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의 첫번째 공정무역 마을 학생들의 동행(同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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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의 첫번째 공정무역 마을 학생들의 동행(同幸)
일본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교 공정무역 카페 학생 스태프들이 찾은 공정무역 타운 인천
  • 2019.02.14 17:55
  • by 신명직(구마모토가쿠엔 대학교·교수)

일본과 중국의 조계지(租界地) 경계에 선 기분은 묘했다. 1883년 인천개항 이후, 청나라 조계지와 일본 조계지가 인천항 앞에 나란히 등장한 이래,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그 조계지 경계선 위에, 동아시아 공생을 꿈꾸는 일본 대학생들과 함께 섰기 때문이다. 20세기가 전쟁과 침략의 근대사였다면, 21세기는 평화와 공생의 현대사여야만할 터. 일본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교에서 '동아시아공생 공정무역 카페'의 볼런티어 스태프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들 10여명은 그런 평화와 공생의 인천을 찾아 연수(2/10∼2/12)를 오게 된 것이다.

 

(사진제공 - 인천공정무역 협의회)

 

대한민국 최초의 공정무역 도시 인천의 공정무역협의회 분들이 공항에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인천 견학에 나선 학생들은 먼저 인천의 옛 일본인 조계지에 위치한 한국근대문학관을 방문했다. 인천개항부터 1945년에 이르는 한국 근대문학 작품들을 전시해놓은 상설전시관에서 윤동주의 시들을 접한 학생들은 무척 반가워하며, 너나 없이 윤동주의 '서시' 앞구절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한국문학을 함께 공부한 학생들은 윤동주의 '서시'를 한국어로 암송하는 과제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지난 8번째 동아시아 공생 영화제에서, 영화 '동주'의 상영을 함께 기획했고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로 목판을 만들어 지금도 동아시아공생 공정무역 카페 입구에 상설전시하고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이현식 관장님으로부터 전반적인 설명을 들은 뒤, 학생들에게도 익숙한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등을 뒤로 하고 옛 청나라 조계지 터에 마련된 차이나타운에 들어서자 학생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붉은 네온사인으로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은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오래되고 훌륭하다는 중국음식점에서 정통요리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이 이처럼 환하게 불을 밝힐 수 있을 때까지 한국의 화교화인들은 얼마나 힘든 역사의 터널을 거쳐 왔는지 모른다. 1960년대에 들어 화교화인들의 토지소유를 제한하는 등 화교화인 자본에 대한 각종 제재조치를 견디지 못한 그들은 대만, 미국 등지로 반강제적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슬픈 역사는 차이나타운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일본 속 재일코리안과 마찬가지로 한국 속 화교화인들과의 공생은, 한국과 일본 내부에 존재하는 동아시아 공생의 또 다른 과제지만 짧은 설명으론 역사의 아이러니와 중층성을 모두 설명하기엔 역부족인 것 같았다.

둘째날 학생들이 방문한 곳은 송도 글로벌 캠퍼스 안에 위치한 나눔카페였다. 지역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나눔카페'는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 공정무역 카페처럼, 미국 뉴욕대학 분교를 비롯해 유럽 명문대학 분교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캠퍼스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양귀비를 재배하던 농민들을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로'라는 슬로건이 시선을 끌었는데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눔카페가 인천 시청(미추홀), 인천터미널을 비롯해 인천 시내 6곳의 매점에서 인천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정무역 타운으로서의 인천광역시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마모토에서도 행정조직과 함께 아시아 최초 공정무역 타운으로서의 면모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방학중이어서 대학생들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지지 못해 나눔카페가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과 어떻게 결합해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인천 작전여고의 사회적 경제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아이쿱 생협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제공 - 인천공정무역 협의회)

 

공정무역 나눔카페에서 구마모토 가쿠엔대학 학생들이 커피 추출을 해보고 있다(사진제공 - 인천공정무역 협의회)

 

환한 웃음과 박수로 일본 대학생들을 맞이해준 작전여고 학생들은 학교축제는 물론 인천 공정무역 협의회가 주최하는 축제에서도 공정무역 캠페인활동을 아주 열성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 어떻게 소통할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을 하나로 연결해 준 것은 케이팝 댄스였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나와 댄스 배틀을 선보였는데, 10년의 역사를 지닌 '함께 말해봐요 한국어 대회'에서 케이팝 부문을 함께 운영해온 공정무역 카페 학생들의 끼와 작전여고 동아리 S.E.S.의 이름값(사회경제연구반이란 뜻이지만 오래된 걸그룹 이름과도 같다)이 한데 어우려져 최고의 콜라보를 연출해냈다. 2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보여준 공정무역에의 열정 또한 무척 놀라웠다. 공정무역 축제기간 동안의 부스 운영, 공정무역 생산자에게 편지쓰기 등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곧 고3이 되어 활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지만, 대학생이 되면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후배들에게, 시험준비 잘하라는 선배 대학생의 덕담까지, 계속 이어지는 훈훈하고 유쾌한 대화에 저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졌다.

아이쿱생협과 푸른두레생협도 둘러보았는데 공정무역제품만을 선보이는 공정무역 전문점과 달리 다양한 식자재들 속에 공정무역제품들이 들어있어, 공정무역제품 구매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장보기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두 생협 모두 26년의 역사를 지닌 생협답게 곳곳에 관록이 느껴졌다. 학생들에게 찾아가는 공정무역 강의가 두 생협 합쳐 연 4,00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특히 아이쿱생협은 조합원들이 작전여고 학생들과 구마모토 학생들 점심을 손수 준비해 주셨는데, 한국과 일본의 공정무역 동아리 학생들을 향한 엄마의 따뜻한 손맛과 정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푸른두레생협은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 카페에서 학생들이 판매하고 있는 라오스 커피 생두를 공급하고 있는 일본의 오래된 공정무역(민중교역) 단체 ATJ(Alter Trade Japan)와도 다양한 교류를 하고 있어 반가웠다.

 

그룹별 간담회 진행모습(사진제공 - 인천공정무역 협의회)

 

작전여고와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 학생들의 그룹간담회 중 작전여고 사회경제 동아리 박춘자 지도교사가 인삿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인천공정무역 협의회)

 

이처럼 생협 공정무역 캠페이너들이 중고등학교와 공공시설 등에서 공정무역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인천광역시가 인천공정무역협의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추홀(彌鄒忽:인천지역의 백제시대 명칭)에 있는 인천광역시 일자리 경제본부와 사회적경제과 방문을 통해 공정무역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의 주최측인 인천공정무역 협의회와 워크샵을 마친 후 기념사진(사진제공 - 인천공정무역 협의회)

 

이제는 구마모토로 돌아가야 할 시간. 마지막으로 한군데 꼭 들렸다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들려본 곳은 소래포구에 위치한 '마중물 문화광장・샘'이었다. 300평 규모에 서점과 갤러리, 카페, 공연장, 스터디룸 등을 함께 갖춘 복합문화광장이다. 협동조합이지만 한 목소리로 왕성하게 활동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9년동안 독서모임을 통해 단련된 멤버십 덕분이라고 한다.

 

출국전 연수단의 마지막 공식일정인 협동조합서점 '마중물 문화광장 샘'에서 이재필 대표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 인천공정무역 협의회)

 

카페가 있는 서점 한 켠에는 공정무역 제품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공정무역 타운 활동이 마을과 마을 속에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의 모임과 문화행사 속에 함께 녹아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었다. 인천 공정무역 마을 운동이 성장해가는 비밀, 혹은 가장 깊은 속살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구마모토로 돌아가면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 학생 카페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 접점을 보다 더 깊게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정무역 마을 활동은 학생을 비롯한 마을주민들 간의 소통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해준 인천공정무역협의회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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