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Climate] 유기농을 넘어 지구환경을 살리는 농업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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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Climate] 유기농을 넘어 지구환경을 살리는 농업방식
  • 2021.03.17 18:02
  • by 이미옥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이사)
10:41

지구온난화의 대략 3분의 1은 전세계 농업과 식품 생산·유통·소비 등 푸드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다. 지구의 얼어붙지 않은 땅 중 4분의 1 이상이 가축방목에 사용되고 있고, 경작지 중 3분의 1이 농장동물을 먹이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 식생활의 중심이 육식으로 바뀌면서 더 많은 양의 고기를 더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시스템들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라이프인에서 농업과 식품시스템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에 대한 솔루션으로서 채식 위주의 식단, 지구환경을 되살리는 농업방식, 그리고 식료품 과잉생산에 따른 음식물 쓰레기 이슈 해결을 위한 시도들과 같은 몇 가지 대안과 움직임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유기농업, 4천 년의 농부

'4천 년의 농부: 유기농업의 원류 - 중국, 한국, 일본'은 미국 농무부(USDA)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H. 킹 박사가 1909년 동아시아 3국의 유기농업 현장 곳곳을 관찰한 내용을 다룬 견문록이다.

저자에 따르면, 4천 년의 경험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동아시아 농부들은 환경에 맞는 곡물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을 거듭한 끝에, 땅을 가장 기름지게 하고 가뭄 때나 홍수 때나 가장 소출이 높은 벼를 선택했다. 이들은 쌀 문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수로체계를 갖추어 높은 생산량이 가능하며, 기장, 고구마, 양파, 양배추 등 다양한 채소를 함께 키운다. 추수가 끝난 땅을 말리고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밀, 보리, 콩, 자운영 등을 이모작으로 키움으로써 토양의 수분을 보존하면서도 지력을 높이고 잡초가 무성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강우 조건이 매우 좋음에도 비를 100% 활용하고, 물을 대기 힘든 지역이라도 가뭄에 잘 견디고 빨리 자라는 작물을 키운다. 서양과 비교할 때 가장 놀라운 것은 거름과 퇴비의 사용법이다. 세 나라의 토양은 평균보다 기름지고 강한데도 불구하고, 모든 산과 언덕에서 풋거름과 퇴비재료를 가져온다. 추수하고 남은 볏짚이나 작물의 뿌리, 줄기, 잎을 비롯하여 땔감과 목재를 쓰고 남은 재도 비료로 뿌린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모든 종류의 배설물을 귀하게 여기며 잘 처리해 땅에 뿌리고 이를 통해 농사의 효율성을 높인다. 천연비료 속엔 그 자체로 질소, 칼륨, 인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 농부들은 길을 찾고 있다!

농업과 식품시스템이 온실가스 발생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동식물과 미생물의 대멸종,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동물학대와 환경오염, 육식위주 식단의 글로벌화에 따른 인류의 건강 위협 등 우리의 삼시 세끼 관련한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생산과 재배단계에서 82%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생산성과 효율성, 근대화라는 슬로건을 걸고 규모화를 거듭해온 오늘날의 농업은 화석연료와 화학비료, 살충제, 농약, 기계, 종자산업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방식들이 우리 몸과 땅, 지구환경에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지구상에 수많은 국가와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단일작물 재배나 공장식 축산 등이 만들어내는 문제점과 사실들을 확인하면 할수록 예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에 놀랍기만 하다. 앞서 언급한 동아시아 4천 년의 농부들이 주변 환경과 조건들을 활용하고 순환시키며 만들어낸 농업의 지혜를 현시점에 맞게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미국 생태마을 농부이자 작가인 메리 와일드파이어는 순환농업을 통해 기후변화를 타개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려 할 때, 농업부문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비록 많은 도시인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앞으로 닥칠 곤경 속에서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둘째, 농업에서의 변화는 단지 농업부문에서만 탄소배출을 대폭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상 많은 양의 탄소를 추가적으로 격리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농업이 갖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재생순환적 영농방식은 탄소를 안전하게 격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토양의 환경도 개선시킨다. 탄소가 풍부한 흙은 유기물을 많이 함유하고, 그 결과 견고도성(가루로 부서지기 쉬운 정도)을 개선시키며, 토양을 보존하는 미생물과 벌레, 곤충 등을 먹여 살리고, 거기서 자라는 식물도 건강하게 만든다. 건강한 식물은 그것을 먹는 인간과 동물의 건강을 증진한다. 

플랜 드로다운을 비롯하여 많은 기후위기 시대 농업 솔루션은 흙을, 토양을 살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무경운, 피복작물, 간작, 윤작 , 다년생 작물을 비롯해 최소한의 투입재 사용 등을 통해서 생태적인 농업방식을 선택하고 전환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본다.

2020년 현재 30여 만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아이쿱생활협동조합 생산자들이 조직한 파머스쿱은 자연순환농법을 통해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천안 선림농원 김근호 생산자의 과수원에는 유기농 배와 164종의 식물, 300종의 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배나무 아래로 '초생재배' 를 하면서 계절마다 온갖 채소와 잡초들이 자라나고 다양한 곤충과 벌레, 동물들이 드나든다. 풀을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쓰면 벌레가 과일나무로 옮겨가기 때문에, 다시 살충제를 뿌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유채, 머위, 미나리, 달래, 쑥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들을 이용하여 초생재배를 하려면 매년 풀을 관찰하고 어떤 풀이 우점하면 제어해주고 부족한 풀은 야산이나 들판에서 씨앗을 가져다 뿌려주는 등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풀과의 공생을 통해 풀뿌리가 만든 땅속 공간은 공기가 통하고 배수의 길이 된다. 잡초가 거름이 되어 땅과 작물이 건강해지면서 열매의 맛과 향도 더 좋아져 조합원들에게 맛있다는 칭찬을 듣는다.

이와 같이 다년생인 과일나무와 온갖 채소들을 함께 재배하는 수목간작이나 여기에 가축을 풀어 키우는 임간축산을 비롯하여, 열대지역에서 커피, 카카오를 다양한 식물들과 함께 자라게 하는 다층 혼농임업 등의 방식들이 존재한다. 숲 바닥에서부터 올라가는 각 층마다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며 복수의 수평층인 스트라타(stata)를 형성함으로써 열대우림의 생명력과 활기를 농업에서 활용하는 방식이 다층 혼농임업이다. 마카다미아, 코코넛, 후추와 카디멈, 파인애플과 바나나, 커피와 카카오, 고무와 목재 등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혼합된 식물 종을 구성한다.

최근 기후변화와 커피 재배에 관한 한 연구는 혼농임업을 통해 커피 경작지 감소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예측 자료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와 브라질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시뮬레이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브라질 커피의 22%를 생산하고 있는 남동부 지역의 경우 2050년까지 기후변화가 지속되는 경우 해당 지역의 연평균 대기온도는 섭씨 1.4°C~2.0°C 상승한다. 그늘재배 없는 커피의 경우 60% 생산지역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만약 50% 정도로 그늘을 만들어 혼농임업을 채택하는 경우, 고도에 따라 편차가 존재하기는 하나 평균온도를 낮추고 커피생산 지역의 75%를 유지할 수 있다. 혼농임업 커피시스템은 영양성분의 순환, 생물다양성, 탄소저장 등을 증가시키고 온건한 미기후(microclimate)를 만들어내어 평균 대기온도를 낮추고 토양 수분을 높여주면서, 커피꽃의 개화에 미치는 변동성을 줄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커피 생산성을 안정화시켜 준다.

▲ 다층혼농임업-브라질 파젠다다토카 농장 [이미지: 다층혼농임업-브라질 파젠다다토카 농장 홈페이지]
▲ 다층혼농임업-브라질 파젠다다토카 농장 [이미지: 다층혼농임업-브라질 파젠다다토카 농장 홈페이지]

아웃도어 의류회사 파타고니아가 2016년 출시한 롱루트에일(Long Root Ale) 맥주는 미국 랜드연구소에서 30년간 개발한 다년생 밀 '컨자(Kernza)' 품종을 일반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파타고니아와 랜드연구소는 토양을 살리는 농업방식으로 재생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 을 확산하기 위해 활동 중인데, 특히 이들은 다년생 작물에 주목한다. 일년생인 보통의 밀이 얕은 뿌리를 갖고 있는 반면, 컨자 밀은 뿌리가 많게는 5미터까지 풍성하게 뻗어 표토층 유실 없이 토지를 보호할 수 있으며, 많은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포집시킨다. 뿌리가 흙을 부드럽게 부수어서 토양 속에 유익한 미생물과 진균이 번식할 수 있도록 하여 땅을 비옥하게 하며, 물을 모으는 기능이 뛰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살충제 없이 기를 수 있으며 노동력 투입을 줄일 수 있고 작물의 광합성 기간을 늘릴 수 있다. 랜드연구소는 컨자의 상품화에 힘입어 다년생 쌀, 다년생 사탕수수 등도 연구하고 있다.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창시한 자연농법(Natural Farming)은 인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최대한 자연 본래의 활동에 맡겨 작물을 재배하며,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 등 4대 원칙에 따라 농사를 짓는다. 그는 자연농법을 '아무것도 필요 없는' 농법이라고 설명한다.

"가을에 벼를 베기 전에, 벼 이삭 위로 클로버 씨앗과 보리 씨앗을 흩뿌려둔다. 싹이 터서 수 센티로 자란 보리를 밟으며 벼 베기를 하고, 사흘가량 말린 뒤 탈곡을 한다. 이때 나오는 볏짚은 모두 그대로 논에 뿌려놓고, 닭똥이 있으면 그 위에 뿌려놓는다. 그 뒤 1월이 되기 전에, 흩뿌려놓은 짚 위에 볍씨를 넣은 진흙경단을 뿌려놓고 나면, 보리를 벨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5월 20일쯤 보리를 벨 때는 발 아래 클로버가 무성하고, 그 속에 있는 진흙경단 속에서 볍씨가 수 센티 싹을 틔우고 있다. 보리를 베고 말린 뒤 탈곡을 하고, 그때 생긴 보릿짚은 전량을 그대로 논에 뿌려놓는다. 물이 새지 않도록 논두렁을 손보고, 나흘이나 닷새 동안 물을 대주면, 클로버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볍씨가 싹트게 된다. 볍씨가 발아되면 6월과 7월 동안에는 물을 대지 않은 채 그냥 두었다가, 8월이 된 뒤 1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 대었다 떼면 된다. 이상이 클로버와 함께 하는, 벼-보리 혼파에 연속 무경운 직파 재배라 하는 자연농법의 벼-보리 농사 개요다."  

자연농법으로 농사짓는 농장의 풍경은 얼핏 보면 어지럽게 잡초들이 자란 야생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방식의 농법을 통해 생산된 농산물은 오늘날 표준화, 규격화된 많은 국가들의 인증체계나 주류 유통체계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일본을 포함해 한국, 미국 등 자연농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들은 '조화와 공존, 상생'이라는 지혜에 귀를 기울인다. 이미 4천 년의 농부들이 해왔던 삶의 방식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업과 언론들에서 친환경 제품은 더 이상 선택 아닌 필수라는 '필환경'을 언급하고 있는 시대다.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과 수요는 전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으며, 최근의 기후위기 및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살충제 파동 이후 국내 친환경 농산물 재배와 식품생산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수요는 늘고 있으니 수입산 제품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밖에 없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에 토양을 살리는 농업방식을 지원하는 내용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 농지의 25%를 유기농으로 전환한다는 유럽연합의 그린딜은 지속가능한 식품체계를 위해 식품을 소비재가 아닌 공공재로 생각하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식품 생산이 에너지, 물, 토양을 비롯하여 동물복지와 생물다양성, 인류의 건강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기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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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옥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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