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거리를 점거하다! 그린 오큐파이가 길로 나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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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거리를 점거하다! 그린 오큐파이가 길로 나간 까닭은?
움직이는 소분 상점, 그린오큐파이 송윤지 씨 인터뷰
  • 2021.04.12 14:52
  • by 김정란 기자
05:31
▲ 주말, 길 한켠에 그린오큐파이의 승합차가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그린오큐파이
▲ 주말, 길 한켠에 그린오큐파이의 승합차가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그린오큐파이

"아니 이런 게 아직도 나오네요?"

지난 4일, 여름 장맛비 같은 이 비가 그칠까 싶던 일요일 오전, 극적으로 하늘이 개었다. 한 승합차를 둘러싸고 길쭉한 통수세미를 둔 40, 50대 여인들이 옛날 생각에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친환경 제품과 먹거리를 싣고 돌아다니는 '그린 오큐파이(Green Occupy)' 승합차가 세워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세제를 비롯한 친환경 제품, 친환경 먹거리 등을 파는 '움직이는 소분상점'은 그렇게 길에서 시민들과 만났다.

최근 제로웨이스트샵이 속속 생기고 있지만, 지역적, 연령대별로 편차가 심하다. SNS에서는 제로웨이스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활발하게 자신의 활동을 공유하고 있지만, SNS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떨까? 제로웨이스트샵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모두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함께 이야기하게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들이 있다. '그린 오큐파이'다.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이 트렌디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요즘이지만, 가끔은 정말 모두가 쓰레기 문제를 시급하고,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학교, 환경 단체 등에서 만난 송윤지, 박미루, 김민주 씨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린 오큐파이'라는 이름으로 길로 나섰다. 송윤지 씨를 만나 '초록으로 거리를 점거한' 이유를 들어봤다.

'그린 오큐파이'라는 이름은 2011년 금융산업의 폭주에 항의하는 뜻에서 시작됐던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연상하게 한다. 이전의 친환경 캠페인 등에서 많이 보지 못한 단어라는 이야기에 윤지 씨는 "환경 캠페인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뭔가 착한 것 같고, 얌전한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승합차를 길 위에 두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오큐파이(점거)'라는 단어가 알맞은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생각해보니 친환경이 주는 어딘지 여리고, 연약한 이미지를, 오큐파이라는 단어가 다소 중화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 그린오큐파이 행사를 기획한 송윤지 씨. ⓒ라이프인
▲ 그린오큐파이 행사를 기획한 송윤지 씨. ⓒ라이프인

문제의식은 '더 많은 곳으로 나가보자'는 의도를 가진 행사 기획으로 연결됐다. 숲과나눔 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상상은 현실이 됐다. 그렇게 길로 나간 것이 4월의 첫 일요일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사실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첫 행사에서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고, 매출도 생각보다 많았다"는 윤지 씨는 "특히 40, 50대 어머님들이 루파 수세미(통수세미)를 정말 좋아하셨다"고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깃거리를 통해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그들의 목적대로 사람들의 호기심은 작은 승합차 주위로 일렁거렸다. 이렇게 그린오큐파이는 사람들에게 환경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면서 조금씩 마음 한 켠을 차지해 나가고 있다.

이동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은 세 사람이 직접 써보고 손이 가는 물건들로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경제, 소셜벤처 등의 물품도 찾아봤지만, 아직 매출 규모를 예측하기에 너무 이른 단계다 보니 생각보다 물품을 들여오기가 쉽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알맹상점 등 다른 제로웨이스트샵에 자문했고, 여러 도움을 받아 상품 리스트를 구성할 수 있었다.

윤지 씨와 미루 씨, 민주 씨 세 사람은 모두 본업이 따로 있다. 직장인에게는 황금같은 주말을 반납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 "가끔 내가 주말까지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며 웃은 윤지 씨는 "그런데도 아직은 이 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 그린오큐파이에서는 친환경 세제, 먹거리 등을 판매 중이다. ⓒ그린오큐파이
▲ 그린오큐파이에서는 친환경 세제, 먹거리 등을 판매 중이다. ⓒ그린오큐파이

사실 '그린 오큐파이' 기획은 이들을 만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를 준비한 세 사람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됐다. 윤지 씨는 "최근 기후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이런 걸 한다고 뭐가 바뀌긴 할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준비하면서 연락드렸던 분들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주셨다"고 말했다.

그린오큐파이에 쓸 제품을 구하기 위해 연락한 기존 제로웨이스트 샵에서는 "나도 그런 걸 해보고 싶었는데 이런 일에 실제로 먼저 나서줘서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법적인 문제때문에 만난 다양한 부처의 공무원들도 "당장 법률적인 문제를 손보기는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정말 좋은 기획인 것 같다. 국민 신문고 등을 통해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라며 현실적인 대안을 먼저 제안해주기도 했다고.

그래서 이들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린오큐파이는 3개월간의 프로젝트 사업이지만, 이동상점이라는 기획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과 맞닿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N잡러(여러가지 직업을 갖는다는 의미의 신조어)의 시대라고 하지 않나? 이 프로젝트에 완전히 모든 것을 바치지 않고, 당번 식으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참여하고,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를 직접 만들어가면서, 더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윤지 씨의 기대다.

'재미'가 없다면 못할 만큼 이 일에 애정이 깊은 세 사람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제도다. 윤지 씨는 "길에 차를 세우고 '장사'를 하는 것은 실제로는 불법이다. 그래도 현장에서는 좋은 뜻으로 바라봐 주신다"면서도 "소상공인을 위한 야시장 등이 일시적으로 허용되는 것처럼 캠페인성 사업에도 법이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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