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부동산을 향해 보내는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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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부동산을 향해 보내는 시그널
[소셜복덕방 - 삶이 깃든 부동산, 사회가 깃든 부동산 ②]
  • 2019.09.09 10:01
  • by 양동수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
복과 덕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복덕방(福德房)은 말 그대로 복과 덕이 있는 방을 의미한다. 과거 동네에서는 제를 올리기 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음식과 돈, 노동력을 제공하고 당산나무나 근처 넒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제사음식을 모두가 나눠 먹었다. 그리고 음식과 정을 나누던 그 공간을 복덕방이라고 일컫곤 했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사회적인 영역 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복덕방은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업자들의 등장으로 어느새 이름도 부동산중개소로 바뀌었다. 집과 토지를 의미하는 부동산도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닌 투기와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 최근 부동산 문제의 대안으로서 사회주택, 시민자산화, 공유공간 등 모델이 소개되고, '사회적 부동산'이라는 새로운 인식틀과 담론이 제안되고 있다. 삶과 사회가 깃든 부동산인 '사회적 부동산'을 사회혁신기업 더함과 함께 라이프인이 소개한다.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렇죠?” (tvN 드라마 <시그널> 중에서)


드라마 <시그널>은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형사가 시간을 이어주는 무전기를 통해 시그널을 주고받고, 이를 통해 미제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해 간다는 스토리의 드라마이다. 당시 매 회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든 명대사들이 많았는데, 내게 가장 와 닿았던 대사는 바로 위의 대사였다.

미래가 과거보다는 나아져 있느냐는 과거의 형사 이재한의 물음에 현재의 형사 박해영은 쉽게 답하지 못하고 마는데, 많은 사람들이 박해영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먹먹함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중 누가 무전기 앞의 저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제 곧 시즌2도 제작이 된다고 하여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결말을 이야기하자면, 드라마의 흑막(또는 진 최종보스)으로 드러나는, 부패한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국회의원 장영철은 공교롭게도 신도시 재개발 문제와 연루되어 있다. 극화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나는 작가가 만들어 낸 작품 세계의 구조가 실제 세계의 구조를 아주 잘 옮겨 놓았다고 생각한다.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 정점에 바로 부동산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의 부동산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형사 이재한은 묻는다. 20년 후의 세계에서도 차별과 불평등이 여전한지. 드라마의 세계관은 현재에서 저마다 쏟는 노력들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 tvN <시그널> 공식 홈페이지


우리의 삶터는 자산가치의 저장고(Asset Parking)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에 비례해서 우리 개개인의 삶의 질 혹은 사회의 질도 풍요로워졌을까? 한국이 매년 OECD에서 조사하는 삶의 만족도나 사회적 관계망 수준 측정에서 최하위에 맴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뿐인가? 한국의 부패지수, 소득격차, 사회적 불평등 이슈 역시 국제사회에서 계속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의 GDP는 세계 12위를 자랑하지만 불평등 구조는 눈부신 경제성장 이면에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피라미드 구조를 넘어, 압정 구조 형태로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소득격차나 자산격차가 큰 미국 등 주요국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주택소유집단과 주택비소유집단 사이의 불평등도가 전체 순자산 불평등도를 결정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정준호, 전병유, 「국가 간 비교 관점에서 본 한국의 자산불평등: 한국, 미국, 스페인 주택자산의 불평등 효과를 중심으로」, 『국토지리학회지』 51권 2호, 2017, 149~164쪽) 또한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임대료 대비 주택가격(PRR) 등의 수치 역시, 소득 격차보다도 자산, 부동산에서의 격차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부동산 투자를 일컬어 ‘에셋 파킹’(Asset Parking)이라고 표현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부동산은 곧 자산, 자산 가치의 저장고로 치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국경까지도 자유롭게 넘나들며, 도시에 실제 거주하는 이들에게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안겨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안락한 삶의 공간이, 예를 들어 아이들이 뛰노는 공원과 놀이터가 어떻게 자산의 차고지가 될 수 있는가?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공간이 자산의 저장고/차고지 역할을 하며, 그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 ⓒ pxhere


부동산을 둘러싼 몇 가지 환상과 넘어서야 할 관문

지금과 같은 부동산 개발 및 소유 구조에서 승자는 아주 소수이다. 언젠가 그 승자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 빨리 그 환상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2016년도 기준 상위 1%는 1인당 평균 6.5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전체 44%에 해당하는 841만2천 가구는 무주택 가구였다(2015년 11월 기준). 유주택 상황이지만 담보대출 부채에 허덕이는 가구들까지 고려한다면, 이 게임에서 대다수가 패자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

현재의 부동산 문제가 특정 정책으로 인해 한순간에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것도 환상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문제를 한큐에 해결한 부동산 정책은 없었다. 이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게임판 위에서 이를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룰의 영역을 넓혀가는 전략도 필요하다.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동체적 대응 방안이 새로운 해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오랫동안 사적인 자산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부동산에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는 방향으로의 전환 말이다.


거대한 맘몬(Mammon)에 맞서는 방식

올해 2월 국토연구원에서 발간한 <국토정책 브리프>(No.703)에서는, 포용적 도시 실현을 위해서는 사회적 부동산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해당 자료에서는 사회적 부동산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지역공동체 주도로 확보, 관리하며, 이를 통해 지역공동체의 역량 강화, 지역성 회복, 지역발전 등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부동산." 사회적 부동산을 설명하는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핵심을 꼽자면 공동체가 함께 공간을 확보하여 자산화하고, 공동으로 관리를 한다는 것이다. 계약서상의 소유주가 아니라 하더라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도시의 일원으로서 누구나 공간의 주인 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부동산 조성에 참여하는 방법이 ‘사회적 부동산 개발의 공급자로 직접 뛰어드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부동산(예를 들어, 사회주택, 공동체주택)의 입주자가 되는 것, 지역의 공유 공간과 공동체 공간을 자주 방문하고 이용하는 것, 이러한 공간에서 이웃들과 함께 자원과 물품을 공유하는 것, 부동산의 소유 및 운영 구조를 커뮤니티 자산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이 모든 행위가 '사회적 부동산'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는 행위들이다. 사회적 부동산 담론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내는 것 또한 훌륭한 방법이다. 앞으로 연재될 글에서 ‘사회적 부동산’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례, 가능성과 제안들을 보면서, 사회적 부동산에 참여할 수 있는 각자의 방법들을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물신인 '맘몬'(Mammon)을 떠오르게 한다. 시대별로 맘몬을 형상화한 그림의 형태는 조금씩 바뀌어 왔는데, 지금 시대에 맘몬을 그린다면, 부동산 투기업자의 모습을 띠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대 물신인 맘몬에 지배되고 핍박받기도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를 섬기기로 결정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의지이자 선택이다. 우리의 아이들, 다음 세대의 일원들도 맘몬을 섬기게 할 것인가, 아니면 부동산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는 결국 현재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앞서 얘기했던 드라마 <시그널>에서처럼, 2040년에 20년 전의 과거로부터 시그널을 받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지지 않았겠냐'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맘몬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보물 상자와 보따리를 지키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 Illustration du Dictionnaire infernal de Jacques Auguste Simon Collin de Plancy par Louis Le Breton, 6eme édition,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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