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에 살아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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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에 살아봤다고
  • 2019.05.27 14:05
  • by 최윤정

‘제주 열풍’은 대개 2011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당시 순이동자수(전입자 수와 전출자 수의 차이)가 2,343명으로 2010년 437명에 비해 5배 이상 늘었고, 이후 계속 증가하여 2015년부터 3년간 매해 14,000명 이상이 유입되었다. 이 추세가 작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급감하여 8,853명이 되었다. 유입 추세가 꺾였다 하더라도 어쨌든 최근 9년간 새로이 제주를 경험하거나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상당히 많아졌다. 게다가 ‘한달살기’의 유행으로 제주에서 한 달을 비롯, 서너 달, 일 년씩 살아보는 사람들도 많다.

 

삶의 터전을 제주로 옮긴 사람들, 몇 년씩 살다 육지로 돌아간 사람들, 한 달부터 일 년 정도 살아본 사람들, 이들 모두에게는 제주에 대한 제 각각의 경험과 소회들이 있다. 비단 제주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살던 곳을 떠나 어딘가에 단기 혹은 장기로 머문다거나 아예 이주를 해서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떠나온 곳과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지를 비교하며 여러 평을 내리기 마련이다. 긍정적인 것도 있을 테고 부정적인 모습과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며칠짜리 여행이 아니라 살아봤으므로 더 많이 안다고 여기고 더 강하게 단정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사실 한 달이나 일 년처럼 한정된 시간 안에서의 경험과 정보는 제한적이다. 또한, 사전에 개인이 어떤 기대와 정보를 가졌는가에 따라 실제 만족이나 수용의 폭이 달라진다. 특이했던 사안과 경험을 어떤 해석으로 받아 들였는가에 따라 제주에 대해 이해를 하기도 하고 오해를 하기도 한다. 환경이나 문화가 조금 다를 뿐 사는 모양새는 고만고만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만족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쉽고 불편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길고 짧은 기간, 제주에서 산 사람들도 그런 갈래 속에 있을 것이다. 제주를 겪은 사람들 모두, 각각의 발견, 각각의 판단, 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이 중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을 말할 때는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뿐 아니라 어떤 사물, 사안,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이나 결론을 피력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이는 부정적인 면을 외면하거나 감추기 위함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과 경험으로 짐작해볼 수는 있을지언정 아주 확실한 결론을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속단하기 보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다각도의 정보를 살펴야 할 경우가 꽤 있다. 특히, 제주의 사회/문화나 사람을 논평할 때 그 복잡성을 감안하여 더욱 신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외국인이 ‘서울’에서 ‘한 달이나 일 년’ 정도 산 다음 ‘한국의 이런 점은 좋지 않다’고 논평한다 치자. 부분적으로 맞기도 할 테지만 원인이나 맥락이 복잡하여 정확히 꼭 그러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제주 어느 곳’에서 ‘한 달이나 일 년’ 정도 산 다음 ‘제주의 이런 점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도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럼, 제주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개인을 많이 반영한 제주의 경험이나 느낀 점은 오류나 오판을 줄이고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한다. 이를 테면, 제주 생활이 준 새로운 경험은 무엇인지, 이전과 달라진 변화가 있는지, 무엇을 발견했는지 등, 제주라는 공간과 시간이 개인에게 끼친 영향이나 인식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왕 말 나온 김에 제주 생활을 통해 이전과 달라진 변화에 대해 꼽자면, 나는 일몰을 기대하는 습관을 말하고 싶다. 제주의 일몰이 너무 아름다워 매일 일몰을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제주에 사는 동안 날씨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졌다. 하루 중 틈틈이 바깥 날씨와 햇볕의 결을 신경 쓰는 정도가 서울에 비해 훨씬 늘었다. 그러다 보니 날이 좋고 햇볕이 맑고 해가 또렷하다 싶으면 일몰을 기대하게 된다. 매일 훌륭한 일몰을 만나기 어려운 걸 아니 일몰이 아름다울 것 같은 날은 낮부터 일몰시간을 가늠하여 어디서 일몰을 볼 지를 챙긴다. 서울에서는 일몰을 염두에 두고 일몰의 순간을 어딘가에서 기다렸던 적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야근 문화가 적은 제주였기에, 곳곳에서 가려지지 않은 일몰을 볼 수 있었기에, 제주에 산다면 일몰에 대한 감각 정도는 단련해야 한다는 나만의 당위에, 아마도 그런 습관이 생겼을 것이다.

 

일몰 그 자체로도 좋지만 가을 억새에 녹아 든 일몰도 아름답다.

 

제주 남쪽, 대평리의 일몰. 대평리에선 일몰을 기다리며 산책하는 것이 중요 일과였다.

 

제주 서쪽, 곽지리의 일몰. 사위가 어두워지면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인데도 아이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논다.


이렇게 장소를 변화시켜 사는 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과 인식을 준다. 그 경험치와 인식들 중 부정적인 평은 ‘함부로’와 ‘신중히’ 사이 어디쯤에 위치할지 가늠하며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정적 단상이나 논평보다는 며칠짜리 여행부터 한달살기, 일년살기, 중장기로 머물 동안 어떤 경험이 새롭고 내게 변화를 줬는지, 어떤 발견을 하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하여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 나를 연결한 이야기들이 정보로서 가치도 있고 훨씬 유익했다. 제주에 산 적이 있다면, 또는 살고 있다면, 당신의 제주 이야기는 어떠한가. 당신이 경험한 제주와 그로 인한 당신의 변화가 나는 궁금하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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