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와 패자 없는 부동산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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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와 패자 없는 부동산은 가능할까?
[소셜복덕방 - 삶이 깃든 부동산, 사회가 깃든 부동산 ⑫]
  • 2020.02.03 17:58
  • by 김미선 (사회혁신기업 더함 매니저)
복과 덕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복덕방(福德房)은 말 그대로 복과 덕이 있는 방을 의미한다. 과거 동네에서는 제를 올리기 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음식과 돈, 노동력을 제공하고 당산나무나 근처 넒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제사음식을 모두가 나눠 먹었다. 그리고 음식과 정을 나누던 그 공간을 복덕방이라고 일컫곤 했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사회적인 영역 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복덕방은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업자들의 등장으로 어느새 이름도 부동산중개소로 바뀌었다. 집과 토지를 의미하는 부동산도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닌 투기와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 최근 부동산 문제의 대안으로서 사회주택, 시민자산화, 공유공간 등 모델이 소개되고, '사회적 부동산'이라는 새로운 인식틀과 담론이 제안되고 있다. 삶과 사회가 깃든 부동산인 '사회적 부동산'을 사회혁신기업 더함과 함께 라이프인이 소개한다.

부동산 존버는 승자였는가?

살면서 처음으로 가져 본 '나의 방'은 1평 고시원이었다. 재건축을 앞둔 15평의 작은 아파트에서 다섯, 혹은 여섯 가족이 그야말로 '존버'하며 버텼기에, 내 방은커녕 사생활조차 갖기 힘들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홀로 방에 웅크리고 앉아 심야 라디오를 듣거나, 글을 쓰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극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알바가 아닌 정규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스물다섯에, 나는 통근이 멀다는 걸 반 핑계 삼아 고시원에 둥지를 틀었다.

어쩌면 IMF 이후 줄곧 불안정했던 생계 속에서 믿을 건 여하한 소득이 아닌 부동산이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존버를 통해 부모님은 전보다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삶을 누리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가능성을 부동산에 올인하느라 현재를 포기하고 인내하는 삶을 배웠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여전히 내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든다.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동안, 어디선가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있었고, 또 어디선가는 전세에서 월세로, 더 열악한 형태의 집으로 이동해야 하는 삶의 경로를 걸었을 것이다. 이처럼 부동산 시세로 희비가 갈리는 상황들 속에서, 나는 부모님이 무조건적인 승자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좀 더 누릴 수 있었던 현재의 행복과 여유를 집과 맞바꾸었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었던 젠트리피케이션

승자가 되기 위해 무조건 버티기만 하다가 결국은 중요한 걸 잃게 되는 사례가 어디 집뿐일까. 경리단길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방송인 홍석천 씨의 레스토랑 폐업 소식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이슈를 다시금 뜨거운 감자 위치에 올려두었다. 한 부동산 중개플랫폼에서는 이 일을 언급하며 임대료를 끝내 내리지 않던 건물주들을 옹호하는 글을 한 편 올렸는데, 해당 글은 여러 곳에 공유되며 누리꾼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해당 글의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지역의 평균 시세보다 임대료를 낮게 책정하는 건물이 있다면 해당 지역의 다른 건물 임대료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임대료는 곧 건물의 가치를 의미하기에, 건물 가치의 하락, 자산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는 임대료 인하를 섣불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건물주들이 건물을 담보로 높은 금액의 대출을 받아 구입하는 경향이 있음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차라리 공실로 유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임대료를 쉽게 낮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글의 내용 중에는 해당 지역의 임대료 시세가 전반적으로 낮아져 다시 상권이 살아날 경우, 지역 내 임대인 중 끝까지 임대료를 인하하지 않고 버티는 쪽의 이득이 가장 크게 된다는 전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고 체계 속에는 지역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상인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저 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내가 임대료를 내려서 다른 누군가보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더 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 하는 업자들만 존재할 뿐이다. 비단 경리단길뿐 아니라, 젊은 상인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사랑에 힘입어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던 지역들이 쇠퇴해 가는 과정에는 이러한 딜레마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임대업자, 지역민, 청년 예술인과 상인 중 누구도 승자일 수 없었다.

'사회적 부동산', 승자와 패자가 없는

<소셜복덕방> 연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누군가 '사회적 부동산'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지 곰곰 생각을 해보았다. 주거든 상업지역이든 모두가 승자이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중요한 가치나 이득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 부동산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없는 장(場)을 만드는 것이 바로 '사회적 부동산'이지 않나 싶다.

'경기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지금 당장 이득을 위해 행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서로 신뢰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당위적일 뿐, 실효성을 주지는 못한다. 함께 출자하여 산출된 수익을 같이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강화하자는 구체적인 약속을 만들어 내고 관계(공간을 둘러싼 거버넌스)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협력과 신뢰는 구체적인 정황, 그리고 일방이 파기하기 힘든 약속들 속에서 쌓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만 범람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없는 안전지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안전지대에는 '존버'하느라 온 삶을 다 바쳤다는 이야기도, 어렵사리 마련하고 성공시킨 가게를 임대료 때문에 날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 함께 출자하여 산출된 수익을 같이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강화하자는 구체적인 약속을 만들어 내고 관계(공간을 둘러싼 거버넌스)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협력하고 신뢰하자는 말은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협력과 신뢰는 구체적인 정황, 그리고 일방이 파기하기 힘든 약속들 속에서 쌓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ixabay


※ 그동안 <소셜부동산>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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