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관리 문화의 개선 건강한 커뮤니티 문화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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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관리 문화의 개선 건강한 커뮤니티 문화에서부터
[소셜복덕방 - 삶이 깃든 부동산, 사회가 깃든 부동산 ⑨]
  • 2019.12.16 10:36
  • by 김상용 (사회혁신기업 더함 이사)
복과 덕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복덕방(福德房)은 말 그대로 복과 덕이 있는 방을 의미한다. 과거 동네에서는 제를 올리기 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음식과 돈, 노동력을 제공하고 당산나무나 근처 넒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제사음식을 모두가 나눠 먹었다. 그리고 음식과 정을 나누던 그 공간을 복덕방이라고 일컫곤 했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사회적인 영역 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복덕방은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업자들의 등장으로 어느새 이름도 부동산중개소로 바뀌었다. 집과 토지를 의미하는 부동산도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닌 투기와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 최근 부동산 문제의 대안으로서 사회주택, 시민자산화, 공유공간 등 모델이 소개되고, '사회적 부동산'이라는 새로운 인식틀과 담론이 제안되고 있다. 삶과 사회가 깃든 부동산인 '사회적 부동산'을 사회혁신기업 더함과 함께 라이프인이 소개한다.


삐뚤어진 특권의식, ‘갑질’은 이제 그만

나른한 오후 업무시간,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심정을 담은 톡이 왔다. 지인의 장인어른이 위독하여 중환자실에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연락은 다음날 새벽 부고 알림으로 바뀌었고, 운구도 함께하게 되었다. 평소 조깅과 등산으로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가지신 분이라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놀랐는데, 장례식에서 들은 고인의 사망 이유는 더욱 놀라웠다. 경비원으로 일하시던 지인의 장인어른이 입주자대표회장의 지시에 따라 단지 내 감나무의 감을 따다 사다리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고, 그것이 직접적인 사인이 되어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아침 산책 중 눈에 띈 단지 내 유실수를 본 입주자대표회장이 고인에게 자신의 눈앞에서 당장 감을 딸 것을 지시했고, 다급한 고인은 주변 동료들이 오기 전에 사다리를 놓고 혼자 올라갔다가 사다리가 넘어지면서 사고를 당하셨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온 조문객들은 “감 따는 게 뭐라고. 동료들이 올 때까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었더라면…”, “아니 왜 그 회장은 자기 눈앞에서 당장하라고 다그쳤을까...”, “누군가가 불안정한 사다리를 조금만 잡아 주었더라면…”, “다쳤을 때 조금만 더 빨리 응급조치를 취해줬더라면…” 등 안타까운 심정을 함께 나누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에 대하여 열띤 성토를 벌이기도 했다.

발주처 사장, 직장 상사, 공무원, 대학교수, 법률가, 정치인에서부터, 앞서 언급된 입주자대표회장까지… 이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갑질을 당해보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한탄과 함께, 자신들도 무의식중에라도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지 말자라는 쓰디쓴 다짐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시설은 어떠한가?

천만 아파트 시대에 걸맞지 않는 열악한 공동주택 관리 문화에 대한 다양한 지적과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주택관리종사자의 근로환경 개선방안 연구(한국주택관리연구원 정형철, 2015)>의 제언과 같이, 입주자대표회의의 부당간섭 제한과 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 관리형태 및 주택관리업자 변경 시 고용 승계와 부당해고 금지, 표준 임금체계 마련과 휴게시간 보장 등과 같은 개선 요구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그러나 잘 변하지 않는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입주자와 근로종사자 간 ‘건강한 커뮤니티’의 경험과 문화가 없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커뮤니티 시설 운영의 3박자, “운영 프로그램, 사람, 운영예산”

‘특화 커뮤니티’ 경쟁으로 치열한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을 살펴보자. 입주민의 주거 편의 극대화와 주거 선호도 상승 보장, 향후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좌우한다는 이유로, 호텔급에 가까운 커뮤니티 시설들이 주거 단지로 들어오고 있다. 피트니스와 사우나, 국공립 어린이집뿐 아니라 영어교육 시설, 게스트하우스, 수영장, 피크닉 공간, 캠핑장, 생태연못 등 특화 조경시설과 공유부엌, 목공방, 영화감상실 등 취미시설이 들어오면서 주택의 ‘품격’과 ‘가치’를 올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갖게 한다.

정말 그럴까? 최근에 다녀온 ‘ㅇㅇ아파트’ 단지의 상황은 심각했다. 1군 건설사가 지은 단지 내 커뮤니티시설은 준호텔급이었다. 하지만 그 시설의 품질에 비해 운영은 엉망이었다. 커뮤니티 시설 출입문은 상시 닫혀 있었고, 고가 장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너저분한 출력물들이 안내문이란 이름으로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이유는 장비 가격에 비하여 한없이 적은 운영비용, ‘돈’이었다. 운영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에 대하여 입주민들의 합의가 없다 보니, 전 세대에 일정 운영비용을 강제 부과하는 것과 관련하여 입주민 간 반발과 반목이 있었다. 결국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소수 이용자들만이 동호회 형태로 운영하다 보니 상시 개방은 불가피했고, 한여름 한겨울에도 해당 시설에 부과되는 전기료 등을 아끼기 위해 제한적으로 이용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기계와 장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능을 상실하기에, 이 커뮤니티 시설들이 조만간 애물단지로 변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은 ‘특화 커뮤니티’ 경쟁으로 치열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단지 내로 준호텔급의 커뮤니티시설이 도입되고 있지만, 운영 및 관리에 대한 커뮤니티 내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설이 외려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pxhere

커뮤니티 시설은 이용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운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용자를 늘리며, 소정의 금액을 모아 시설의 유지와 보수, 업그레이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에 대한 예산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운영방안이다. 이용 주민이 적다면 과감히 커뮤니티 시설을 외부에 개방하고, 이웃 단지 주민들도 이용하게 하여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것이 시설의 장기적 이용과 세대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커뮤니티 시설 안정화와 운영 활성화를 구축한 단지들은 하나같이 “이용자에게 적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는 운영자의 기획”, “이용자의 자발적 참여와 필요시 외부 개방을 통한 수요 확보”,“ 커뮤니티 상주인력과 파트타이머, 시설 운영비용 부담에 대한 합의”, “적절한 운영 시스템의 사전 구축” 등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커뮤니티가 활성화될 때 주거시설은 단지 안팎의 공동체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해당 단지의 유무형의 가치를 상승시킬 것이다.

커뮤니티의 활성화는 일부 대표자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과제

▲ 공동주택관리 문화는 일부 대표자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입주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갑질 혹은 방관으로 얼룩진 공동주택관리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 ⓒpxhere

커뮤니티의 활성화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다. 개인화되고 단절될수록 커뮤니티 시설의 수명은 짧아지며, 모일수록 커뮤니티 및 커뮤니티 시설은 생기를 갖게 된다. 주택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정하여 제공하는 커뮤니티 시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여러 공동주택 입주민들의 공동과제이다. 이는 일부 입주민들의 봉사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주거생활을 공유하는 입주민들의 참여와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지금도 여러 단지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논의를 조정하여 커뮤니티 시설의 안정화를 이룬 단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위스테이 별내’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내년(2020년) 여름 입주를 앞두고 있지만, 입주자들은 2년 전부터 사전에 모여 커뮤니티 공간을 디자인하고,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에 소요되는 집기와 비품에 대한 예산 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세대당 커뮤니티 운영비용을 확정했고, 운영 프로그램을 위해 전국과 해외로 벤치마킹을 다니고 있다.

새로운 아파트 커뮤니티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위스테이 별내 구성원들이 꿈꾸는 주거단지의 모습은 어떨까? 커뮤니티 시설 부족으로 여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인근 마을의 주민들에게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을 기꺼이 내어주고, 활성화된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와 일자리를 만들어 내려 한다. 또한 공동주택 근로 종사자에게 ‘경비원, 미화원’ 같은 딱딱한 호칭이 아니라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공동의 명칭으로 호칭하되, 주어진 업무를 수동적으로 이행하는 직업군이라는 인식을 넘어, 커뮤니티의 한 축으로 당당히 활동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준비하고 있다.

입주민들이 함께 보안과 청소에 일정 부분 직접 참여하고 지원하여, 불필요한 관리비용은 최대한 절감하되, 세대 내 전유공간에 필요한 여러 서비스들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커뮤니티 ‘공간’을 디자인했던 입주민들은 이제 ‘운영 프로그램’을 직접 디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모르나 이들의 참여는 공동주택관리의 문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건강한 커뮤니티’의 공간과 운영방안을 기획하고 참여하는 경험들을 통해, 많은 주거단지에 ‘갑질과 분쟁’ 대신 ‘서로를 돕고 세워가는’ 새로운 주거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 안에서 마을주민 모두가,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 함께 성장해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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