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능성 ①] 로컬 매거진으로 처음 만나는 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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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능성 ①] 로컬 매거진으로 처음 만나는 로컬
  • 2021.03.09 09:00
  • by 신효진 (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과 연구교수)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라는 엄중한 두 단어로 대변되는 2020년, 그리고 2021년. '변화'가 필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관성적으로 '변화'와 '혁신'이란 단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지만, 한편으론 어느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그 모호한 변화를 우리는 기대하고 희망합니다. 그래서 그 희망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보려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소셜벤처, 사회혁신, 체인지 메이커, 로컬 크리에이터 등 지역, 넓게는 사회와 관계를 맺고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사례를 들춰보는 작업이 이미 익숙한 사례 훑어보기 정도에 그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례들을 살펴보며 그 속에서 비롯된 변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을지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영상 매체의 활황과 활자 매체의 쇠락,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거칠게 툭 내뱉은 이 단어쌍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가 없어도 은연중에 단어의 의미에 수긍하게 된다. 꽤 오랜 시간 다루어진 주제이고 이를 해결하는 방안도 각양각색으로 모색되었다. 이미 시작된 변화 앞에 우리가 내놓는 '솔루션'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런데 여기,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거침없이 발을 내딛고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행보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로컬 매거진'이 그것이다. 지역의 이야기를 한 곳에 그러모아 활자로 정리해 풀어내는 로컬 매체는 지역을 아카이빙하는 동시에 지역의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고 축적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다니는 말들을, 종이의 질감을 빌려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로컬 매거진, 지금 그 로컬 매거진을 들여다보려 한다. 

# 로컬 매거진, 무엇을 이야기할까? 

앉은 자리에서 어떤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요즘이지만 막상 나의 일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네 소식은 깜깜이다. '우리 동네'가 알고 싶고 궁금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소식을 접할 수 있을지 딱히 방법을 알기 어렵다. 아주 큰 이야기들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작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꼭꼭 숨어 있다. 로컬 매거진은 그 작은 이야기들을 기민하게 찾아내고 꼼꼼히 들여다본다. 

잠깐 로컬 매거진의 내용을 살펴보자. 2020년 겨울, 부산 진구를 들여다본 <하트人부산>은 부전동, 전포동, 양정동의 역사를 훑어가고, 서면인쇄문화거리를 찾아 인쇄업의 과거와 오늘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덕분에 서면의 대표적 만남의 장소라는 쥬디스태화가 과거 부산 최대의 향토 백화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곤 이내 약 1만 명의 부산 청년들이 타지로 이주했다는 수치에 놀라는 동시에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며 활동하는 '청개구리 사회주택'의 인터뷰를 읽으며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160쪽에 이르는 <하트人부산>은 지역공동체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소통하고 공유한다. 

▲ 2020년 겨울, 부산 진구를 들여다본 의 '청개구리 사회주택'의 인터뷰. ⓒ필자 제공
▲ 2020년 겨울, 부산 진구를 들여다본 의 '청개구리 사회주택'의 인터뷰. ⓒ필자 제공

기획과 구성, 인터뷰와 원고 작업에서 포장, 배포까지 90%에 가까운 작업을 편집장 1인이 담당하는 매거진 '안녕망원'은 지난해 망원동 우체국을 지켜달라는 주민운동의 기록을 3호에 담았다. 경영합리화를 위해 전국의 우체국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인 우정사업본부가 망원동 우체국 폐국을 결정한 뒤 '우리 동네'의 움직임을 기록한 것이다. 망원 우체국 지키기 모임을 만들고 현수막 모금글을 게시한 망원 주민을 인터뷰하고, 망원동 우체국에 관한 온라인 게시글을 매거진에 담았다. 그렇게 기록된 우리 동네의 이야기는 매거진을 통해 사회화되어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재생산된다. 또 공감을 얻고 사람들 사이에서 생생하게 다루어진다(참고로 망원동 우체국은 지난해 4월 27일 문을 닫았다.).

ⓒ안녕망원  
ⓒ안녕망원  

마을의 긴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어르신,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작은 카페의 사장님, 이국적인 맛으로 동네 사람들을 사로잡은 맛집, 동네 어딘가에서 볼 수 있는 길고양이까지.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고 공간을 탐색하고, 크고 작은 지역의 문제와 고민거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혼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을 지역의 모습을 로컬 매거진은 담고 있다. 기존의 매체에서 일반적,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정형화된 지역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포착할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지역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로컬 매거진은 실제로 지금 여기에 있는, 있는 그대로의 지역을 보여준다. 때론 그것이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지역보다 조금은 더 복잡하고 유동적인 현실로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 로컬 매거진, 왜 중요할까?

'기록되지 않는 기억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존재하되 발견되지 않아 미처 확인되지 않은 지역의 경험과 기억이 로컬 매거진을 통해 재발견되어 그 의미가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며 급속한 도시의 팽창을 겪었다. 많은 동네가 사라지고 다시 또 생겨났다. 그 급격한 변화 속에 지역의 문화는 쉽게 잊혀갔다. 다행스럽게도 지역에 기반한 로컬 매거진은 지역에 집중한다. 늘 과거형으로 이야기된 지역의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고민한다. "옛날에는 여기저기에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같은 지나간 날을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이 시점에서 지역의 사람과 공간, 콘텐츠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의미를 확인한다. 서울로 대표되는 어떤 암묵적인 비교 대상과의 대비 속에서 지역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역 그 자체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로컬을 더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로컬은 모호하게 표현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목소리가 잘 담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로컬 매거진은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기록하고, 출판한다. 조금이라도 더 지역주민들의 삶으로 들어가 지역의 필요와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의 협동과 공동체의 형성은 나를 둘러싼 세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며, 그 안에서 나의 생활을 구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가장 보통의 우리 동네, 우리 지역을 여기저기에서 수집하여 보여주는 로컬 매거진, 그 안에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제안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만으로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넓이와 깊이는 훨씬 확장되지 않을까. 

# 로컬 매거진 구경해볼까요

▲ 전국의 로컬매거진. 이외 2017년 10월 창간한 는 연남동, 을지로, 이태원 등 서울의 동네를 꼼꼼히 살펴보고 다루고 있다. [이미지 작업=전윤서 기자]
▲ 전국의 로컬매거진. 이외 2017년 10월 창간한 는 연남동, 을지로, 이태원 등 서울의 동네를 꼼꼼히 살펴보고 다루고 있다. [이미지 작업=전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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