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뱅크'에서는 모두의 시간이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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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뱅크'에서는 모두의 시간이 평등하다
  • 2021.12.01 10:22
  • by 노윤정 기자
▲ 11월 27일, (사)타임뱅크코리아와 경기연구원이 공동주최하는 '한중 타임뱅크 포럼'이 열렸다. 온라인 화면 갈무리.
▲ 11월 27일, (사)타임뱅크코리아와 경기연구원이 공동주최하는 '한중 타임뱅크 포럼'이 열렸다. 온라인 화면 갈무리.

타임뱅크(Time Bank, 시간은행)는 우리에게 아직은 생소한 개념이다. 시간을 저장하는 은행이라는 뜻을 가진 타임뱅크는 봉사한 시간을 저축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찾아 쓰거나 기부할 수 있도록 한 일련의 체계를 말하고, 타임뱅크 운동은 이처럼 시장경제 밖에서 이루어진 노동(봉사활동)을 가치로 환산하여 가상의 화폐(시간)를 지급함으로써 상호 호혜적인 봉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운동이다. 타임뱅크 안에서는 모두의 시간, 모두의 노동가치가 평등하다.

타임뱅크 운동은 초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돌봄'의 새로운 모델로서 타임뱅크 도입 시도가 확산되는 추세다. 이에 (사)타임뱅크코리아와 경기연구원은 27일 '한중 타임뱅크 포럼'을 개최하여 한국과 중국의 타임뱅크 현황과 사례를 공유하고 확산 및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 첸공(陳功) 북경대학교 교수. 온라인 화면 갈무리.
▲ 첸공(陳功) 북경대학교 교수. 온라인 화면 갈무리.

첫 번째 주제 발표는 중국 북경대학교 인구연구소 소장인 첸공(陳功, Chengong) 교수가 맡았다. 그는 중국의 타임뱅크 운동의 배경, 현황, 북경대에서 3년간 진행한 연구와 실천 경험, 타임뱅크 운동 발전을 위한 제언과 협업에 대한 견해 등을 이야기했다.

중국에서 타임뱅크 운동이 시작된 배경에는 고령화, 자원봉사 활동 확대, 거버넌스 역량 강화, 블록체인 등과 같은 새로운 정보기술의 발달 등이 있다. 특히 타임뱅크 운동은 고령화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중국 정부가 2018년 발표한 인구 고령화 대응계획 중에도 타임뱅크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자원봉사 활동에서 고령층의 역할을 확대해서 그들이 성과를 공유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첸공 교수는 "중국에서는 공동번영과 높은 수준의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선, 기부, 공공복지를 활용하고자 한다. 이는 기부와 자선에 근거한 사회 분배를 의미하는 것이고, 타임뱅크가 이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첸공 교수는 100개 사례를 대상으로 4차에 걸쳐 수행한 중국 타임뱅크 연구 조사 결과를 공유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타임뱅크 운동은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빠르게 확산 ▲정부가 주도하는 정부-시장-사회단체 혼합형 모델 ▲상호지원, 노인공경, 효와 같은 전통 가치에 기초 ▲첨단기술 활용 등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타임뱅크 운동은 중국 내에서 △고령층 상호지원의 새로운 모델 △대학생 및 시민들에게 봉사활동 참여 기회 제공 △사회적 세력을 결합하고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사회적 거버넌스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다만 현재 중국 타임뱅크 운동은 아직 시민들의 이해도가 부족하고 타임뱅크 관련 규정이 완전히 수립되지 않았으며 활용할 수 있는 자원과 기관의 운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지역 간 기술 활용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점 역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첸공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타임뱅크 연합 또는 본부 수립 ▲법률적인 측면에서 타임뱅크 관련 규정 강화 ▲타임뱅크와 지역사회의 결합을 위해 통합적인 기능을 하는 조직 수립 ▲기술 적용 능력 강화 및 공공복지 차원의 할당 효율성 개선 등을 제시했다.

또한 첸공 교수는 타임뱅크 발전을 위한 제언으로 "먼저, 학술연구 교류의 강화를 제안하고 싶다. 두 번째, 타임뱅크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하여 결과를 발표하고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기회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플랫폼이나 대화 창구를 활용해서 다른 나라의 여러 기관들과 협력했으면 좋겠다. 젊은 학자, 박사 과정 학생 등의 상호 방문을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했으며 "타임뱅크는 인간의 상호지원을 위한 주요한 방법이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다른 국가와 함께 상호 교류하고 싶고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말로 발표를 갈무리했다.

▲ 손서락 타임뱅크코리아 대표. 온라인 화면 갈무리.
▲ 손서락 타임뱅크코리아 대표. 온라인 화면 갈무리.

이어 손서락 타임뱅크코리아 대표가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타임뱅크 운동 현황을 전했다. 국내에서의 타임뱅크 운동은 성공회 요한선교센터의 김요나단 신부가 소개하고 이끌었다. 손 대표는 "김 신부는 사제로서 긴 시간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다. 그러면서 자원봉사의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봉사현장에서 봉사자와 수혜자가 뚜렷하게 나뉘어져, 봉사자의 소진 문제가 발생하고 수혜자의 무기력과 의존증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타임뱅크와 코프로덕션(co-production)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신부는 구미에서 봉사활동 시간을 적립하여 필요할 때 활용하거나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사랑고리 운동'을 시작했고, 타임뱅크 운동의 창시자인 에드가 칸 박사의 저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No more throw away people)를 번역하여 출간한 뒤 칸 박사를 한국에 초청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에서 타임뱅크 운동은 다양한 모델을 만들며 조금씩 확산됐다. 그 가운데 2017년 타임뱅크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타임뱅크코리아가 설립됐다. 타임뱅크코리아는 타임뱅크 코디네이터 훈련 및 양성, 연구와 홍보 및 정책 제안, 타임뱅크를 시작하는 단체들 지원, 해외 타임뱅크 기관들과의 네트워킹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2020년에는 서울시 1인가구를 위한 타임뱅크를 운영하면서(서울시 1인가구 상호 나눔과 돌봄 시간은행 구축 및 운영사업) 타임뱅크 성과지표를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타임뱅크 온라인 플랫폼 '타임클라우드' 개발을 시작했다.

손 대표는 향후 국내 타임뱅크 운동이 나아갈 방향으로서 ▲풀뿌리 운동에 기반할 것 ▲정부의 공공서비스와 연계하기 위해 노력 ▲타임뱅크 운동의 이론적 기초가 될 연구와 교육 활동 ▲타임뱅크 플랫폼을 안정화하고 블록체인, 인공지능(AI) 기술 적용하기 위해 노력 ▲타임뱅크의 아시아 네트워크 강화 등을 언급했다.

▲ 에드가 칸 박사. 온라인 화면 갈무리.
▲ 에드가 칸 박사. 온라인 화면 갈무리.

주제발표가 끝난 후, 에드가 칸 박사는 타임뱅크와 사회복지 혁신에 관해 이야기했다. 칸 박사는 "현재 나타나는 사회 문제를 보면 그 기저에는 사회적 고립이라는 원인이 있다"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철저히 혼자이다. 핵가족화되면서 가족 간의 협력이 약해졌다.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도 심각하다. 혼자 사는 경우도 많고,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낀다"고 말하며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타임뱅크의 아이디어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핵심 원칙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고 준수하는 것이 타임뱅크 운동의 힘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칸 박사는 타임뱅크 운동의 핵심 원칙을 ▲자산 ▲새로운 노동의 정의 ▲호혜성 ▲사회적 자본(공동체 등) ▲(타인에 대한) 존중 등으로 정리했다. 즉, 연령과 장애 여부와 관련없이 모든 사람들이 능력(자산)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 혹은 시민으로서 약자와 사회를 돌보는 활동을 시장에서의 노동과 동일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타인에게 도움을 받으면 나 역시 그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하며, 누구도 혼자 살지 않기 때문에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해 사회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칸 박사는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공공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고 NGO나 정부에서 이러한 가치를 실천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경기연구원의 김정훈 연구위원는 토론 시간을 통해 타임뱅크 확산을 저해하는 요소를 이야기하며 "타임뱅크는 공동체 네트워크에 기반하는데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공동체성에 의해 운영되기 어려워지고, 반대로 참여자가 적어지면 서비스의 필요자와 제공자의 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불일치가 세대 간의 차이로도 나타날 수 있는데, 노인의 필요를 청년이 채워줄 수 있는 가능성은 크지만 청년의 필요는 노인이 채워주기 어려운 것이 현실적인 문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타임뱅크는 하나의 유형이 아니라 공동체 특성, 사회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연구위원은 타임뱅크 확산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소로서 부족한 사회적 자본을 지적했으며 "커뮤니티 단위의 활동가들이 부족하다. 활동가들이 중앙정부로 많이 이전하면서 지역은 인력이 축소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장시간의 노동시간도 자발적인 사회 참여를 줄어들게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러한 한계를 고려했을 때 타임뱅크의 본래 목표와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정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나의 해결책으로서 '참여소득'과 연계하는 방안을 생각해봤다.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한 참여자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타임뱅킹과 소득을 결합할 때 이 소득은 금전보다는 시간의 형태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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