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헌혈 절실한데…입법화는 '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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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헌혈 절실한데…입법화는 '먼 길'
반려견 헌혈, 대부분 공혈견에 의존…몇 차례 입법화 시도 있었으나 무산
반려 인구 천만시대, 협회 등록 헌혈견은 600여 마리에 불과
건국대·현대차, 업무 협약 통해 아시아 최초 반려동물 헌혈센터 개설
  • 2023.01.12 12:00
  • by 김승미, 하은비 (한양대학생 기자)

대한민국 미래 사회의 주역인 대학생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청년 빈곤 ▲주민주도형 리빙랩 ▲고령층 교육격차 해소 ▲고령화 사회 돌봄 ▲반려동물 헌혈 문화 ▲ESG 등 우리 사회문제와 현상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한양대학교 '사회혁신을 위한 미디어의 이해' 과목을 수강한 대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및 상생·사회공헌 실천 사례인 리빙랩과 ESG를 취재하고 그들이 발로 뛰며 만들어 낸 결과물을 소개합니다. 라이프인은 대학생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회혁신의 고민을 살펴보기 위해 청년의 시선으로 본 사회혁신 관련 기사를 총 7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아임도그너(I'M DOgNOR) 공식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아임도그너(I'M DOgNOR) 공식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고유진 씨는 반려견 여덟 마리와 생활하고 있다. 이 중 여섯 마리가 1~2회 헌혈을 경험한 '헌혈견'이다. 6년 전 반려견 백곰이가 췌장염에 걸렸다. 수술을 위해 긴급 수혈이 필요했지만 혈액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병원에서는 다른 반려견의 헌혈을 제안했고 조건에 맞았던 장군이의 헌혈로 백곰이는 건강을 되찾았다. 이 일을 계기로 고 씨는 반려견 헌혈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후 고 씨의 여섯 마리 반려견들은 총 17번의 헌혈을 하며 헌혈견 가족이 되었다. 고유진 씨는 "대형견 한 마리의 헌혈로 4~5마리의 강아지를 구할 수 있다. 40여 마리의 생명을 구한 반려견들에게 고맙고 뿌듯하다"고 전했다. 

지난 2015년 동물권단체 케어는 민간 동물혈액 공급업체 '한국동물혈액은행'의 비윤리적인 사육 실태를 폭로했다. 당시 한국동물혈액은행이 관리하는 300여 마리 공혈견(供血犬)은 1평도 안 되는 좁은 뜬장에서 지내며 인근 군부대에서 나온 음식물쓰레기를 먹고 녹조가 낀 물통으로 물을 마시는 등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전문적인 채혈 공간조차 없었다. 채혈은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인 철장에서 진행됐으며, 월 3회에 달하는 무리한 채혈이 진행됐고, 노쇠한 공혈견은 식용으로 팔리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강아지 수혈을 공혈견에게 의존하고 있다. 공혈견은 문자 그대로 피를 공급하는 특수목적견이다. 강아지 혈액의 경우 대학병원과 동물병원이 자체 소유한 공혈견을 제외하면, 민간 사업체인 한국동물혈액은행이 혈액 공급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독점 유통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비영리기관이 공혈견을 관리한다. 미국은 개 한 마리당 채혈 기간을 최장 1년 반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이후에는 입양을 주선한다. 영국과 폴란드는 '반려동물 헌혈센터'를 따로 운영하고, 캐나다는 가정견의 헌혈을 장려해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공혈견에 대한 구체적인 법과 제도가 부재한 상황이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는 대학병원, 수의사회, 한국동물혈액은행 등과 '공혈 동물 복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련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이렇게 제정된 '혈액 나눔 동물 관리 가이드라인'은 공혈 동물 사육의 기준 마련과 민간업체 사육환경 개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데다 대부분 동물병원에 제대로 공표되지 않았다. 또한 TF 논의 이후 업장 사후 점검이나 가이드라인 적용 실태 점검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공혈견 복지 문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 '동물 혈액 공급·판매업'을 신설해 정부의 관리·감독 하에 동물 혈액 취급이 이루어지도록 공혈 동물 제도를 양성화하자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2017년 발의되고 공혈 동물이 적절한 기준과 한도 내에서 관리 받을 수 있도록 혈액 공급업을 법제화하자는 내용의 '인도적 동물 혈액 채취법'이 2019년 발의됐지만, 입법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 비율은 전체 가구의 15%로, 약 312만9천 가구다. 그중 반려견을 양육하는 가구는 약 242만 3천 가구로, 이는 전체 가구의 11.6%에 이르는 수치다. 등록 반려견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려견도 외과 수술, 교통사고, 출산 중 대량 출혈, 빈혈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긴급 수혈이 필요하다. 반려견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혈액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혈액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다. 혈액이 반독점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가격 또한 비싸다. 반려견 수혈 비용은 소형견 기준 40~50만 원, 중형견 기준 90~100만 원이다. 경기도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A씨는 강아지 수술을 위해 혈액이 필요했을 때, 주변에 혈액을 보유한 동물병원이 없어서 수소문 끝에 강원도 속초에서 혈액을 받았다고 말했다.

강래리 한국헌혈견협회 본부장은 "공혈견의 환경과 처우는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공혈견의 삶을 살지 않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공혈견 처우 개선보다 헌혈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려견 헌혈문화 정착으로 충분한 혈액이 공급된다면 무리한 채혈로 고통받는 공혈견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캐나다, 영국 등의 국가에서는 2000년대부터 반려견 헌혈센터를 운영해 반려견 헌혈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헌혈견의 혈액으로 공혈 동물 혈액을 대체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반려동물의 헌혈 인식 확산을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2018년 한국헌혈견협회가 설립되어 자체적인 헌혈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또한 한국헌혈견협회는 2019년과 2020년 현대자동차, 건국대학교 동물병원과 함께 헌혈문화 정착을 위한 '아임도그너(I'M DOgNOR)' 캠페인을 진행했다. 해당 캠페인의 결실로 2021년 8월에는 아시아 최초 반려동물 헌혈센터인 '아임도그너 헌혈센터'가 개소했다.

한국헌혈견협회는 "공혈견이 300여 마리로 추정된다. 전국에서 헌혈하는 대형 반려견 3,600여 마리가 확보된다면 공혈견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3,600여 마리 강아지가 매년 한 번씩 헌혈하는 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려면 헌혈견은 5,000마리 수준까지 늘어야 한다. 현재 협회에 등록된 헌혈견 수는 660여 마리(2022년 11월 기준). 필요한 혈액량을 헌혈견을 통해서만 공급하기에는 부족하다.

실정이 이러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KB금융그룹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1 한국 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개를 양육 중이라고 답한 응답자 대부분이 중·소형견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반려견이 헌혈 가능 무게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활발한 헌혈 문화가 정착되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앞서 소개한 고 씨의 사례처럼 반려견 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나서야 반려견 헌혈에 대해 알게 되는 반려인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반려견 건강 악화 시기는 8~14세로, 관심이 생겼을 때는 이미 헌혈 가능한 나이가 지난 후다. 그렇기 때문에 반려견 헌혈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홍보 활동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반려견 헌혈, 안전할까? "강아지 몸에 특별히 무리 가지 않아"

▲ '아이엠 도그너: 반려견 헌혈카' 캠페인에 참여한 의료진과 반려견의 모습. ⓒ현대자동차
▲ '아이엠 도그너: 반려견 헌혈카' 캠페인에 참여한 의료진과 반려견의 모습. ⓒ현대자동차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는 헌혈견 조건을 나이, 몸무게, 복용 약, 과거 질병, 헌혈 전 약 복용, 출산 및 중성화 수술, 기타 7가지 항목으로 나눠 설명했다. 우선, 헌혈에 적합한 나이는 2~8살(성견 기준 18개월 이상). 몸무게는 25kg 이상이 원칙이다. 헌혈견은 매월 심장사상충과 내외부구충 예방, 정기 종합 백신을 접종해야 하며, 심장사상충, 진드기 매개 질병, 혈액 및 바이러스 관련 질병 이력이 없어야 한다. 헌혈 2주 전부터는 치료를 위한 약 복용이 금지되지만, 평소 섭취하는 영양제는 복용할 수 있다. 출산 1년 이후, 중성화 수술 6개월 후부터 헌혈할 수 있다. 강 대표는 "조건이라고 하면 거창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반려견을 건강하게 키웠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이라면 헌혈견을 신청했을 때 거의 다 통과된다"라며 헌혈 참여를 독려했다.

한국헌혈견협회는 협회를 통해 진행하는 정기 헌혈 및 긴급 헌혈 진행 순서를 사전검사, 헌혈 준비, 채혈, 마무리 단계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다. 우선, 금식 후 사전 검사를 하여 강아지 혈액형을 확인한다. 강아지의 혈액형은 국제 기준 DEA(강아지 적혈구 항원) 8종으로 분류된다. 첫 수혈은 어떤 혈액형이든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수혈 전에는 항체가 생성되지 않아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아도 부작용이 없다. 두 번째 수혈부터는 반드시 혈액형이 일치해야 한다. 이후 심장사상충과 진드기 매개 질병 4종 검사, 혈액 검사, 빈혈 유발 10종 병원체 PCR 검사가 이뤄진다. 사전 검사 수치가 정상 수치를 벗어나거나, 개가 병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불안 및 흥분 증상을 보일 때는 헌혈이 중단된다.

사전검사 결과에 문제가 없다면 헌혈 준비 단계로 들어간다. 손바닥 반 정도 크기로 채혈 부위 삭모 후 마취 크림을 도포해 통증을 줄여준다. 당일 흥분도 및 긴장도에 따라 진정제가 사용될 수 있으며 이는 의료진과 보호자 상의 하에 결정된다. 채혈하는 양은 몸무게의 1~1.6% 정도이며, 채혈 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귀가한다. 헌혈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검사 시간을 포함해 2~3시간이다.

헌혈견들은 협회와 연계된 17개 협력 병원과 10개 후원사를 통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약 30~60만 원 상당의 9종 건강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진드기 예방 목걸이, 사료와 간식, 유산균 및 관절 영양제, 건강검진 소변 진단키트, 한국헌혈견협회 공식 스카프를 제공받는다. 또한 한국헌혈견협회 정회원은 긴급 수혈이 필요할 때 공식 협력 병원을 통해 긴급 헌혈을 요청할 수 있다.

#. 헌혈견 라온의 이야기

▲ 헌혈견 '라온'이 헌혈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견주(지원 씨) 제공.
▲ 헌혈견 '라온'이 헌혈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견주(지원 씨) 제공.

경기도 남양주에 살고 있는 골든리트리버 '라온'은 지난 2월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에서 첫 헌혈을 했다. 반려견주 지원 씨는 공혈견의 존재와 대형견들이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헌혈을 결심했다. "라온이가 건강하게 우리 가족의 품으로 와준 것 자체가 참 감사한 일이잖아요. 그 감사함을 갚기 위해서 헌혈을 결심했어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라온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본인의 판단만으로 헌혈을 해도 되는 걸까 싶어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결국 결심을 내렸다. "사실 라온이를 입양하고 가족이 된 것부터 아이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졌잖아요. 아이들 의사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보호자가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보호자가 바른 잣대를 가지고 소신껏 행동한다면 아이들도 그 마음을 잘 읽고 따라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원 씨는 강아지 헌혈에 대해 알기는 하지만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한 견주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반려인으로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강요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실천으로 옮긴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라온이에게도 다른 친구들의 피가 필요할 때가 올 수 있잖아요. 다른 아이를 아프게 하면서 착취한 피는 라온이도 원치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헌혈은 라온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반려견 헌혈을 고민하는 견주들의 걱정 중 하나는 헌혈의 안전성이다. 이에 관해 김태호 수의사는 "건강한 개들이 하는 헌혈은 특별히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한두 시간 나른함을 느끼는 정도이며 골수에서 새롭게 피를 만들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반려견 헌혈, 안정적 관리 위한 헌혈 시스템 필요해

▲ '아이엠도그너 헌혈센터'. ⓒ하은비
▲ '아이엠도그너 헌혈센터'. ⓒ하은비

최근 TV 프로그램, 유튜브, SNS 등 미디어를 통해 헌혈견이 소개되며 반려견 헌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헌혈견이 늘어 가는 만큼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헌혈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강아지 헌혈을 위해서는 병원 인력 2~3명이 2시간 이상을 매달려 건강검진과 헌혈을 진행해야 한다. 일반 진료를 함께 봐야 하는 병원에서 헌혈을 함께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한국헌혈견협회를 통한 정기헌혈, 긴급헌혈은 신청한 이들 중 일부를 선발해 헌혈을 진행하고 있다. 헌혈견이 늘어날수록 기존의 협력 병원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강원도와 전라북도의 경우 헌혈이 가능한 협력병원조차 없는 실정이다.

전국적인 반려견 헌혈 문화 정착과 헌혈 시스템 개선을 위해서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이에 대한 지원을 논의해야 한다. 정부 지원이 가능하다면 안전한 환경에서 반려견 헌혈이 이뤄지고 안정적인 헌혈 네트워크를 더욱 신속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반려 인구는 천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반려 인구와 반려견이 늘어가는 만큼 반려견 헌혈 문화가 성숙하게 자리잡아, 고통받는 공혈견이 사라지고 반려견들이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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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미, 하은비 (한양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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