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②] 사회적경제와 호혜성, 그리고 돈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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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②] 사회적경제와 호혜성, 그리고 돈의 관계
  • 2020.02.13 16:05
  • by 이가람 (연세대학교 BK21PLUS 연구원)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사회적경제는 하나의 사례, 하나의 정의로 대표하기 힘들 만큼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사회주의 기획'부터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수단, 또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대안까지 다양하다. 또한 사회적경제 영역은 무엇이 '사회적'인지 자기증명을 요구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글로벌행정학과 BK21PLUS <창조적 국제개발협력을 위한 사회적 경제> 연구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가람 박사와 라이프인이 한국 사회적경제의 다양한 현장 활동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적경제의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사회적경제는 별칭이 많다. 그 중 하나로 사람들은 사회적경제를 "관계의 경제"라고 부른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관계 아닌 경제도 있나? 한 겹 더 들어가 누군가 사회적경제가 "호혜와 연대의 경제"라는데, 뭐가 호혜적이고 무슨 연대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무인도에서 자급자족하지 않는 한 경제는 관계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심지어 넓은 관점에서 자연을 포함하면, 자급자족마저도 생태적 요소와 관계를 맺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경제의 의미를 폄하하고 싶은 사람들은 흔히 "경제는 원래 다 사회적"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사회적경제가 왜 '사회적'이냐는 질문에 "관계"를 들어 답을 하려면 그 관계가 기존에 경제 주체들이 사회와 맺어 온 관계와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호혜성을 말할 때 놓치기 쉬운 부분들

우선 우리가 호혜(reciprocity)를 말할 때 흔히 놓치는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자. 하나는 호혜의 관계가 반드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호혜는 엄밀히 말하면 주고받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고받는 대상이 반드시 긍정적이기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호성(相互性)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 원숭이와 유인원들은 자기들끼리 호혜주의를 표현하는 일이 많다. 네가 내 등 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는 식이다.(<이성적 낙관주의자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2010, 김영사)> 中) ⓒpixabay

어느 쪽이든 '서로'라는 말에서 흔히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지만, 여러 인류학 연구에 등장하는 호혜의 개념, 특히 사회적 차원의 호혜는 3자 이상의 관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나와 거래 당사자가 아닌 제3자는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일 수도 있고, 지구 먼 곳의 어느 누구 또는 미래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나의 행위로 인한 혜택을 단기적으로는 내가 직접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경제의 호혜를 말할 때 우리가 흔히 놓치는 다른 부분은, 호혜를 강조한다고 해서 교환이나 재분배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호혜가 교환이나 재분배의 방식과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

사회적경제의 원리로서 호혜가 교환이나 재분배의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달라야 할지를 이해하고 고민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이 세 가지 방식을 구분한 것으로 잘 알려진 칼 폴라니 스스로도 호혜와 교환, 재분배가 지배적인 사회라는 특성이 그 사회의 발전의 단계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고, 세 가지 방식이 한 사회에서 공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점을 함께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칼 폴라니의 사상은 사회적경제와 호혜성을 개념화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가 <인간의 살림살이>(2017, 후마니타스)에서 호혜와 교환, 재분배를 구분하여 설명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영향 안에서 모든 것을 사고파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경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의 폭을 열게 되었다. 교환이 시장의 방식이라면 호혜와 재분배는 사회에서 경제자원이 순환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폴라니는 자원을 한데 모았다가 나눌 중심의 존재가 있는지에 따라 호혜와 재분배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사회적경제의 호혜를 교환이나 재분배의 방식과 어떤 균형 속에서 움직일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많은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고민하는 지점들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경제가 실현하는 호혜적 경제구성 논리가 지원금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의 재분배 논리, 시장의 경쟁교환 논리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는 단편적으로 재단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분석적으로 접근해야 할 부분이다.

현대 사회의 쿨라(kula)로서 돈의 가능성

▲Kula ring ⓒUniversity of Aberdeen Museums

쿨라(kula)라는 말이 낯선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 말은 영국의 경제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가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호혜교환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현지어로 둥근 원을 의미하는 쿨라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 팔찌 등을 교환의 매체로 사용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오늘날 사회적경제에서 호혜교환의 매개가 되는 이런 매체를 찾는다면, 단연 돈이 아닐까?

실제로 사회적경제의 많은 현장에서 돈은 교환과 거래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때 거래는 가치에 대한 소통이자 상호작용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최고의 연대는 소비"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통하는 말일 수 있다. 물론 일부 사회적경제 조직이나 지역에서는 지역화폐나 비화폐거래 등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통용되는 화폐든, 지역화폐든, 시간화폐든 돈이 교환되는 방식은 그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합의를 전제한다. 이때 사회는 사회적경제 영역 내부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합의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결사체이자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사회적경제 활동은 교환과 재분배를 지배적으로 하는 시장사회 제도의 틀 안에서 호혜적 방식의 대안을 모색한다. 이런 호혜적 방식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을 토대로 사회적경제에서 돈을 쓰는 방식은 그래서 자본주의적인 돈의 순환과는 그 성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생협의 수매선수금 제도나 자조금융이나 인내자본으로서 사회적 금융의 방식은 그 사회적 가치와 실현 방식에 대한 당사자들의 합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하다.

돈의 익명성은 사회적경제의 사회관계를 확장할 수 있다

돈에는 이름이 없다. 독일의 사회학자 짐멜은 일찍이 현대 사회에서 화폐를 활용한 거래는 그 익명성을 통해 서로 잘 모르는 사람을 연결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사회적경제는 외따로 떨어져서 내부거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경제와 일반 시장의 고객들과, 정부와, 투자기관과의 사이에서는 적든 많든 돈이 돈다. 화폐를 사회적경제라는 관계에서 순환하는 쿨라로 보면, 돈이 도는 관계는 화폐를 매개로 관계를 맺는 상대방에게로 호혜교환의 원이 확대되는 것이 된다. 일반 시장에서 사회적경제의 저변이 확대되어 사회적경제가 그 가치를 공유하지 않았던 부문과 거래가 늘수록 사회적경제의 범위와 영향력(impact)이 확장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우선 사회적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사회적경제 기업의 제품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경제를 알게 될 수 있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의 2018년 통계를 보면 사회적경제 이용경험 유무에 따라 사회적경제 인식에 차이를 보였다.

▲사회적경제기업 유형별 쇠비자 인식률 ⓒ한국소비자원
▲ 사회적경제기업 및 사회적경제 대한 인식 ⓒ한국소비자원

사회적가치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 것 역시 이러한 관계의 확장이 가져온 효과일 수 있다. 사회적경제 영역과 지원금 및 세제정책으로 엮여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사회적경제 기업과 기존 기업의 차이를 파악하고 반영하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했다. 일반 기업과 시장 입장에서 사회적경제는 사회공헌활동의 좋은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상대이자 투자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경제의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정부와 시장 입장에서도 사회적경제의 핵심인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논의해야 할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살림살이 경제로서 사회적경제는 결국 삶의 작은 일상에서부터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이미 삶 곳곳에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경제가 다른 길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일은 제자리걸음처럼 보일 때도 많다. 하지만 사회적경제는 우리에게 호혜성과 돈에 대한 다른 생각과 실천이 쌓이면 사회가 변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관계는 그 영향력을 증폭할 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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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람 (연세대학교 BK21PLU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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