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대책 미흡한' 검경수사권 조정, 피해는 국민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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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대책 미흡한' 검경수사권 조정, 피해는 국민 몫?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2년, '검수완박' 시행 4개월…미흡한 후속대책 속 수사 지연 빈번
  • 2023.01.30 08:00
  • by 노윤정 기자
▲ SBS 방송화면 갈무리.
▲ SBS 방송화면 갈무리.

2021년 1월 검경수사권을 조정한 데 이어, 지난해 9월부터 소위 '검수완박법'(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 지칭)이 시행됐다. 이는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여,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아 온 검찰의 권한을 나누는 것이 골자다.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찰의 수사권 행사는 부패·경제범죄 등 2대 범죄와 경찰공무원·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소속 공무원이 범한 범죄, 그리고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와 관련하여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에 한한다(다만 이후 개정된 시행령에서 '직접 관련성' 조항이 삭제되며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가 넓어졌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은 '사법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소중한 결실이며, 행정기관의 권력 다툼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권한의 분립으로 보아야 하고, 그 혜택은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미흡한 후속 대책으로 인해 혼란이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이 감내하고 있다.

피해자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피해자에게는 수사를 경찰수사관(사법경찰관)과 검찰 중 누가 하느냐를 떠나 누구든 수사를 잘해서 가해자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피의자로선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를 받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검경수사권 조정 뒤 인력과 예산 확충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사 현장에서 어떤 수사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건 처리가 '복불복'으로 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 아이쿱생협은 지난해 1월 서초경찰서에서 지지부진한 수사에 항의하며 '가짜 유기농 유채씨 유통업자에 대한 특별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라이프인
▲ 아이쿱생협은 지난해 1월 서초경찰서에서 지지부진한 수사에 항의하며 '가짜 유기농 유채씨 유통업자에 대한 특별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라이프인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이하 아이쿱생협)는 현재 유채씨 생산·유통업자 김 씨와 법정분쟁을 벌이고 있다. 양측이 지난 2015년 체결한 몽골산 유기농·Non-GMO 유채씨 납품 계약이 발단이다. 아이쿱생협이 김 씨가 운영 중인 회사에서 납품받기로 한 물량은 유채씨 1,200톤. 그러나 김 씨가 납품하려던 유채씨는 아이쿱생협 자체조사에서 유기인증을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국내 두 곳의 검사 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 모든 시료에서 GMO 성분이 검출됐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에서 실시한 품질검사에서도 GMO 성분이 검출됐는데, 검출된 GMO 비율은 최대 4.4%. 이에 2019년 농관원은 해당 유채씨에 '유기농'이라는 표기를 하지 못하도록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김 씨가 아이쿱생협이 오히려 출자 협약을 위반했다며 29억 4천만 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비화됐다. 그러나 해당 재판 과정에서 김씨가 법정에 핵심 증거로 제출한 문서가 위조문서인 것으로 드러났고, 1심 법원은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김 씨는 항소한 후 2심에서 또 다른 위조문서(주식양수도계약서, 문자메시지 사진)를 추가 증거로 제출했으나, 2심 재판부 또한 제출한 문서의 간인이 아이쿱생협 인감과 다르고 증거로 제출한 사진이 신뢰하기 어려움을 인정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아이쿱생협은 거듭된 위조문서들을 제출하여 소송사기를 시도하는 김씨를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2020년 10월 서초경찰서에 형사고발했다. 그러나 서초경찰서 Y경찰수사관은 10개월이 경과하도록 소환조사를 미루는 등 2022년 4월 말이 되어서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불구속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이후 검사는 같은 해 7월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등 죄명에 대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는 동안 최초 고발이 이루어진 후 2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 아이쿱생협은 Y경찰수사관이 사기 등 혐의로 고소당한 피의자의 거짓말을 모두 수용하며 시간을 지체했다는 점을 들어 '위계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한 상황이다.

과거 검사가 수사 지휘권을 갖고 있을 때는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 검사가 사건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등록하고 '자기 사건'으로 관리했다. 사건 접수 후 3개월이 지나면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검사가 실적 관리를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수사를 지휘했다. 경찰은 보통 한두 달 이내에 수사 결과를 검찰로 보냈고, 수사가 미진하면 검사가 직접 수사하기도 했다.

현재는 검찰의 독점 권한을 분리한다는 취지로서 검경 간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졌고, 이후 사건은 오롯이 '1차 수사 종결권'을 가진 경찰의 몫이 됐다. 이 말은 곧 경찰의 고의 또는 실수, 수사관의 권한 오·남용에 따라 사건 처리가 장기간 지연되거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검찰은 추가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데 수사를 하지 않았거나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는데 관련 증거 조사를 미미하게 진행한 경우 등에 경찰 측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검찰은 횟수 제한 없이 보완 수사를 요청할 수 있고 경찰은 마감시한 없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그렇게 사건 처리가 지연되며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또한 1차 수사 종결권을 이관받은 경찰 수사관 중 30%가 경력 1년 미만으로 채워지는 등 수사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대검찰청이 지난해 4월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수사절차 관련 통계를 보면 이 기간에 검찰이 경찰 측에 보완 수사를 요구한 사건은 총 7만2223건이다. 이 가운데 1개월 안에 보완 수사가 완료된 사건은 1만8982건(26.2%), 3개월 내에 완료된 사건은 2만1856건(30.3%)이다. 6개월 걸린 사건은 1만3796건(19.1%), 6개월이 넘게 걸린 사건은 8214건(11.4%)이었다. 이행되지 않은 사건도 9429건(13%)에 달했다. 같은 해 1분기 재수사 요청 사건 중 1년이 넘도록 재수사가 이행되지 않은 사건도 491건(17.8%)이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가 지난해 4월 변호사 1155명을 대상으로 '형사사법제도 개선 위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검경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이후 '경찰 조사 지연 사례를 직접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73.5%(849명)로 나타났다. 변협 설문 조사에서 변호사들은 경찰의 수사 지연과 사건 적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경찰의 수사 역량 부족'을 들었다. 해당 질문에는 1133명의 변호사가 중복 응답을 했는데 '경찰의 수사 역량 부족'(72.5%), '경찰의 과도한 사건 부담'(62%), '검찰의 직접 수사 폐지'(29.7%) 순으로 답했다.

▲ JTBC 방송화면 갈무리.
▲ JTBC 방송화면 갈무리.

수사권 조정의 취지는 권력기관의 과도한 권한을 견제하고 권력 균형을 이루어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후속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검찰과 경찰의 대립이 지속되는 사이, "내 억울한 사건을 누가 어떻게 해결해주느냐"는 물음에는 누구도 답해주지 않고 있다. 새로운 형사사법시스템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한 다툼의 산물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 권익 보호'라는 검경수사권의 본질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진짜 수사를 잘하게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개개인의 역량이나 인력 충원 등 제도적 허점을 보완·개선하여 늑장수사, 불공정 수사의 핑계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국민이 느끼는 불편함과 혼란에 대해 개선 가능한 부분은 하루빨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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