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서울까지 가야 할까?" 지역에서 직접 만드는 우리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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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서울까지 가야 할까?" 지역에서 직접 만드는 우리 일자리
김혜현 플리마코협동조합 대표 인터뷰
  • 2021.09.15 09:00
  • by 노윤정 기자
▲ 브릿지 디 마켓 사진. ⓒ플리마코협동조합
▲ 브릿지 디 마켓(Bridge D. Market). ⓒ플리마코협동조합

예향(藝鄕)은 광주를 수식하는 수많은 표현 중 하나다. 그만큼 광주는 예술과 가깝고 문화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다. 이를 방증하듯 광주가 2000년대부터 추진해온 도시 발전 계획 사업의 표어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이다. 2년에 한 번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손꼽히는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이자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된 도시도 바로 광주다.

이러한 설명을 놓고 보자면 광주는 지역 예술가들이 살아가기에 그리 열악한 환경의 도시가 아니겠다는 추측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화예술 인프라 역시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 속에서, 그 외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서울을 오가야 한다. 광주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 마켓이 광주에는 없었다. 그래서 작가로 활동하는 친구들이 광주에서 만든 작품을 서울에 가서 판매해야 했다. 친구들 모습을 보다가 '왜 꼭 서울까지 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현 대표가 플리마코협동조합(이하 플리마코)을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인 친구들이 주말만 되면 짐을 싸서 서울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광주에도 작가들을 위한 시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광주에 대인예술야시장이 있기는 했으나 오롯이 작가들을 위한 시장과는 성격이 달랐다. 그래서 동명동 카페거리에서 직접 예술품을 판매할 수 있는 플리마켓을 열었다. 규모는 작았으나 플리마켓에 참여한 작가들의 매출은 예상 이상으로 높았다. 거기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김 대표는 작가인 친구들과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마을기업으로 지정까지 받았다. 지역에서 우리의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의미였다. 이에 따라 현재 플리마코는 작가들을 위한 플리마켓인 '브릿지 디 마켓'(Bridge D. Market)과 상설 오프라인숍이자 메이커스페이스인 '여덟번째 파장'(8th wave)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에게 지역 청년 작가들을 든든하게 지원하고 지역 문화 증진에 기여하고 있는 플리마코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 여덟번째 파장. ⓒ플리마코협동조합
▲ 여덟번째 파장. ⓒ플리마코협동조합

메이커스페이스 이름인 '여덟번째 파장'은 어떤 의미인가.

빛의 색파장이 우리가 잘 아는 무지개색, 총 일곱 가지이다. 그 일곱 가지 파장 외에 새로운 파장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여덟번째 파장이라는 이름을 붙여봤다. 무엇이 되었든 한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다. 이렇게 조성한 메이커스페이스 안에서 작가들이 프로토타입을 더 활발하게 만들기 시작했고, 오프라인숍을 함께 운영하면서 작품 제작을 매출과 연결시켰다. 그리고 오프라인숍 매출이 조합의 매출로도 연결되어 법인이 더욱 안정화되었고, 수익을 재투자하면서 작가들을 위한 사업을 계속 구상하고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사업에 대한 이해가 우리와 지역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어떤 행사를 진행할 때 우리는 연출이나 분위기를 조성하고 소품 같은 세부적인 요소들을 콘셉트와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광주에서는 비엔날레처럼 큰 행사가 아니면 그런 부분들이 잘 고려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자체와 연계해서 사업할 때 우리가 어떤 연출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처음에는 의아해하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점차 우리가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취지를 이해하고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람들이 원래 살던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려고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자원이나 인프라가 서울에 쏠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물론 한 적이 있다. 서울 중에서도 예술 작가들이 많이 활동하는 동네에 가보면,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다. 지금도 서울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서 자주 서울을 오간다. 그런데 일은 광주에서 계속하려고 한다. 지역에 기회가 적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기회가 적은 부분들도 우리가 열심히 활동하고 지자체와 협력하면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블루오션이라는 점이 로컬 비즈니스의 장점인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다.(웃음) 그리고 블루오션 시장 속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내가 광주에서 자라서 더 관심이 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 광주 동구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서울은 너무 큰 도시라서 로컬의 느낌을 주기가 어렵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로컬의 느낌을 충분히 담아내면서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로컬에는 정말 소재거리가 많다. 그러니까 실력 있는 분들이 서울로만 가지 말고 지역에 관심을 갖고 와서 함께 협업하거나 브랜드를 만들면 시너지가 엄청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출이 걱정일 수 있겠으나, 광주에도 문화예술 상품을 소비할 소비자가 많다. 우리도 처음에는 소비자가 있을까, 예술 작가들 굿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플리마켓을 만들고 편집숍을 운영하니까 매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동안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적었을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로컬 비즈니스를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경제기업이니까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가치 창출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회적경제기업이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에 기역하고 있는 분들이 많으니까 혼자 하지 말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브랜드 하나를 만들더라도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단지 스토리텔링 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10년 뒤에도 이 브랜드나 프로젝트, 콘텐츠가 매력 있고 의미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 브릿지 디 마켓 사진. ⓒ플리마코협동조합
▲ 브릿지 디 마켓. ⓒ플리마코협동조합

작가들 매출이 5배 이상 상승하는 등 브릿지 디 마켓 운영 성과가 굉장히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지난해 예술경영대상에서 수상하는 등 여러 수상 경력이 있던데,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브릿지 디 마켓은 민간 법인(플리마코)에서 운영하면서 모든 과정에 청년 작가들이 참여한 마켓이다. 이런 마켓이 지역에서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조금 더 시민들에게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감성과 분위기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 마켓에는 다른 마켓처럼 판매하는 분들(Seller)도 많이 있지만 작가분들도 많이 모인다는 특징이 있다. 또, '조합'이 좋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는 예술 작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지만 신문방송학과 출신으로 연출, 제작 쪽을 전공했다. 기획하고 연출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러니까 구성원들이 서로 잘하는 분야의 일을 하면서 윈윈(Win-win)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 예술 작가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 것인지, 함께 아이디어를 얻는 일에는 관심이 많고 잘 뭉치지만, 서로 간섭하는 것은 지양한다. 연대의 균형을 잘 맞추면서 일하다 보니 시너지가 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비영리 법인을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사업이 잘되면 당연히 수익도 생길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사업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내 친구들 같은 작가들을 위한 판로가 지역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라서 그렇다. 이런 마음으로 사업을 구상하다 보니까 조직 안에 '공동의 책임감', '함께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협동조합, 마을기업이다.

▲ 김혜현 대표. ⓒ플리마코협동조합
▲ 김혜현 대표. ⓒ플리마코협동조합

6년째 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변화가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지?

일단, 우리가 자리 잡고 있는 동명동이 많이 변했다. 동명동은 예전에 부잣집들이 모여 있던 동네라서 주택가밖에 없었고, 후에 카페거리가 생겼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동명동에 조금씩 젊은 예술가, 젊은 창업가들이 찾아왔고, 그 안에서 우리는 브릿지 디 마켓 등을 통해 동명동과 충장로를 연결하는 시도를 했다. 충장로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지만 지금은 조금 올드해진 곳이다. 그곳을 동명동과 연결하면서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동명동 쪽으로도 충장로를 주로 찾던 젊은 층이 유입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동명동에 공방을 차리는 분들이 더 많이 생기고 문화예술 쪽으로 활성화되었다. 그래서 5~6년 전과 비교하면 지역에서도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인식이 어느 정도 생긴 듯하다.
솔직히 처음부터 지역성에 큰 의미를 두고 사업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우리가 사는 곳을 떠나지 않고 살 수는 없을지를 고민한 것이 다였다.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니까 광주라는 지역, 동명동 골목골목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애정을 갖게 되더라.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큰 변화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제대로 된 마을기업을 만들어야겠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청년 작가들과 작업하면서 지역의 문화예술을 향상시키고 해외에 진출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제는 마을의 인프라를 더 폭넓게 활용하면서 더 많은 세대를 위한 사업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동구에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경제기업이 있다. 그들과 협업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고, 그 힘으로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해외 협동조합들도 있지 않나. 그런 것처럼 동구 자체가 함께 잘 먹고 잘 살면서, 동시에 더 큰 시장으로도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를 우리 조합이 만들어보고자 한다. 이 지역이 모든 세대가 미래를 그리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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