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과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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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과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과제
[라이프인.생명안전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오지원 (변호사, 전 세월호 1기 특조위 피해자 지원과장, 전 판사)
  • 2018.03.02 13:21
  • by 라이프인

미투 운동이 한참이다. 성폭력피해자들은 그 때는 말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용기를 내서 말하고 있다. 왜 그 때는 말하지 못했고 지금은 말할 수 있는가.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했던 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낯선 아저씨로부터 강간을 당할 뻔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 못했다.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할 어린 내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어른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가 나를 적절히 보호해 줄 거라는 확신이 없어서였다. 나는 어른들이 나를 믿어주기보다 나를 더 수치스럽게 만들거나 억울하게 만들지 않을까 의심했다. 이후 성장하고 법조인이 되는 과정에서 나는 그 의심이 별로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느 덧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록 돕는 일을 하게 되었다.

성폭력피해자들은 대체로 주변사람과 우리 사회의 ‘기계적인’ 중립성과 객관성을 경험하면서 피해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포기한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너도 원했던 것 아니냐”, “왜 늦은 시각에 혼자 나갔냐”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주저함이 없다. 나아가 “돈을 바라고 허위사실을 말하는 거 아니냐”고도 한다. 때로는 이런 질문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왜 그 늦은 시간에 따로 만나려고 했냐”, “피해자가 원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했냐”, “저항하지 않는 것이 동의라고 왜 마음대로 판단했나”는 질문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조직 내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피해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조직 내에서 겪게 될 더 큰 어려움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가 필요하다. 결국 중립과 객관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사이 정중앙에서 똑같이 양측을 의심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도록 토대를 만들고 실질적인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수치심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허위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보다 수치심과 불이익 때문에 실제 피해를 말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입증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제도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제거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중립이고 객관이다.

재난피해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재난피해자들에게도 성폭력피해자들에게만큼 가혹했다. 그들이 가족의 상실을 납득할 수 없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면 공감하기보다 공격했다. “정치적이다”, “보상받았으면 그만해라”, “특혜를 바란다” 등등. 그 뿐인가. 박근혜 정권은 해수부 장차관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당시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을 동원하여 특조위의 운영을 방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편파적인 세력들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공무원 행세를 하며 피해자들의 요구를 좌절시키고 피해자들의 입을 막았다.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새로운 세상을 갈망한 것은 우리 모두가, 특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타인과 사회의 공감의 힘을 믿고, 겪은 일을 어려움 없이 말하고, 그 드러냄을 통해 더 나아지는 투명한 사회를 원했기 때문이다.

현재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 준비 중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재난조사기구는 양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은 물론 국민들의 안전하고 투명한 사회에 대한 열망에 부응해야 한다. 양 참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사회적 참사의 발생 및 피해확대원인이 되는 정부 대응의 부적절한 요소들을 찾고 드러내고 그에 대한 대안들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재난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드러내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 역시 선진국 수준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리하여 기계적인 중립과 객관에만 익숙한 나머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소홀했던 관료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야 한다. 무엇보다, 중립과 객관을 주장하면서 뒤로는 조사활동을 방해했던 세력들을 빠짐없이 조사하여 책임을 묻고 재난조사의 진정한 중립과 객관이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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