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탐방] 그 많던 전파사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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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탐방] 그 많던 전파사는 어디로 갔을까?
소셜벤처 인라이튼 신기용 대표 인터뷰
  • 2021.03.18 10:29
  • by 김정란 기자
07:05

모두가 사회혁신을 말하지만, 사회혁신은 한 분야의 전문가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공공기관, 시민단체 등 본질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들이 있지만, 이들만의 힘으로는 진정한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같던 기업들도 자선 방식의 사회공헌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학문의 전당이었던 대학교나 연구기관도 연구 결과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사회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현장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기업, 민간단체, 학교, 기관 등을 통해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사용자들과 직접 소형 가전을 수리하는 신기용 대표(오른쪽). ⓒ인라이튼
▲ 사용자들과 직접 소형 가전을 수리하는 신기용 대표(오른쪽). ⓒ인라이튼

그 많던 전파사는 어디로 갔을까? 동네 골목에 한 군데쯤 있던 전파사가 언제부터인지 안 보이기 시작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자제품은 더 늘어나고, 고장이 난 물건들도 늘어날 텐데, 어쩐지 이를 고치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더 나은 되살림, 배터리뉴(Better-Renew)를 운영하고 있는 인라이튼(ENLIGHTEN)은 우리 어릴 적, 그 기억을 다시 찾아 나선 소셜벤처다

고장난 가전제품을 버리지 않고 고쳐 쓰게 하는 것. 제품이 덜 버려지게 하는 것이 지금 현재 인라이튼의 주 사업이다. 고장나거나 배터리가 다 된 제품을 수거해, 수리, 세척 등의 서비스를 해 돌려보내는 '배터리뉴' 사업을 통해 순환경제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제품-서비스 시스템(PSS) 디자인을 전공한 신기용 대표가 지난 2014년 설립했고, 2017년에는 서울시 주관 청년사회혁신 프로젝트 소셜벤처로 공식 선정됐다.

디자인을 전공한 대표는 어쩌다 가전 수리에 뛰어들게 됐을까? 디자인이란 제품이 제 기능을 잘하도록 하면서도 오랫동안 싫증 나지 않고, 미적인 부분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실제 제품 디자인은 그렇지 않더라"는 게 신 대표의 이야기다. "하나라도 더 팔고, 또 사게 해야 하다 보니 배운 것과 전혀 다른 디자인을 해야 되더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일단은' 디자인을 떠나서 제품을 더 오래 쓰게 하는 방법에 주목하게 됐다. 

인라이튼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배터리뉴 사업 외에 '리페어카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전을 고쳐 오래 쓰게 하는 주 사업 역시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미션을 담고 있긴 하지만, 모든 제품을 이를 통해 고칠 수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 프로젝트가 '리페어카페'다. 신 대표는 "선풍기 한 대에 2, 3만 원하는데 수리비가 비슷하게 나오면 누가 고쳐 쓰겠나? 그래서 만든 프로그램이 리페어카페"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인라이튼이 가진 역량을 이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고장난 가전제품을 가진 사용자가 직접 고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 서울새활용플라자의 인라이튼 공장, 혹은 각 지역을 돌면서 리페어카페를 열고 수리하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다. 아까운 자원을 많이 품고 있으면서도 쓰레기로 전락할 뻔했던 가전제품들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새로 태어난다. 이 과정에 인라이튼의 전문 기술자, '기술 장인'이 참여해 사용자가 가전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공구 부족 등의 이유로 현장에서 고치지 못할 경우 고쳐서 다시 보내주기도 한다.

인라이튼은 환경을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주 미션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로컬, 청년, 일자리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동참하고 있다. 

수십 년간 전파사를 하면서 가전제품들을 고쳐 온 전문가, 즉 '기술 장인'은 리페어맵, 리페어카페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기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고 안정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또 지금의 서울새활용플라자에 들어오기 전 열었던 성수동 공방 시절, 인근에 있던 마이스터고에서 사업 관련 전공을 한 졸업자를 회사에 채용해 기술 장인과 연결시키기도 했다. 신 대표는 "마이스터고가 취업률이 높다고 하지만, 전공과 전혀 관련없는 취업을 한 친구들도 많았다. 그 친구들에게 배운 것을 쓸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면 어떨까 해서 교류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인라이튼은 수리점 등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3월 중 런칭한다.ⓒ인라이튼
▲ 인라이튼은 수리점 등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3월 중 런칭한다. ⓒ인라이튼

3월 중에는 '리페어맵(repair-people.net)'도 출시할 예정이다. 핸드폰, 노트북 등 고가 가전을 고치는 AS센터는 있지만, 소형가전을 고칠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을 위해 주변의 수리전문점을 찾을 수 있도록, 사용자들이 스스로 참여해 만들어나가는 프로그램이 될 예정이다.

리페어맵의 궁극적인 목표는 가전을 넘어 시계, 옷, 가방, 구두, 악기 등 다양한 고장난 제품을 수리·수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신 대표는 "그간 전자제품 수리 서비스를 통해 쌓아온 역량을 수리·수선 산업 전반에 확대, 이식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짜서 뭘 해보자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며 웃지만, 동네를 지날 때, 제품을 살펴볼 때, 사람을 만날 때 허투루 보는 법이 없는 그의 방식이 인라이튼의 사업에 '소셜'이 깊숙이 자리하도록 만들었다.

신 대표는 "순환경제시스템을 앞당기는 것이 우리의 최종 미션"이라고 말했다. 지금 인라이튼이 하고 있는 리페어, 즉 수리는 응급처치다. 기술 장인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응급처치에 나선 의료진과 같다. 본질적으로 전자제품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해결하려면 제조, 유통, 사후처리까지 제품의 전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인라이튼의 방향성이다. 신 대표는 "수리 산업의 혁신 이후에는 유통 단계, 그 이후에는 제조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통 과정이 불분명한 소형 제품들이 많다보니 수리해보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제품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라이튼은 가전유통까지 할 수 있는 '리스토어(RE-STORE) 브랜드'를 만들어 청소기, 공기청정기, 가습기 등 가정환경을 회복시키는 엄선된 제품을 판매하고, 사후관리, 폐기 단계까지 책임지는 유통 플랫폼으로 진화시키고자 한다. 가정환경을 넘어 자연환경까지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RE-STORE'라는 브랜드로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올 하반기에는 제품 품목을 늘려 자사몰에서도 판매, 유통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런 계획은 이미 세계 산업현장에서 보이고 있는 트렌드에 기반하고 있다. 신 대표는 "유럽에서는 공기청정기를 팔고 끝나지 않고, 그 집의 공기 상태 전반을 관리하는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고 했다. 전자제품이 버려지지 않으려면, 제조 단계부터 쉽게 고쳐 쓸 수 있는 구조의 제품을 디자인하고, 고장나면 고칠 곳이 있고, 버려지는 단계까지도 관리할 수 있는 산업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차곡차곡 자신이 생각하는 혁신을 옮겨나가고 있는 신 대표에게 "사회 혁신을 하는 기업들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신 대표는 "예전에 들은 말 중에 '가장 소셜한 것이 가장 경제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런 믿음이 있고, 그런 세상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해 매출은 3배, 영업 이익은 10배 가까이 성장하는 경험을 했다. 4년 전 3명으로 시작한 구성원은 현재 30명에 가까워졌다. 소셜한 것이 경제적일 수 있다는 방증을 일부 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소셜하지 않은 것이 배제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 같다. 특히 MZ세대의 DNA안에도 그런 부분들이 점점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소셜한 것이 점점 더 경제적인 사회로 가지 않을까. 이익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가는 것 아닐까"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라이튼의 미션은 사용자의 뜻과 함께할 때만 실현될 수 있는 것들이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인라이튼과 그 뜻에 동참하는 새로운 세대가 많아진다면, 동네 한켠의 전파사처럼 정겨웠던, 그러면서도 지속가능했던 우리 과거의 모습을 찾게 되는 것이 모순되는 꿈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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