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뭐하는 데냐 ⑤] 쉬어가는 골목, 무인카페 성대골 골목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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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뭐하는 데냐 ⑤] 쉬어가는 골목, 무인카페 성대골 골목카페
상도동 매력탐구 시간 - 상도동 주민이 말하는 상도동
  • 2019.03.13 10:49
  • by 정설경(상도동의 매력을 샅샅이 캐고 있는 거주민)
상도동에 '데뷔'한 지 7년 차. 중학생이 된 아이가 다닌 초등학교는 지난번 유치원이 무너져 유명해진 상도초등학교.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꼭 한번 들어가고픈 골목 풍경 하나가 있었다. 대문이 항상 열려있는 마당에 자리한 카페가 그곳. '맹모삼천지커(뮤니티)' 욕심으로 이사 왔는데 이제야 가 본 상도동 커뮤니티 다섯 번째 이야기: 어느 집 마당에 차려진 무인카페 성대골 골목카페 <글쓴이 주> 

 

 
다세대주택 마당에 개업한 무인카페의 탄생 설화

수년 전 상도초등학교를 오가며 서성거리던 성대골 골목카페는 한번도 주인을 본 적이 없었다. 알아서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모두 이용자 마음대로 하는 무인카페였다. 이 카페이야기를 들으려면 누구를 만나야 하나 동네에 수소문해 보니 권오희 대표라고 일러 주었다. 항상 대문이 열려 있던 그 마당 카페로 오라고 해서 입성하니 희끗한 머리를 뒤로 넘기신 대표님이 이층에서 내려오셨다(카페만 알려달라고 하셔서 인물촬영을 못함).

어떻게 카페를 만드셨냐고 여쭈니, 골목에 자리한 유치원 두군데 이야기를 꺼내셨다. "사립유치원은 봉고차가 아이들을 태우고 다녀서 엄마들이 올 일이 없는데 공립유치원인 상도유치원은 날마다 아이를 데리러 오는 엄마들이 뙤약볕에서 기다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어요. 기다리는 엄마들에게 의자라도 놔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서울시에 공간지원사업을 내면서 지금의 카페가 시작됐지요". 마침 언덕 넘어 걸어오는 동네 주민, 그리고 쉴새없이 골목을 누비는 아이들을 위해서 '의자'가 여러 개 놓였다. 기왕 지원사업을 받았으니 이쁜 마당에 탁자를 놓고 카페를 겸했더니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의 거점이 되었다.

더운날 아이들은 깊은 산속 옹달샘에 들러 물을 먹는 토끼였다. 그렇게 골목에 의자가 놓이고 다세대주택 마당에 탁자와 의자가 함께 놓여 카페가 되었고, 간판도 자그맣게 걸린 것이 2014년이니, 횟수로 5년째다.

(왼쪽) 늘 대문이 열려있는 골목카페   (오른쪽) 엄마들의 쉼을 위해 놓게 된 골목의자

엄마들의 거점이자 아이들이 모여드는 카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권대표님은 골목카페를 창업했다기 보다는 탄생시킨 창조주(?). 햇볕 적은 쌀쌀한 날에 방문한지라 카페가 좀 싸늘했지만 초록이 만연한 계절엔 이 카페가 명소 못지 않다고 아낌없이 자랑하신다. 시원한 음료가 큰 역할하는 여름엔 수요일마다 아이스티를 아이들에게 선사했더니 날마다 먹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집 방향이 아닌데도 아이들이 몰려와서 마시고 가니 저절로 아이들의 명소가 되었다. 물 마시며 지나치던 아이들은 비오면 우산을 빌려 달라기도 하고 잠깐 앉았다가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물건을 두고 가는 경우도 허다해서 뒷수습할 일도 많다.

아이들에게 카페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물 마시고 갈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여기는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칭송해 주었다며 아이들의 칭찬이 권대표를 웃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좋다고 하니 여기는 정말 좋은 곳이 분명하다. 

서울시의 사업지원을 받아 골목카페를 열었고 몇 년간 운영했으며 지금도 매년 골목카페 유지를 위하여 여기저기 공모사업의 문을 두드리며 운영하고 있다. 상도동의 작은 골목엔 감나무와 은행나무가 많은데 이 골목의 은행나무도 가을이면 어김없이 은행알이 터져 고약한 냄새와 고염나무 열매가 떨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너나할것없이 코를 막고 피해 다니는 고역의 길, "등하교 길을 좀 더 쾌적하게 하려다보니 꽃길로 꾸몄고, 청소를 열심히 했더니 건너편 유치원에서도 함께 청소하고 골목을 가꾸게 되었다". 

(왼쪽) 카페 메뉴    (오른쪽) 주택마당에 자리한 카페

여러 손길이 더해지니 골목이 더 아담해졌다고 지나온 시간을 돌이켰다. 골목 화분에 아직 꽃이 없어 겨울만 아니면 정말 이쁜 마당 카페인데 다 보여주지 못해서 무척 아쉬워 하신다. 겨울이라도 빗질을 게을리하지 않아 골목은 정갈하다. 수십년 나이를 먹은 주택들이 빌라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 골목은 없어지지 않고 있어 다행이다. 끝도 없이 이어진 골목길을 걷고 싶다면 상도동을 추천한다. 이제 봄이 왔으니 골목 따라 핀 꽃을 보며 카페의 호사도 누려보길 권한다.

추신 : 골목카페는 이주여성들의 삶이 숨어 있기도 하다. 성대골 골목카페가 자리한 이 주택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잠깐 머물기도, 혹은 길게 머물기도 하는 쉼터이자 그들의 공동생활공간이었다.

권오희 대표를 만나고 보니, 이주여성들의 가정문제와 그 자녀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짐을 함께 짊어진 활동가였다. 우리 사회의 아픈 조각인 그들의 아픈 내면이 자리한 곳이었다. 이주여성과 난민, 그리고 2세들이 부딪혀 있는 현실을 여기에 다 담을 수 없어 따로 지면을 기약하기로 한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내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해 있으나, 편히 정착하지 못해서 호소하는 사람들이 이 골목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을 카페를 통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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