럼은 2001년 1월 브라질 최남단 히우그란지두술주의 주도 포르투알레그리(Porto Alegre)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 연대경제가 '또 다른 세계'를 경제면에서 실현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유기적 연대를 강화하여 이후 브라질 연대경제 포럼(Fórum Brasileiro de Economia Solidária, FBES)을 결성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포럼은 26개 주를 모두 커버하고 있다. 또한 브라질정부는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노동당에서 대통령 (2010년까지는 룰라(Lula), 그다음은 지우마 후세프(Dilma Roussef))가 당선되어 연방정부 산하 연대경제국이 창설되어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았다.
 

▲ 브라질 연대경제국과 FBES가 공동 제작한 연대경제에 관한 동영상 (한국어 자막)

그리고 특히 브라질 연대경제를 파악하는 데는 교육학자로 활약한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1997)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 저서 페다고지(원제: 피억압자의 교육학)는 한국어로 번역서가 출간될 만큼 국제적으로도 유명한데, 이 책 속에서 연대경제 실천과 관련이 깊은 세 부분을 발췌하고자 한다.

▲ 파울로 프레이리 (1921~1997, 이미지 출처: Wikipedia)
▲ 파울로 프레이리 (1921~1997, 이미지 출처: Wikipedia)

우선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정반대로 보이지만 단순히 사회적 처지가 다를 뿐이며 피억압자도 사실은 억압자의 기질을 가지며, 무언가의 이유로 처지가 바뀌면 억압하는 성격이 표면화되어 억압자로 돌변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실제로 특히 군대 등 수직적인 사회에서 억압을 받은 사람일수록 조직 내에서 승진하는 순간 억압자가 되어버리는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셀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사회를 정말로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려면 단순히 억압자를 쫓아내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며 조직 운영에 몸담은 피억압자 스스로가 피억압적인 태도나 사회구조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꿔말하면 눈에 보이는 외부 억압자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적 억압성에서도 해방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페다고지 표지
▲ 페다고지 표지

또한 억압자 중에는 가짜 관용을 보이며 피억압자를 길들여 억압적인 사회구조 자체를 유지하려는 사람도 있다고 프레이리는 지적하고 있다. 부유층이 사회적 약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상황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기 쉽지만 정말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권한을 이양하여 억압자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프레이리의 주장이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적경제 영역에 포함되는 자선단체나 사회적기업을 브라질 연대경제에서는 포함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필자는 다음에 소개하는 박람회에서 브라질 정부에서 오랫동안 연대경제 국장을 역임한 파우신제르(Paul Singer)가 포르투갈 방문 시 자선단체의 일종인 미제리코르디아(misericórdia, 한국과 가까운 곳으로는 구 포르투갈령인 마카오에 있음)가 자국에서 사회적경제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걸 비판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전통적인 학교 교육에서는 학생의 흥미와 관심을 무시하고 교사의 관점에서 학생에게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여겨져(프레이리는 이걸 '은행형 교육'이라고 지칭) 거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학습의욕이 부족한 학생을 열등생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프레이리는 이런 커리큘럼 편성을 비판하고 우선 학생의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는지를 이해한 다음에 대화형 교육을 하도록 주장했다. 거기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학생도 교사에게 가르칠 수 있는데, 브라질 연대경제의 실천 교육 프로그램 편성에는 이런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 민중 교육과 연대경제의 관계를 소개하는 동영상 (한국어 자막판)

브라질의 연대경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대안을 모아놓은 것으로, 주요 사업은 다음과 같다.

▲가족농업: 브라질은 대지주가 농지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고 작은 농지를 가족끼리 경작하는 소규모 자영 농가를 가리킴

▲토지 없는 농민운동 (MST) : 브라질 농지가 일부 대지주들에 집중되어 있으며, 토지가 없는 소작농이나 피고용자가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에 의한 유휴지 활용 운동. MST 측이 토지를 획득하면 그들이 유기농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운영한다.

▲회전자금: 여러 명이 자금을 보태서 기금을 만들고 차례로 돈을 빌려 생활을 향상시킴. 예를 들어 20명 그룹에서 각자 10만 원씩 내서 200만 원의 기금을 만들고, 그 기금을 차례로 빌리는 것.

▲민중 협동조합 인큐베이터 : 주로 대학 내에 설치되어 빈곤층의 협동조합 설립을 학생들이 지원한다. 경영자와 근로자 사이에 억압·피억압 관계가 생길 수 있는 사회적기업 구조를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앞에 설명한 프레이리 사상을 참조) 자주적인 운영을 중시한다. 브라질의 빈곤층 스스로가 협동조합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목표로, 학생들은 이를 위해 필요한 각종 기술(컴퓨터나 회계 등)을 가르치는 데에 그친다. 연극에 비유하자면 어디까지나 주연과 조연 배우는 빈곤층 사람들이며 학생들은 극본과 연출, 대도구 및 소품 준비 등 철저히 배후에서 일하는 역할이다.

▲회복공장·회복기업 : 도산한 공장이나 기업의 종업원이 그 설비를 탈취하여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것. 구 경영진과 적대적인 긴장 관계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결국 노동자들이 공장이나 기업을 매입하여 자주적인 운영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물물교환시장 : 식품이나 민예품 등을 가져와서 직접 물물교환하거나 교환시장에서만 사용하는 임시 지역 화폐로 거래함. 포르투갈로도 확산하여 몇몇 지역에서 계속 실천 중이다.

▲커뮤니티 개발은행 : 브라질 등 중남미의 빈곤층 중에는 은행 계좌가 없어 각종 금융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런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형태로 커뮤니티 개발은행을 운영함(지역 화폐를 발행하는 곳도 있음). 최초의 커뮤니티 개발은행인 파우마스(Palmas) 은행은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마이크로 크레딧과 지역 내 창업지원 등 여러 성과를 내고 있다.
 

▲ 파우마스(Palmas) 은행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어 자막판)

하지만 연대경제를 지원하는 공공정책 측면에서 2016년 이후 브라질은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후세프가 탄핵당하고 신자유주의자인 미셰우 테메르(Michel Temer)가 대통령직에 취임하여 연대경제국 기능을 축소했다. (여성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교체가 일어났다는 점은 같으나, 한국과는 좌·우 방향이 반대임)

그 후에는 인종차별과 환경파괴, 남존여비 등 문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고 대기업과 대규모 농장을 우대하는 극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가 대통령에 취임하여, 그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 말까지 연방 정부의 지원정책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좌파 정권이 유지되는 주나 시군구는 주 정부 및 관공서 단위의 지원은 기대할 수 있지만) 덧붙여서 보우소나루는 Covid-19에 대해 '별일 아닌 감기'라고 경시하여 도시 봉쇄에 소극적인 대응을 한 결과, 본인과 아내를 포함한 수백 만에 달하는 감염자 수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각종 연대경제 박람회가 개최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최남단인 히우그란지두술주의 산타마리아에서 개최되는 박람회이다. 예년 7월(남반구에 위치하므로 한겨울이며, 서울 정도는 아니지만 겨울 복장을 준비할 필요가 있음)에 개최되는 이 박람회는 브라질 전체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 주변국에서도 많이 참여한다.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에 그치지 않고 연대경제와 관련해서 각종 논의가 이뤄지는 장이기도 하다.
올해는 Covid-19로 인해 중단되었으나 12월에 온라인 회의를 개최할 예정으로, 거리가 너무 멀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지금까지는 참가할 수 없던 사람들도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포르투갈어를 이해한다는 조건하에)
 

▲ 2015년 박람회 분위기를 소개하는 동영상


한국에서 보면 브라질은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매우 먼 존재이지만 위에 소개한 바와 같이 다양한 실천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브라질 연대경제는, 정치적 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도 매우 흥미로운 활동들을 지속하여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포르투갈어로 작성된 것 외에는 관련 문헌이 적은 것이 애로사항이지만 사회적 연대경제를 실천하는 입장에서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여러분들도 한 번 브라질을 방문하여 현지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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