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지역 사회적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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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지역 사회적금융
[굿, 파이낸스 ③]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사회적금융이 할 수 있는 일
  • 2019.10.29 09:05
  • by 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금융은 혈맥에 비유되곤 합니다. 돈이 오가는 행위를 통해 기업을 비롯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돕습니다. 금융은 따라서 사회 유지와 발전의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특히 순환은 금융의 중요한 작동원리입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이 죽듯이 돈이 돌지 않으면 사회가 작동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흐르게 하는 것이 금융의 기본 역할입니다.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핵심입니다. 사회적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것이 사회적금융입니다. 순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자산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조직해나가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금융이 기존 금융 관행의 구심력을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 사회적경제도 단번에 도약할 것입니다. 라이프인과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사회적금융에 대한 인식 확산과 접근성 향상을 돕기 위해 [굿, 파이낸스]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인식의 폭을 확장하길 기대합니다. 


전남 목포에는 꽤 괜찮은 마을이 있다. 이름도 괜찮게 독특하다. ‘괜찮아마을’. 청년들이 주로 산다. 빈집을 활용해 쉬고 싶을 때 쉬고 놀고 싶을 때 논다. 그러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실험한다. 마을에선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것과 달리 잘 쉬는 게 우선이다. 덕분에 마음껏 상상하고 시도한다. 따로 또 같이, 서로 응원하고 의지한다. 이 마을을 다룬 김송미 감독의 <다행이네요>도 꽤 괜찮다. 이 영화를 보면 청년들에게 괜찮아마을은 ‘사건’이다. 괜찮아마을에 발 딛기 전과 후가 달라진 사건.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사람은 자신만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세파에 찌들었던 얼굴들이 말갛게 변한 모습을 만나는 것은 영화가 주는 덤이다.
 

영화 '다행이네요'의 한 장면 ⓒ괜찮아마을

영화에서 무엇보다 괜찮은 점이 있었다. 괜찮아마을은 청년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꼰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청년을 착취하지만, 이 마을, 다르다. 도시재생 한답시고 청년을 이용하지도, 지역 활성화를 위해 청년을 호명하지도 않는다. 청년에게 ‘네 멋대로 해라!’라며 풀어 놓는다. 스스로 공백을 만든 청년은 다시 꿈틀댄다. 도시재생에도 나서고 지역 활성화에도 스민다. 자신만의 얼굴을 갖게 된 청년들은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이 마을에도 고민은 있다. 경제적 자립이다. 영화도 그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심리적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 ‘마음 근육’을 기른 청년들의 다음 시선은 지속가능성으로 향한다. 비빌 언덕을 만들었지만 자립 모델 만들기는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영화 '다행이네요'의 한 장면 ⓒ괜찮아마을


서울과 지방 사이

역사학자 전우용은 서울을 ‘유아독존의 수도’라고 칭했다. 그에 의하면, 서울은 생존과 확장을 위해 농촌을 수탈했던 도시 중에서도 유별났다. 경제적·사회적 자원을 독점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말하자면, 서울은 ‘식탐’ 많은 ‘식신’이다. 

서울은 때로 그 자체로 폭력이었다. 일례로 ‘지방’이라는 단어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지방은 전국의 상대 개념이다. 서울도 따라서 지방이다. 서울시는 지방정부의 하나이며 서울지방경찰청, 서울지방법원 등 서울도 지방임을 알리는 용어도 널렸다. 그럼에도 지방은 사전적 의미로 ‘서울 이외의 지역’을 뜻하고 그렇게 통용된다. 사실 다양한 개성을 지낸 개별 대상을 한 덩어리로 묶는 것, 모멸적이다. 지방으로 ‘내려가’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에도 문제가 있다. 차별하는 용어다. ‘지잡대’(‘지방 잡 대학’의 줄임말)는 그런 폭력의 끝판왕이다. “한국은 학교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서울 안에 존재하는 것 자체를 특권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심각한 집중화, 위계화, 획일화다.”(《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중에서)

최근 서울 명동에서 <지방에서 왔습니다>라는 행사가 열렸다. 일부러 ‘지방’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이 아닌, 즉 지방이어서 더욱 멋진 일을 펼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다양한 지역을 터전으로 삼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지역 문제 해결은 물론 지역만의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지난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는 지방 청년 창업가와 기업들을 위한 네트워킹 행사인 서울 밖에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공개 대잔치 '지방에서 왔습니다'가 개최됐다. ⓒ라이프인

지역성을 살린 이야기와 장소를 품은 사업모델은 차별성을 만들어낼 여지를 품고 있었다. 여기서 지방은 서울의 변두리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낳는 공간이었다. 처음에 행사 제목만 보고선 ‘지방’이라는 말이 불편했던 나는 “지방이라는 단어를 사회적 합의에 의해 긍정적인 표현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괜찮아마을 기획자 홍동우(공장공장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중심’이 아니다. 서울은 크고 자원이 많을 뿐이다.

이 행사를 연 IFK임팩트금융(이하 IFK)은 사회적금융기관이다. IFK는 지역에서 청년이 일할 근거와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이 같은 행사를 계속 열면서 지역에서 일하기 좋은 터전이 마련되도록 돕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이는 사회적금융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 일깨운다. 

핵심은 성장이 아닌 순환이다. 지역은 순환적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주체다. 사회적금융은 돈의 순환을 통해 지역경제 순환을 촉진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SVS)도 비수도권 사회적금융 접근성 향상을 꼭 필요한 의제로 보고 있다. 최근 한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에 사회적금융 공급을 결정하면서 중요하게 본 것은 자금의 70% 이상을 비수도권에 공급하겠다는 의지였다. 현재 다른 중개기관 건을 검토하면서 눈여겨본 지점도 비수도권 사회적경제조직에 자금을 넣겠다는 계획이었다.

 

‘고도비만’ 도시를 위한 처방전, 지역활성화와 사회적금융

지난 8월 발표된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 집계결과’에 의하면, 전체 인구(5163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2571만 명(49.8%)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식신’은 고도비만 상태에 도달했다. <한국의 지방소멸>(이상호, 2018) 보고서는 30년 안에 시·군·구와 읍·면·동 10개 중 4개가 소멸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역 인구 감소는 지역 경제·금융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금융도 부진에 빠졌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낸 ‘최근 지방은행의 부진한 경영성과와 대응방안’보고서에 의하면 지방은행은 2017년 전만 해도 시중은행보다 수익성·건전성 등에서 앞섰으나 이후 뒤집어졌다. 이 연구위원은 지역은행이 가진 강점인 관계형 금융을 살리는 한편 지역에 대한 금융 지원 유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역금융은 과거에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낮은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했다. 그럼에도 시중은행보다 더 좋은 성과를 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지역민들의 충성도와 관계형 금융 등에 힘입었다.

역설적이게도 지역이 도시의 미래임을 보여주는 대목도 곳곳에 있다. 지난 24일 열린 아시아미래포럼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공동체 경제>에서 연사들은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지역 활성화에서 찾았다. 대도시는 지역 없이 생존하지 못한다. 과거는 수탈을 통해서였지만 이제는 협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페미니스트 도시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이 자리에서 거대 금융자본이 대도시 토지, 건물 등을 잠식하면서 부를 추출하고 시민을 축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센은 지역(로컬)기업이 계속 만들어지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9아시아미래포럼 세션3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공동체 경제'의 기조발제를 맡은 사스키아 사센 교수(가운데)는 현재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대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축출(explusion)'의 논리를 지적했다. ⓒ라이프인

지역에서 사회적금융이 해야 할 과제는 뚜렷하다. 로컬 크리에이터와 지역기업이 활개 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것. 시민이 주인인 시민(공동체)자산화에 힘을 싣는 것. 지역과 시민에 방점을 둔 사회적금융은 추출과 축출이 아닌 순환과 지속가능성을 약속할 수 있다. 핀란드 등 EU, 미국 일부 주는 비만세를 거둬 비만이라는 사회적 질병에 대처한다. 고도비만에 처한 도시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여러 지원책을 펼치고 있으나 중요한 건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을 벗어난 일상도 상대적 박탈감 없이 풍요로워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를 지역에서 “뭘 해도 안 되니 서울로 가야 한다”라며 자조 섞인 말로 바꿔 일컬은 적이 있었다. 덕분에 서울은 고도비만이 됐지만 죽어라 빼도 빠지지 않던 살이 조금씩 트기 시작했다. 다양한 이유로 지역을 선택한 사람과 기업이 늘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지원 방안은 여전히 부족하다. 
 

시민주도 공간활성화 프로젝트 '괜찮아마을'에서 진행된 프로그램 ⓒ괜찮아마을

부진에 빠진 지역금융과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사회적금융이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순환경제의 주체이자 지역 착근성이 높은 사회적경제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소득역진성과 경기순응성을 넘어 관계형 금융에 기반을 두고 지역 개발 및 소유 등이 시민 주도로 실현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지역균형발전은 국정과제이면서 시대적 요구다. (사회적)금융이 지역균형발전을 추동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괜찮은금융’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괜찮아, 어차피 인생 반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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