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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과 사회적경제
  • 2022.10.21 08:00
  • by 김찬호 라이프인 이사장(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04:19
ⓒ정책브리핑
ⓒ정책브리핑

팬데믹이 수그러들어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한국에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어났다. 특히 서양인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느낌이다. 코로나 기간에 <기생충>, <오징어게임>, BTS 등으로 K-콘텐츠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서구권에서 코리아의 브랜드 파워가 높아진 덕분이다. 한국인의 문화적 저력은 대중문화만이 아니라 클래식 분야에까지 발휘되고 있는데, 유럽의 유명 음악 콩쿨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최고상을 받는 것이 이제 그다지 놀라운 뉴스가 아니게 되었다. 서양 문화에 주눅이 들어 모방하기에 급급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듯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에서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한가? 문화 콘텐츠에서 드러나는 소프트파워가 우리의 삶에서도 체감되는가? 외국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고 있을까?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고달프고 처절한 인생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의 근원적 모순과 불가피한 고통을 탁월하게 형상화하는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바꿔 갈 수 있는 실마리를 그 안에서 찾기는 대단히 어렵다. 물론 그것은 예술의 몫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대표선수들이 우승하는 것보다 국민의 체력과 건강이 향상되는 것이 중요하듯이,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윤택해지는 것이 더 소중하다. 문화예술을 통해 살벌한 생존 경쟁의 압박을 완충하고, 저마다 품고 있는 상처를 치유 또는 승화시키며,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통로를 넓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생활 문화의 토양에서 더욱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사회적경제와 문화가 만나는 접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대안적 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맺어진 사회적 유대는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더 나은 삶의 확장을 지향한다. 그러려면 다른 세계에 대한 비전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타개해가야 한다. 그 운동이 지속 가능하려면 한편으로 정밀한 실천의 전략과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가슴 설레는 낭만과 환상이 있어야 한다. 상상은 얼핏 막연하고 철없는 몽상처럼 여겨지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나침반이다. 사회적경제에서 추구하는 문화예술은 그러한 열망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이어야 한다.

그것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생산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이나 이탈리아에서 실행되어온 '문화협동'의 사례들이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일본에서 1966년에 시작된 '어린이 극장' 시민 활동의 경우,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연극을 스스로 기획하여 공연을 꾸린다. 기존의 상업화된 공연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메시지를 부모들이 함께 창안하여 작품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뜻이 좋아도 일정한 관객이 확보되지 않으면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그들은 네트워킹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전국 어린이극장 부모자녀극장 연락회'라는 조직을 통해 순회공연을 하면, 한번 만든 작품으로 여러 번 공연할 수 있고 참여한 예술인들에게 적절한 수입을 보장할 수 있다. 말하자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여 환경친화적인 농산물을 유통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경제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의 협동조합이 다양하게 결성되었다. 개개인의 역량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열악한 현실에서 서로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기 위한 시도들이다. 그런데 단순히 생존 전략의 차원에 머문다면 한계가 분명할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 그 공허한 마음의 풍경을 응시하면서 거기에 어떤 변화의 씨앗을 심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웃의 일상을 깊이 관찰하면서 창작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그 결과물을 나누면서 참신한 대화의 문이 열려야 한다. 본래 예술은 우리의 남루한 자화상을 비춰보는 거울, 새로운 존재를 꿈꾸는 언어다. 사회적경제는 바로 그 본질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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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라이프인 이사장(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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