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아이쿱 해외연수기] 평등과 연대성에 기반한 돌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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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이쿱 해외연수기] 평등과 연대성에 기반한 돌봄의 미래
유럽 최초의 자폐 친화 매장 COOP Lombardia_Monza와 자폐 청년들의 일터, PizzAut를 가다!
  • 2023.01.26 15:30
  • by 김유미 (원주해맑은미소아이쿱 이사장)

다양한 협동조합을 배우고 협동조합인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회(이하 아이쿱생협)의 회장단과 지역조합 10인의 대표들이 지난해(2022년) 11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트렌티노 지역으로 활동가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아이쿱생협 활동가들은 건강한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전환,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 퇴출 운동 등 지구환경을 위한 No 플라스틱 캠페인 활동을 전개하고, 지역조합에서 리더십과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회적·시민적 역량을 개발해 왔다. 이번 연수는 이탈리아 협동조합 연맹(이종협동조합연합회)의 활동과 그 회원조합들의 사업 중 공제, 돌봄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비록 이탈리아 공공의료를 보완하는 형태의 공제였지만 공제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이웃과 함께 협동으로 '의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그곳 협동조합들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이종협동조합 간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또 생산자협동조합에서는 어떻게 조합원들이 많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협동의 역사를 실현해 나가는지와 협동조합에서 공정무역이 일상화된 모습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라이프인은 ▲연맹 전반 ▲공제 ▲돌봄 ▲생산자협동조합(메짜코로나, 몬도멜린다) ▲시민운동: 환경과 공정무역 관련 기사를 총 5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 COOP Lombardia_Monza 매장.
▲ COOP Lombardia_Monza 매장.

아이쿱생협 라이프케어 활동가 이탈리아 연수단은 유럽 최초의 자폐 친화 매장으로 알려진 쿱 롬바르디아 몬짜(COOP Lombardia_Monza)를 방문했다. 나는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였기에 '일반 매장과 어떻게 다를까? 누가 시작했을까? 운영에 어려움은 없을까? 장을 보는 자폐인을 만난다면?' 등 여러 가지 궁금증과 기대를 품고 매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자폐 친화 매장은 우리가 전날 방문했던 다른 쿱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평범해 보였다. 무언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안내를 맡은 안드레아(Andrea Pertegato)씨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 COOP Lombardia_Monza 매장 내부.
▲ COOP Lombardia_Monza 매장 내부.

쿱 롬바르디아 몬짜가 유럽 최초로 자폐 친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3년 전 크리스마스, 자폐 청년들이 운영하는 피자아우트(PizzAut)에서 크리스마스 파네토네를 납품하겠다는 의뢰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자폐인 피자 레스토랑으로 훈련과 직업을 연결하는 사회통합 모델인 피자아우트, 자폐 지원 단체인 알라3(Alla3)가 연대하여 매장 디자인, 기술적인 부분, 직원 교육 등 다방면의 의견을 교환하며 쿱 롬바르디아 몬짜 매장을 개설했다.

팬데믹 상황으로 준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세 가지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자폐를 보는 관점 자체를 교육하는 것이다. 모든 직원은 자폐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특별 교육을 받은 후 매장에 배치된다.

둘째, 기술적인 접근으로 자폐인에게 편안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자폐인의 예민한 감각을 고려해 조명을 부드럽게 바꾸고 조도를 낮추었다. 소음도 최소한으로 제한해 약 70%의 소음을 줄였다. 화재와 안전 알람을 제외한 QR코드, 바코드 소리, 냉장고 온도 관련 알람 등을 모든 소음을 차단했는데, 실제 매장이 조용해서 차분하고 누구나 편안하게 장을 볼 수 있다.

셋째, 자폐증 시민이 상품을 손쉽게 찾고 계산대까지 갈 수 있도록 그래픽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15,200여 종의 물품을 카테고리화하여 보기 쉬운 이미지와 픽토그램(pictogram)으로 표현하고 지도화헀다. 자폐아를 둔 3명의 엄마들이 만든 협회에서 관련 그래픽을 담당해 제공했다고 한다. 통로마다 상품군을 알려주는 그래픽이 세밀하게 표시되어 있어 누구라도 편하게 물품을 찾을 수 있다.

▲ COOP Lombardia_Monza 매장 내부
▲ COOP Lombardia_Monza 매장 내부

자폐 친화적 관점이 잘 적용되었다는 입소문으로 30km 밖에서도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2020년 9월, 쿱 롬바르디아 몬짜가 오픈한 이후, 자폐 친화 매장은 현재 9개로 늘어났으며 전국적으로 쿱이 아닌 일반 기업 매장에서도 점진적으로 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진행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하루에 자폐인은 몇 명이나 방문하는가 물으니 "통계를 내지 않아 잘 모른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서 "우리는 모두가 편안하게 장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뿐, 몇 명이 오는지 굳이 통계로 확인하지 않는다. 방문자를 통계화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고 차별을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우리는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을 위한 어떤 특별한 돌봄과 보살핌이 제공되는지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때문에 처음 쿱 롬바르디아 매장에 들어섰을 때 느낀 평이함에, 이곳이 자폐인을 위해서 특별히 설계되었다는 점을 눈치채기 어려워 당황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일상 안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누리도록 집중한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장애인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일상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협동조합에서 장애인 돌봄은 일방적 시혜와 보살핌이 아니라 이들의 삶이 공동체 안에 머물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돌봄은 사회적 관계의 확장이자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연대에 있었다.

피자아우트와 함께 진행하는 파네토네 프로젝트는 수익금 100%를 모두 기부하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를 알고 많은 서포터즈들이 멀리서 찾아와 구매하기도 한다. 자폐 친화 매장은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중점을 두고 진행하는 쿱 롬바르디아의 사회연대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한 결과 일본과 브라질에서도 방문하였고, 이 프로젝트의 사회적 가치를 성공적으로 널리 전파하였으며 동시에 브랜드도 유명해졌다.

사회적 연대는 진화하고 학습되며 확장된다. 자폐 친화 매장 쿱 롬바르디아 몬짜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연대 활동이 실천되고 있었다.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이하여 여성 폭력 추방을 위한 기금 마련, 동물 복지를 위한 나눔과 캠페인, 수익금으로 종양 연구를 지원하는 스마트 푸드 코너, 사회적 약자와의 음식 나눔 실천, 플라스틱 재활용 등의 활동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탈리아 협동조합을 성장시키고 강력한 경쟁력을 갖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 연대성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매장 견학 후 우리는 곧바로 자폐인 청년들의 일터, 피자아우트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매장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피자아우트는 자폐아의 아버지인 니코 아캄포라(Nico Acampora)씨가 창립하였고, 100% 자폐인을 고용하고 있다. 비장애인들이 주방에서 일을 배우는 것은 한 달 반 정도이지만, 자폐인들은 6개월에서 1년의 수련 기간이 필요하며, 오랜 시간 훈련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것 자체로 특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폐인 청년들이 주문받고 요리해서 서빙하는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피자아우트는 1년 동안 180,000개의 피자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현재 2번째 매장을 준비 중이다.  
 

매장에서 만난 니코 아캄포라씨는 누구하고도 말도 하지 않고, 소리를 내는 것도 싫어하던 자폐인들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직업과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일자리라는 경제적 가치 외에 장애인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한 삶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했다.

이번 방문에서 나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양하며 또한 서로가 얼마나 강하고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는 우리 삶의 한 단면이며 우리 안에 있었다. 약한 연결고리들을 끊어내고 배제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가며 모두가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창조할 것인가를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배제의 삶은 우리를 나락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인도할 것이며, 연대의 삶은 모두의 풍요로움과 더 좋은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안내할 것이란 점이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들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일상의 삶과 실천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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