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지역을 담다] '인천맥주', 우리 지역 어르신이 광고 모델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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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지역을 담다] '인천맥주', 우리 지역 어르신이 광고 모델이 된다면
박지훈 인천맥주 대표 인터뷰
  • 2021.04.29 11:11
  • by 노윤정 기자
09:15

흔히 기업의 브랜드가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빗대어 보면 지역 브랜드는 지역의 경쟁력이 된다. 그중 지역성을 담은 지역맥주는 사람들이 지역에 관심을 두게 하고 지역에 사람과 자본이 유입되게 하면서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역의 경제·문화 자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맥주 양조장은 단순히 맥주를 양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신포우리맥주, 개항장 등 인천 지명을 딴 수제맥주를 개발한 인천맥주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천맥주에서 선보인 개항로라거는 인천 중구 신포동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과 협업하며 만들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박지훈 대표를 만나 인천맥주와 개항로라거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인천 중구는 한때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다. 특히 신포동은 서울의 명동처럼 활력이 넘치고 호황을 이루는 거리였다. 하지만 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하여 중구는 가장 번화한 도시라는 타이틀을 다른 지역에 넘겨주어야 했다. 인천 신도시들은 발전하고 있으나 구도심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지역이 되어갔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이창길 대표가 인천 중구 구도심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개항로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프로젝트의 과정에서 인천 내에만 납품되는 인천의 지역맥주 '개항로맥주'가 탄생했다.

"큰 사명감은 없다. 일하다 보니 의미가 찾아질 뿐이지, 의미를 찾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고향 동네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인천맥주의 박지훈 대표가 이 대표와 함께 개항로맥주를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자신이 만든 맥주를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지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맥주, 사람들이 찾아와서 마시는 맥주를 만들고 싶다는 갈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고향 동네가 활기를 되찾기 바라는 소망이 깔려있었다.

특히 양조장이 위치한 신포동은 박 대표의 추억이 많은 동네다. 아직도 다니다 보면 이곳에서 놀던 기억이 떠오르는 동네. 양조장 역시 박 대표가 종종 찾던 디스코텍 '팽고팽고'가 있던 곳이다. 그렇게 박 대표는 추억이 있는 곳이자 방치되어 있던 오래된 건물에 들어와 다시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 고향을 떠났던 그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듯이 사람들이 다시 인천을 찾길 바라며 구도심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펍 브랜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연결되도록 양조장 브랜드를 '칼리가리브루잉'이라고 하였으나, '지역'을 지향하는 회사의 성격이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인천맥주로 바꾸었다.

▲ 박지훈 인천맥주 대표. ⓒ라이프인
▲ 박지훈 인천맥주 대표. ⓒ라이프인

개항로라거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시작은 이창길 대표와 술자리에서 나눈 몇 마디였다. 술을 좋아해서 둘이 자주 마시는데, 우리 지역에서 마실 때는 우리가 만든 술을 마시면 좋지 않겠나 싶었다. 이 지역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맥주, 인천의 대표적인 맥주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시작이었다.
대형 주류회사와 경쟁하고 전국에 우리 맥주를 납품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범위를 줄인 다음 그 지역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지역에 맞는 이야기를 가진 분들과 작업했다. 디자인에 들어가는 필체는 개항로 지역에서 오랫동안 목간판을 만들어오신 어르신께 부탁드렸고, 모델은 이 지역에서 극장 간판을 그리셨던 어르신께 부탁드렸다. 우리 선전문구 중 하나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맥주'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세대별 포스터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르신 포스터만 만들었다. 이 거리에 오랫동안 남아계신 어르신과 작업하는 것이 우리 지향점과 가장 맞는다고 판단했다. 모델을 해주신 어르신은 지금도 이 지역에서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다.

인천에 와야만 마실 수 있는 맥주라는 점이 개항로라거에 담긴 가치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듯하다.

개항로라거를 출시하고 나서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납품 문의가 들어왔다. 그런데 개항로라거의 시작이 '우리 동네 오래된 노포에서 우리가 만든 맥주를 마시자'는 것 아니었나. 아직 인천 안에서도 개항로라거, 인천맥주를 모르는 분들이 많다. 인천에 있는 매장 중 90% 이상이 개항로라거를 판매하지 않는다. 일단 인천 안에서 많이 팔렸으면 한다. 많이 팔려야 양조장도 계속 운영이 되고 사업이 지속가능하지 않겠나.

매출을 생각한다면 납품 지역을 한정하기보다 여러 지역에 납품하는 것이 나을 텐데.

맞다. 수익을 내긴 해야 한다. 제품이 아무리 좋은 의미가 있더라도 판매가 안 되고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 지속이 안 되지 않나. 그러면 우리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돈을 벌되, 제품이 인천 안에서 많이 팔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 생각한 의미가 실현될 것이다. 인천에 오면 굳이 다른 지역에서도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마시는 대신 개항로라거를 마셔야지, 이 정도만 되어도 성공이다.

'끝 맛이 좋아야 라거다'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인상적이다. 인천에 오지 않으면 마실 수 없는 개항로라거, 맛은 어떠한가.

시중에 판매되는 대형 주류회사 제품보다 조금 더 보리향이 강하고 조금 더 끝 맛이 부드럽게, 수 번의 테스트를 거치면서 이렇게 맛을 만들어갔다. 기술적으로 맛을 만들어내는 처지에서 굳이 맛 비교를 하자면, 대형 주류회사 제품은 끝에 쓴맛이 나기도 하고 전분을 사용하여 전분 맛이 나기도 한다. 그 맛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고, 그 맛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다만 우리는 대량생산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첨가물을 넣지 않고 숙성기간을 길게 잡으면서 효모를 여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냉장유통해야 한다. 생막걸리와 비슷한 경우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은은한 효모 향이 있다. 그런 것들이 기존 시판 맥주보다 부드럽고 쓴맛도 덜 느껴지게 한다.

▲ 개항로맥주. ⓒ라이프인
▲ 개항로맥주. ⓒ라이프인

개항로라거가 국내 맥주 중 처음으로 비벡 인터내셔널(BeVeg International, 미국의 비건인증기관)의 비건 인증을 받았다.

그렇다. 사실 우리 회사 제품들 대부분이 비건이다. 하지만 굳이 인증을 받진 않았다. 효모 여과 과정에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다른 회사 제품들도 물론 있다. 개항로라거에 굳이 비건 인증을 받은 이유는 제품이 지향하는 바와 제품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맥주 양조 과정에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는 것을 모르더라.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내가 환경 쪽에 관심이 있다 보니까 비건분들이 인증받은 맥주를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대표님의 전사(前事)가 재미있다. 영화를 전공하고, 음악도 했다고 들었다. 양조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음악을 좋아했고 고등학생 때까지는 바이올린을 배웠다. 특히 록을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집에서는 밴드 음악 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영화학과로 진학했다. 뮤직비디오를 좋아했고, 영화 만드는 과에 가면 카메라를 다루니 뮤직비디오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나와 맞지 않았고, 결국 다시 음악을 시작했다. 30살 정도 될 때까지 하고 싶었던 밴드도 하면서 가요 편곡, 방송 쪽 일도 했다. 그런데 일이 썩 잘 풀리진 않았다. 그래서 다 접고 가평으로 들어가서 리조트 일을 5년 정도 하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칵테일과 와인을 판매하는 바를 만들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틀고, 사람들이 오든 말든 공연과 파티를 하고. 그런데 희한하게 잘 됐다. 그게 밑바탕이 되어서 여기까지 왔다.
바를 하면서 맥주 만드는 친구들을 만났고 홈 브루잉(Home Brewing)을 알게 됐다. 맥주 레시피 하나를 가지고 송도 신도시에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라는 매장을 열었다. 그때는 다른 공장에서 OEM 방식으로 맥주를 만들었다. 그게 첫 번째 펍이었는데, 한 6개월은 정말 힘들었다. 손님도 안 오고, 공장에서 생산한 엄청난 양을 20평밖에 안 되는 매장에서 어떻게 다 팔지 싶었다. 다행히 6개월쯤 지나자 손님들이 조금씩 늘면서 지금처럼 자리 잡게 됐다.

인천브루잉이라는 서브 브랜드를 만들려고 했다고 들었다.

양조장을 처음 만들 때 인천브루잉이라고 할까, 아니면 원래 하던 펍과 연결성 있게 칼리가리브루잉으로 할까 고민했다. 칼리가리브루잉이라고 하면 인천이라는 지역을 담기에 모호한 느낌이 있기는 했으나, 사업 초창기다 보니까 회사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칼리가리브루잉이라고 이름 지었다. 대신 지역색을 가진 브랜드를 하나 더 만들려고 했는데, 그걸 준비하던 중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무산됐다. 회사가 많이 어려워져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의 지역지향적인 부분을 명확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칼리가리브루잉이라는 브랜드 대신 인천맥주라는 브랜드를 선택했고, 준비 중이던 맥주 라인을 인천맥주를 통해 선보이고자 했다.

▲ 인천맥주 양조장 전경. ⓒ라이프인
▲ 인천맥주 양조장 전경. ⓒ라이프인

로컬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과의 관계가 아닐까. 전국적,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먼저 사랑과 지지를 받아야 한다. 개항로라거를 예로 들면, 일단 '이 동네 사람들은 다 마셔보게 하자'는 목표로 시작해서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런 지역 주민들의 입소문으로 개항로라거가 조금씩 인천 지역에 퍼지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에서 받는 힘이 지역 브랜드 성장의 밑바탕이다. 마케팅, 자본력도 중요하지만 지역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 지역과 잘 관계 맺고 있는 노포를 봐도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게 운영이 어려울 때 한 번이라도 와서 매출을 올려주고 가는 건 단골들이다.

로컬 브랜드가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생각하는지?

신포동에 들어올 때 여기에 양조장이 생기면 신기해서라도 사람들이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유동인구가 생기면 사람들이 굳이 임대료 비싼 지역으로 가지 않고 임대료가 저렴한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해볼 수 있게 되지 않겠나. 그렇게 먹고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생기다 보면 사람들이 더 유입될 테고. 또,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면서 지역이 활기를 되찾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특히 개항로라거처럼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직접 개발한 소스를 사용하는 음식점, 직접 빵을 구워서 파는 카페를 더 궁금해하고 찾아가지 않나. 우리 가게만의 것, 우리 지역만의 것을 제조해서 선보이면 사람들이 지역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앞으로의 계획과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양조장 1층에 장비가 들어와야 해서 펍을 운영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새로운 펍을 오픈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늦어도 6월에는 인천맥주의 개항로 펍이 생길 것이다. 그곳에서도 지역 분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장사하고 계신 어르신과 협업하여 안주를 만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오랫동안 지역을 지킨 분들과 연계하다 보면 지역성 있는 무엇인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리고 단기적 목표는 개항로라거가 '인천에 오면 마셔봐야 하는 맥주'라고 인식될 수 있도록 집중해보려고 한다. 인천에 놀러왔을 때 어느 지역에서든 편하게 개항로라거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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