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적경제의 강점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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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적경제의 강점은 '무엇'?
[서진선의 사회적경제 Q&A ③] 사회적 기업의 다양성과 시민사회의 역동성
  • 2019.08.30 18:56
  • by 서진선(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과 외래교수)

쿠피협동조합은 성공회대 대학원 협동조합경영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을 주축으로 협동조합 및 사회적 경제 연구와 교육을 하는 협동조합이다. 쿠피협동조합은 지난 7월 캐나다 요크대학교 맥머트리 교수(J. J. McMurtry), 프랑스 르망대학교 에릭 비데 교수(Eric Bidet), 캐나다 세인트메리대학교 소냐 노브코비치 교수(Sonja Novkovic)를 각각 초청하여 여름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들의 강연과 질의응답을 통해 나타난 사회적 경제 및 협동조합과 관련된 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재되는 글에서 사용되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육성법에 정의된 인증(예비) 사회적기업보다 국제적인 의미에서 더 넓고 다양한 범주를 다루고 있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인터뷰 정리와 원고 수정에 도움을 준 정지현(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과 석사과정)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러나 본고의 방향과 내용은 오로지 필자의 책임임을 밝힌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오직 하나의 종만이 생태계를 뒤덮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환경이 변할 때, 그리고 천적의 등장과 같은 위기가 나타났을 때 그 종은 전멸에 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에 필록세라라는 벌레로 인해 유럽의 와인용 포도나무가 대다수 말라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미국의 포도나무가 유럽으로 건너오면서 미국 포도나무 뿌리에 기생하던 이 벌레도 함께 넘어갔기 때문이다. 현재 와인용 포도는 대부분 미국 포도나무 뿌리에 유럽 와인용 포도나무를 접붙인 것이라 한다.

와인과 같은 술에만 적용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이 시작한 1840년대에는 200만 명이 사망한 아일랜드 대기근이 발생했다. 아일랜드 주민들의 주식이었던 감자의 유전적 다양성이 빈약하였는데 감자잎마름병이 시작되자 감자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어 이러한 참극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생물학적 다양성 혹은 유전적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환경의 변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경제 생태계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경제 시스템 그 자체와 경제를 둘러싼 사회, 과학기술, 환경, 정부 정책 속에서 이에 대응하는 경제주체가 오로지 하나의 형태로만 되어 있다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 투자이익을 목적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주식회사,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협동조합, 취약계층의 고용과 사회서비스라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자기고용을 목적으로 하는 소상공인 등 다양한 경제주체들로 경제시스템을 구성할 때 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가 야기하는 충격을 완화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버챌 교수와 케틸슨 교수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에 투자자소유은행에 비해 협동조합은행과 신협의 파산비율이 낮았고 회복력 또한 더 우수했다. 이러한 경제주체의 다양성은 사회와 사람들의 삶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freepik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국가와 맥락 속에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그 역시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기업들은 이론적 분류기준에 따라 사회적 경제, 제3섹터, 비영리부문 등 여러 개념에 중첩되어 속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증(예비)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협동조합, 자활기업, 소셜벤처 등이 사회적 기업에 해당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복지기관의 장애인사업장까지 포함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의 다양한 형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호와 능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 주고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각 사회적 기업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 경제의 현실과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아시아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의 유형

전 세계 사회적 기업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ICSEM(International Comparative Social Enterprise Models)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ICSEM 프로젝트에서 조사된 아시아 국가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이 있으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에릭 비데(Eric Bidet) 교수는 아시아의 사회적 기업을 4가지 유형으로 설명한다. 이 유형은 드푸르니와 니센스의 이론적 모형에 기반을 둔 것으로 비영리 기업가형(entrepreneurial nonprofit), 사회적 기업형(social business), 사회적 협동조합형(social cooperative), 그리고 공공부문 사회적 기업형(public sector social enterprise)이 있다.

비영리 기업가형은 사회적 미션을 지원하기 위해 수익 창출 사업모형을 가지는 비영리조직으로,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지배적인 모형이다. 아시아 사회적 기업의 약 55%정도가 이 유형에 속한다. 사람들을 노동시장에 재편입시키기 위한 노동통합기업(WISE, work integration social enterprise)이 이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형은 두 번째로 중요한 유형으로 민주적 기업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고 이익분배에 제한이 없지만 사회적 미션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후 설립·운영되고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세 번째 유형인 사회적 협동조합형에 해당한다. 이 유형은 아시아의 사회적 기업 중 17%를 차지하며, 민주적인 기업지배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부문 사회적 기업형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제공해야 할 공공서비스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아시아의 저개발국가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사회적 기업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비데 교수는 유럽의 사회적 기업 개념은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어 민주적인 기업지배구조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아시아의 사회적 기업은 유럽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이는 ICSEM 프로젝트에서 조사된 아시아 10개국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언어, GDP 성장률이 유럽의 국가보다 더 다양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ICSEM 프로젝트에 따르면 국가경제의 발전 정도나 관련법과 체계의 제도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기업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사회적 목적의 추구라는 사회적 기업의 목적 아래에서 각 나라의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된 것이다.

저개발국가에서는 국제 NGO나 국제기구들이 중요한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필요한 자원도 외국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들 국가의 사회적 기업들은 빈곤완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에서 사회적 기업은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의 주요 파트너로 일반기업은 CSR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으며 중상위층의 소비자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함으로써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필요한 자원도 자국에서 조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다 발전된 국가의 사회적 기업들은 빈곤완화를 넘어서 사회적 포섭을 위한 도구로 활동하고 있다.

1991년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협동조합 관련법 제정 시 사회적 협동조합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하나는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형이고, 나머지 하나는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협동조합이다. 이는 사회적 기업의 두 가지 역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정부보다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 기업의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비데 교수는 실제로 많은 사례에서 사회적 기업이 정부보다 더 잘하고, 더 효율적이며, 더 나은 해법과 더 다양한 해법을 제공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시민사회의 역동성, 그리고 사회적 기업의 발전

샐러먼과 안하이어가 정리한 시민사회의 기원에 관한 이론들 중에서 상호의존이론(interdependenc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비영리 조직 혹은 사회적 기업은 정부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정부보다 빠르게 사회의 쟁점에 다가가고 정부의 개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비데 교수는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경제 시작을 주도하고 이후 정치권과 정부의 참여했던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 발전과정을 설명하였다. 이 설명은 상호의존이론과 부합한다. 1998년 비데 교수가 한국에 와서 한국의 사회적 경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쓸 당시에는 아무도 아직 사회적 경제 개념을 알지 못하였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데 교수가 발견한 것은 우리나라에 사회적 경제가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사회적 경제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도화되기 이전에 사회적 경제는 시민사회에서 처음 출발했다. 조그만 지역에서 시작하여 점차 확대되고 발전되면서 정치권의 참여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법과 제도 및 지원체계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역동성의 대표적인 사례가 자활기업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다. 사회적기업육성법 등을 비롯하여 사회적 경제를 위한 다양하고 다층적인 지원체계와 생태계는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사회적 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정치적, 사회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회적 경제를 위한 이러한 다양하고 다층적인 지원체계와 생태계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독특한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경제 개념뿐만 아니라 정책에 있어서도 유럽과 미국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 내에 다양한 형태를 가진 조직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의 발전과 전체 경제의 성숙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상호의존이론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각자가 가진 한계를 서로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회적 경제 제도와 체계를 만드는 데 있어 사회적 경제 종사자들과 정치인과 정부 공무원 간 협력이 큰 역할을 하였다. 몇 년 전을 회상한다면 그러한 협력이 쉽지 않았을 수 있으며,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했을 때 이해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더디게 가는 것 같아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식, 서로 간의 신뢰, 노력이 쌓이면서 많은 진전을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비데 교수는 웃으면서 프랑스에서 몇 십 년 걸릴 것을 한국에서는 단기간에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향후에도 시민사회와 사회적 기업들의 주도성과 자발성, 정치권과 정부의 참여와 지원 등 다양한 방식의 협력이 이루어져 더 많은 진보를 이루기를 소망한다. 외부 환경의 변화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통해 사회, 더 정확하게는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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