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여성이 '안전하고 나답게' 농촌을 꿈꿀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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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여성이 '안전하고 나답게' 농촌을 꿈꿀 수 있도록"
농업회사법인 청년마을(주) 최나현 씨, 한별 씨 인터뷰
  • 2022.11.08 09:00
  • by 노윤정 기자
11:33
▲ 청년마을(주) 전경. ⓒ라이프인
▲ 청년마을(주) 전경. ⓒ라이프인

높은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서 사방을 막고 있고, 늘 사람들로 번잡한 도시. 답답하고 복잡한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전원(田園)으로 떠나 자연경관을 즐기며 한적하게 사는 삶을 꿈꿔보지 않을까. 하지만 일터와 잘 구축된 인프라가 주는 편리함을 등지고 훌쩍 도시 밖으로 떠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도시 밖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면 터전을 옮기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귀촌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살 수는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에 있는 청년마을㈜은 이처럼 농촌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지원하고 그들이 농촌에서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청년 농촌 정착 플랫폼'이다. 청년마을 한석주 대표는 2005년 대안학교로 시작해 (사)농촌공동체연구소를 거치면서, 농(農)의 가치를 지키고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서 청년들이 점차 사라지고 구성원들 역시 청년 당사자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농촌이 지속가능하려면 청년들이 계속 찾는 지역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비빌 언덕'이 되어 줄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 끝에 한 대표는 지난 2019년 '농업회사법인 청년마을'을 설립했다.

한별 씨(별)와 최나현 씨(짜미)는 덕산 지역에 정착하기를 시도하며 청년마을과 인연을 맺었다. 덕산에서 자란 한 씨는 성인이 된 후 도시로 이주해 일하다가 본가가 있는 덕산으로 돌아왔고, 익숙한 지역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청년마을의 지역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최 씨가 청년마을의 지역살이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도 올해 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재충전과 진로 재탐색의 시기를 갖기로 결심했을 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최 씨에게 농산촌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환경이었으나, 서울에서 알고 지냈던 한 씨에게 '거주지나 금전적인 부분에서 부담을 덜면서도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덕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청년마을에서 모인 두 사람은 올해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청년 여성 농촌 정착 지원 프로그램으로, 청년 여성에게 농촌 지역을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고 정착에 필요한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청년마을을 비롯한 8곳의 운영기관을 선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청년 여성이 조금 더 안전하게 농촌에서의 삶을 탐색하도록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농촌은 잘 모르지만 살아보고는 싶어!' 캠프 등 청년마을이 운영하는 시골언니 프로젝트는 프로그램 전반에 여성주의 관점을 녹여 낸 점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청년 여성 당사자로서 두 사람이 귀농·귀촌하여 느끼는 솔직한 소회와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한 씨(이하 한별)와 최 씨(이하 최나현)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청년마을에서 만난 한별 씨와 최나현 씨. ⓒ라이프인
▲ 청년마을에서 만난 한별 씨와 최나현 씨. ⓒ라이프인

청년마을 사업의 성격을 크게 '청년들의 농촌 정착 지원', 그리고 '농업 가치와 농촌 공동체의 보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나?

최나현: 우리는 농사만이 아니라 농산촌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상상하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그래서 청년들이 5~6개월의 시간 동안 다양한 일을 탐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산촌 활성화 프로그램도 있다. 마을 주민들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활동들인데, 최근에는 주민들과 교류하는 자리로서 '월악산 가을 송이 축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공연팀을 부르거나 전시를 기획해서 마을 행사를 열기도 한다.
농업적 가치에 집중하는 사업으로는 '청년 장기 귀농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농사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체계적으로 농사를 배우고 농촌에서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주변 농장을 견학하거나 네트워킹 모임을 만든다. 그리고 청년마을은 충북·세종 권역 사회적농업 거점농장이기도 하다.

한별: 이 모든 사업들의 중요한 목표는 청년들이 농촌의 새로운 주민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곳은 목적지라기보다는 지역 주민의 삶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하나의 정차역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 청년마을 숙소동. 살아보기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라이프인
▲ 청년마을 숙소동. 살아보기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라이프인

청년 여성들의 농촌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보면 여성주의 관점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청년 여성 당사자로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느낀 소회가 있을 것 같다.

최나현: 나 역시 청년 여성 당사자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모여서 함께 고민을 나누는 과정은 나에게도 소중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그런 부분들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어떤 면에서는 신청하는 사람에게 긴장감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가자를 모집할 때,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모집 인원이 마감됐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는지, 내년에도 이 사업을 계속하는지 문의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걸 보면서 청년 여성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눌 기회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시골언니 프로젝트의 핵심은 새롭게 이 지역에 오고 싶어 하는 청년 여성들을 환영해 주고 이끌어 주는 '시골언니'의 존재이겠다.

한별: 나도 지역에서 자기 삶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 힘을 얻는다. 도시 바깥의 삶을 꿈꾸고 새로운 삶을 고민할 때 '아, 그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사람이 있었지, 지금 내가 바라는 삶을 먼저 살고 있던 사람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면 든든한 마음이 들지 않겠나. 그래서 우리 캠프에서는 사회에서 으레 나누는 나이, 직업, 학력, 출신 지역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묻고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경험을 서로에게 주고자 한다. 캠프를 진행할 때,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질문해 보자'고 제안하면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해한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는 이 공간에선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더라도 유난스럽게 여겨지지 않고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서 신기하고 좋았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 사회적 정보들 외에도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음을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청년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농촌은 어떤 공간인가?

최나현: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질문은 '내가 이곳에서 나답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나답게'라는 말은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정성별 여성으로서 '나다움'일 수도 있다. 과연 이곳에서 그 모든 정체성과 가치관을 지키면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물론 청년 여성으로 농촌에 거주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성차별적인 표현이나 나이 위계에 대한 부담 같은 것들이 꼭 농촌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일까?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도 늘 겪어 왔던 문제다. 다만 농촌에서는 그런 것들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고, 회피하기도 어렵다. 이 작은 동네에서 내가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여 어떻게 안 보고 살겠나. 그러니까 농촌이라서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고 농촌이라서 더 잘 드러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들을 '농촌이라서 그래'라고 말하는 것도 농촌을 대상화하고 틀에 가둬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다만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함께 대처할 수 있는 관계망이나 보호 체계를 만드는 작업은 필요하다.

ⓒ라이프인
ⓒ라이프인

농촌에서의 삶을 궁금해하는 청년들에게 청년마을이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의 강점을 어필한다면?

한별: 농사가 아닌 방식으로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게 우리가 같이 고민할게, 네가 관심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함께 찾아보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청년들을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을 잘하는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게끔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곳이라는 점이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최나현: 첫 번째는 성과보다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과 관계들이다. 청년이 이곳을 살 만한 공간이라고 느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특출한 결과물을 내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두 번째는 덕산면에 대안적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점이다. 농업을 통해서 이 마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배제되는 소수자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천간디학교라는 대안학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간디 공동체, 마을운동을 해온 분들이 일군 네트워크들이 있다. 그렇게 대안적 삶을 지향하는 분들이 우리에게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시고, 마을에서 내가 친구이자 이웃 주민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받도록 한다.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 차원에서는 무엇을 더 고민하고 지원해야 할까?

한별: 지역에서의 삶을 계속 이어 나가게 해줄 방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단계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청년들이 농촌에 유입되도록 하는 정부 지원 사업은 활발하게 논의되는데, 그 이후를 고민하는 사업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관계든 일이든 집이든, 지역에 연고가 없는 청년이 한 번에 갖추기는 어렵지 않나. 조금 더 지속적이고 입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 마을을 만날 때 결국 사람을 통해 만난다고 생각한다. 정책적으로 '연결자'를 발굴해서, 청년들이 그들을 통해 농촌을 안전하고 편하게 만날 수 있게끔 해주면 좋지 않을까.

최나현: 대상자에게 특화된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와서 귀농·귀촌 정책 관련 자료집을 틈날 때마다 보는데, '나'를 위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자면, 귀농·귀촌 준비 체크리스트에 '내가 있는 공간에서 성희롱을 당했을 때 고발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의 정보를 알고 있습니까?' 같은 안내도 전혀 없다. 특히 정책 사업을 통한 귀농·귀촌은 청년 여성들에게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곳의 귀농·귀촌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봐도 여성이 많았다. 믿을 수 있고 안전한 루트가 절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특화된 프로그램이 더 많이 생겨야 지속가능한 정책이 될 것이다.
 

▲ ⓒ라이프인
▲ ⓒ라이프인

도시 밖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계속 찾아 보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시골언니'들처럼 지역에서 여러분을 환대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고민과 일상을 나누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나 역시 도시 밖의 삶을 탐색하는 청년의 입장에서, 그렇게 같이 고민을 나눌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같은 지역에서 살지는 않더라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서로 힘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최나현: 청년 당사자의 관점에서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 본다면,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나도 여전히 이곳에서의 삶이 도시의 것들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것이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선택'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삶으로 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나 역시 그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들은 말인데 사람이 사는 동안 직업이 7번 정도 바뀐다고 하더라. 7번이나 직업을 바꾸는 인생의 여정에서 한 번쯤은 익숙한 도시를 떠나 할 일 없음도 즐겨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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