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창작자의 상상력으로 '누워 있는 마을호텔' 기획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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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창작자의 상상력으로 '누워 있는 마을호텔' 기획자가 되다
사회적기업 ㈜영화제작소 눈 강경환 대표 인터뷰
  • 2022.06.02 18:36
  • by 이인경 객원기자
08:06

이인경 前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장이 라이프인 객원기자로 참여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사회적경제조직을 돋보기로 자세히 살펴보며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넷플릭스로 상징되는 OTT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 영상 미디어 작품은 연일 호평을 받고 있다. 더 나아가 소위 'K-시리즈'의 성공 스토리는 채널이 다양화되며 더 많은 창작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진행한 '글로벌 무대로 확장한 K-콘텐츠 플레이어 생존 전략과 그에 따른 진흥 정책은?'이라는 제목의 대담에서는 영상 미디어 산업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지금이 위기라고 말했다. 지금은 생존을 위해 모험을 감행해야 할 영화 산업의 격변기이고, 협력을 위해 자주 만나야 하며, 산업 내 건강한 모델을 만드는 데 기여하며 가능성 있는 창작자를 발굴·육성해야 한다는 합의도 있었다. 이 낯설지만 익숙한 진단이 사회적기업 영화제작소 눈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다.

▲ 강경환 영화제작소 눈 대표. ⓒ이인경
▲ 강경환 영화제작소 눈 대표. ⓒ이인경

대중들은 스타덤에 오른 배우나 감독들의 무명시절 고생담을 들으며 영상 미디어 상품을 소비한다. 한 해에 40개 이상의 대학에서 수많은 영상예술가가 배출되지만, 젊은 창작자들에게 기회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불합리한 계약 관행과 척박한 투자 환경,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인내자본의 부재 등은 주류시장의 플레이어들에게 생존하기 위해 모여야 한다는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강경환 영화제작소 눈 대표는 창작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커뮤니티와 연결하고 사회혁신의 사례를 조직하여 콘텐츠로 제작하는 일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영화제작소 눈은 주류 시장과는 다른 시선, 다른 경로로 목적지를 정한 듯하다.

영화제작소 눈은 영상미디어 분야의 1세대 사회적기업이다. 독자적인 영상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창작자와 영화인의 일거리를 연결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역할을 하며, 영상과 영화로 사회혁신 사례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2월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의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를 통해 영화제작 분야 사회적기업 설립을 위한 창업팀으로 시작했으며, 1년 뒤인 2010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단편영화 '감독을 기다리며', '키친1015',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내 친구 외갓집은 산호세' 등 다수의 작품을 제작했고, 여성, 인권, 장애인, 환경, 사회적경제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이슈와 해법들을 영상으로 담아왔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와 지병으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어요. 장래가 유망하다고 주목받던 신예 시나리오 작가가 작품을 계약하고도 상영이 되지 않으면 잔금을 주지 않는 업계의 관행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에요. 창작을 위해 막일을 하며 버티던 창작자들이 마주한 비극이었죠. 불공정 관행을 바꿀 대안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러한 비극은 몇 년에 한 번씩 반복되어 나타났다. 그때마다 정부도, 사회도, 업계 관계자들도 화들짝 놀라 대책을 내놓았으나 스타 작가와 감독, 스타 배우의 그늘에 가려진 수많은 이들의 그림자 노동과 불공정 관행은 여전했다. 이에 2016년 강 대표는 창작자로서 자신들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창작을 멈추지 않을 방법으로, 일거리를 연계하는 사업을 해보자고 미션을 정비했다.

영화제작소 눈은 단역 배우들을 위한 에이전시와 창작자들의 일거리를 연계하기 위한 사업들로 동분서주했다. 배우 에이전시와 신뢰를 쌓으며 사업이 안정화되어 가던 중, 사업 담당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 일을 계기로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게 됐다. 당시 강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다시 묻게 되었다.

"배우와 창작자의 일거리를 연계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지속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했고, 사회적기업으로서 가치와 미션을 비즈니스에 관철시켜 줄 만한 새 적임자를 찾기도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인가에 대해 회의가 들었죠. 한편으로는 영상미디어 분야 사회적기업도 꾸준히 늘어났어요. 다양한 형태로 신생 기업들과 만나 왔고 때로는 창업도 도왔는데 그들과 경쟁자로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되자 우리는 문을 닫자고 마음을 먹기도 했었죠."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을 따로 하자'라는 마음이 모아졌다. 새로운 과업은 창작자들이 영화제작소 눈을 공동의 브랜드로 활용하여 따로 또 같이 일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영화제작소 눈이 사회적기업인 한, 기업 자체를 성장시키려는 전략은 갖지 않으려고 해요. 눈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비용을 벌기 위해 일하자는 것이죠. 그것은 창작자들과 협력하고 사회혁신의 가치를 함께 담아낼 협력자들과 네트워킹하며 성장의 기반도 함께 마련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강 대표는 독립예술인들의 영상 제작을 지원하고, 장애인 전문 창작자를 양성하며, 영상을 매개로 다양한 사회혁신 기업과 사례를 만들고 연결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특히 인디 뮤지션의 영상 제작은 영화제작소 눈이 투자하는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적기업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안다고 해도 취약계층을 돕는 기업이라거나 정부 지원으로 사업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가진 분들이 많죠. 우리는 영상에 사회적 가치를 매력 있게 담아 알리고 싶어요. 영상 제작 일을 하다보면 많은 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이 고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모든 것을 담아 달라는 요구를 받기는 하지만요"라며 강 대표는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영상은 단순히 알리기 위한 수단인 것만이 아니라 시민과 소비자를 연결하기 위한 재해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 지역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로 가자

▲ 고한 18번가 전경 ⓒ고한18번가 마을만들기 위원회
▲ 고한 18번가 전경 ⓒ고한18번가 마을만들기 위원회

"우연한 기회에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18번지 마을을 방문하게 됐어요. 석탄 산업의 퇴조로 광부들이 떠난 적막한 마을에 활력을 만들어 보려는 주민들의 초청으로 문화예술 사회적기업가들과 만났어요. 그 후로 3년간 만나고, 듣고, 고민을 나누면서 '마을을 호텔로 만들자'고 제안하고 참여하게 됐죠."

강 대표에게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새 정체성을 갖게 해 준 '고한읍 마을호텔 18번가 프로젝트'는 사회적기업가로서의 지향성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고한읍은 강원랜드에 인접한 마을이다. 카지노와 레저시설이 지역에 들어서고 수조 원에 달하는 정책 자금이 부어졌지만, 마을은 더 황량해져 깊은 어둠에 빠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강원랜드에 기대지 말고 주민 스스로 마을의 활력을 찾자는 의지는 민관산학 협동의 산물이고 도시재생사업의 좋은 모델로 주목받았다.

마을로 돌아온 청년예술가에게 창업을 제안해 사진관을 만들고, 꼭 필요한 일을 먼저 실행할 줄 아는 이장과 골목 환경을 차근차근 바꿔 나가는 일이 시작됐다. 작은 변화의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우리가 이제 뭘 해야 해?"라는 주민들의 질문에 강 대표는 창작자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마을이 호텔이 되자, 서 있는 호텔이 아니라 누워 있는 호텔을 만들자'라고 제안한 것이다. 18번가 골목 안에 주민들이 원래 하던 사업을 호텔 안에 담고자 했다. 여인숙을 객실로, 사진관, 중식당, 세탁소, 슈퍼의 주인들이 호텔리어가 되는 것이다. 주민들이 누워 있는 호텔의 개념을 이해하자 사업자들이 모여 만든 '고한읍 마을호텔 18번가협동조합'이 구성됐다. 어두웠던 마을에 주민이 스스로 사회적경제의 불을 켰다.

고한읍 18번가 골목길을 오가며 강 대표가 스스로에게 세웠던 일의 원칙은 '마을에 머물 수 있게 해야 한다', '크게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아지는 마을의 삶이어야 한다', '주민들이 하던 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주민들이 함께해야 한다'였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 듯이 로컬크리에이터로서 제작에 참여한 강 대표는 "사회적기업가로서, 기획자이자 경영자로서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운동가로서의 정체성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운동이 한 명의 스타가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는 신화를 벗어나게 해 줄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모델' 만들기가 늘 진행형이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사회적경제의 깊이를 더하고 품을 더 넓게 할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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