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일기장] 깨라박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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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일기장] 깨라박스의 시간
경남과기대 사회적경제 전문인력양성사업단 Social Lab의 '깨라박스'팀 활동 후기
  • 2018.11.22 13:23
  • by 이다예(경남과기대 경제학과 졸업생)
 
뭘 하고 싶어? 그걸 왜 하려고 해? 진짜 실행하려면 뭐부터 해야 할까?
 

대학교 4학년 때 몬드라곤 대학의 팀 창업 교육인 MTA(Mondragon Team Academy) 프로그램을 짧게나마 경험해볼 기회가 있었다. 높고 큰 건물이 빽빽하고, 온갖 언어가 뒤섞이는 곳. 처음 마주한 상하이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었고, 4박 5일 동안 MTA 멤버들은 내가 살면서 온전히 답해본 적 없는 것을 끊임없이 물었다.

우연한 시작
상하이에서 돌아온 후 MTA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빈백 소파에 누워 회의를 하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이유(WHY)를 되묻는 목소리 같은 것들. 그러던 중 사업단의 이예나 교수님께서 학교 주변의 유휴공간인 빈 갤러리를 학생들이 직접 운영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씀해주셨다. 그 순간,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뭐라도 시작하면 상하이에서 질리도록 들었던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깨라박스’는 ‘누구에게나 열린 사각형의 공간’이라는 의미로, ‘열어두다’의 사투리인 ‘깨라주다’에서 ‘깨라’를 따오고, 사각형 모양의 공간이라 뒤에 ‘box’를 붙여서 생긴 이름이다. 깨라박스의 운영팀은 사업단의 사회문제 해결형 프로젝트동아리 Social Lab 멤버들 중에 운영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자, 이제 뭐라도 해볼 차례였다.

직접 제작한 깨라박스 홍보 포스터

용감하게, 맨땅에 헤딩
뭐라도 하기 전에 ‘깨라박스’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원래 그 공간은 전시를 위한 갤러리였기 때문에 탁 트이고 넓었다. 길쭉한 책상, 의자,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가벽과 조명이 있었다. 우리는 주어진 옵션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고자 했다. 

먼저 내부에서 쓰임새를 실험해보았다. 빔 프로젝터와 무선 마이크, 스피커를 구비하니 책상 없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토론 수업을 하고, 작은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Social Lab 팀들이 자리를 채우자 깨라박스 안에서 귀여운 강아지가 그려진 에코백과 엽서가 만들어졌고(Perpett 팀), 화이트보드에는 널찍한 정원 조성도가 그려졌다(만화방초 팀). 함께 사용하는 팀들과 규칙을 정하고 서로 시간을 배려해 사용하니 꽤 괜찮은 작업 공간으로 쓰였다.

내부 실험은 꽤 성공적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외부로 눈을 돌려, 학교 주위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오픈파티’를 계획했다. 프로그램을 짜고, 역할을 나누고, 대본에 맞춰 가벽과 조명을 배치하고, 리허설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렇게 열린 오픈파티에선 Social Lab 팀들의 홍보 부스가 운영되었고 작은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픈파티 홍보자료
오픈파티에서 깨라박스 멤버들
오픈파티 사진

오픈파티 내내 음악과 홍보영상을 재생해둔 우리는 빔이 선명하게 쏘아진 벽을 그냥 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빔 프로젝터와 하얀 벽. ‘우리끼리 영화나 볼까?’ 하던 말이 씨가 되어 ‘깨박 시네마’가 시작됐다. 한 쪽을 가벽으로 막아 상영관을 만들고, 빔 위치를 테스트 하고, 어떤 간식을 팔지 정했다. 사람이 꽤 모일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당일에는 지인 말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썰렁한 분위기였다. 우리의 첫 번째 실패.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리가 있나! 왜 실패했는지 의견을 나누고, 다음을 기약했다.

한 차례의 멤버교체가 있고 나서, 새롭게 도전했던 프로젝트로는 ‘인생사진관’ 프로젝트가 있다. 갤러리였던 공간의 특성을 활용하여, 젊은 감성에 맞는 여러 컨셉의 분할공간을 마련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인생사진’을 찍으며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사업단의 도움으로 야심차게 준비했고 방문자도 꽤 있었지만 사실 처음 기획할 때에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 비용과 수익을 고려하여 어떠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 적절한 방법으로 홍보를 하고 사람들에게 만족을 제공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다양한 컨셉으로 꾸며진 인생사진관 프로젝트

이처럼 자체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공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팀원끼리 자본금을 모으고, 소규모 세미나, 동아리 모임, 간단한 안무연습실, 단기 전시공간 등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공간대여도 진행했다. 정기적으로 지역의 인문학 모임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청년들이 동아리 활동이나 행사장소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지난 여름, 1년 간의 임대계약이 끝나며 깨라박스 활동은 막을 내렸다. 현재는 진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은 단체들이 함께 공간을 운영하며 여러 활동들을 준비 중에 있다. 1년 간 공간 대여와 자체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것은 ‘운영이 참 어렵다’는 것이었다. 거창한 사업 모델도 아닌데 평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받기만 하던 사람들이 모여 세운 운영계획은 실행할수록 점점 허점이 보였고, 그것을 메우며 일을 진행하는 것이 힘들었다.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이었다.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모여앉아서 ‘아, 우리가 생각한 것과 이렇게 다르구나. 어떤 부분을 놓쳤을까. 다음번엔 뭘 바꿔볼까?’에 대해 얘기한 후 다음엔 꼭 고쳐나가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우리 힘으로 뭔가 했다! 다 같이 수고했다!’를 외치면서 ‘헤딩’ 한 번을 마무리 짓곤 했다.

‘같이’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요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을 꼽으라면 당연히 ‘회의’다.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목표를 설정한 Social Lab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 8명이 모이니 어쩜 그리 다른지. 조별과제를 할 때보다 회의를 더 많이 한 것 같다. 한 번 만나면 3~4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되도록 8명 모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에 모여,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가급적 모두가 발언할 수 있도록 했다. 화이트보드에 의견을 쓰고, 도면을 그리고, 가벽을 옮기며 또 다시 수정하고…. 회의가 거듭될수록 ‘같이’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우리’가 있었다. 

깨라박스 멤버들의 회의 모습

그리고 활동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을 뽑자면 팀을 혼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운영 도구’와 ‘규칙’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직 학생이었으므로 강의가 없는 시간대를 파악하고 손님을 관리할 순번과 당직자를 정했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에게 동일한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팀원들 모두가 공간 안의 기기를 다룰 줄 알아야 했기 때문에 기기 사용 매뉴얼을 만들고, 전기 배선도를 구축하고, 공유 스케줄러를 만드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보통 여럿이 함께하는 것을 생각하면 품이 덜 들고, 빠르게 진행될 것 같은데, 함께 하기 위한 도구들을 만들다보니 하나를 완성할 때 마다 새롭게 만들어야할 것들이 생겨서 ‘같이’하는 건 ‘혼자’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과 마음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어떤 답을 찾았을까
인생의 어떤 일들은 아주 우연히 일어난다. 나에게 깨라박스도 그랬다. 평범한 내가 한 공간을 운영하는 팀의 리더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이전에 생각해본 적 없던 역할을 하려니 괴로웠다. 스스로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을 구축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내가 좋은 리더였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내가 깨라박스 활동을 통해 ‘같이’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팀원들을 이해하며 포용하는 리더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더불어 팀 안의 소통이나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깨라박스는 상하이에서 받았던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고 싶어서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아직도 정확히 답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업단 활동을 하고, 한 공간은 운영했던 경험은 지금의 내가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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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예(경남과기대 경제학과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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