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 2018년 유럽과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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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 2018년 유럽과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기획연재] 서현수의 북유럽민주주의포럼 (핀란드 Tampere 대학교 정치학 박사)
  • 2018.01.04 11:37
  • by 라이프인

2017년이 저물고 2018년 새해가 밝았다. 20세기 세계사를 뒤흔든 러시아혁명 100주년이었던 2017년은 100년 전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시대 전환의 징후가 될 만한 중요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세계가 커다란 정치적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퇴행적 스타일의 극우 포퓰리즘 정치를 통해 미국과 세계 질서를 뒤흔들어 놓았다. 푸틴 러시아의 대선 개입 스캔들과 본인의 성추문 의혹 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오바마와 민주당 정권이 8년 간 어렵사리 이룩한 대내외 정책 성과들을 1년 만에 무위로 돌리거나 오히려 더욱 후퇴시켰다.

파리 기후변화 협약의 일방적 탈퇴 등 트럼프 행정부가 표방하는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적 외교정책 노선은 유럽의 외교안보 상황에도 중대한 파장을 몰고왔다. 2017년 3월의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의 불만스런 만남 이후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우리가 타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나갔다”며 “우리 유럽인들은 진정으로 우리의 운명을 우리 자신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역설했다(The Guardian, 2017.5.8. 기사 참조). 여기서 ‘타인들’(others)이란 트럼프의 미국만이 아니라 2016년 여름 브렉시트(Brexit) 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영국이 포함된다. 영국 보수당 총리들의 정치적 기회주의는 전임 카메룬 총리에 그치지 않고 현 메이 총리에게도 이어져 그녀는 2017년 6월 조기총선의 승부수를 던졌다. 카메룬은 EU 탈퇴를 요구하는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영국독립당(UKIP)의 보수당 기반 잠식을 저지하려 했고, 메이는 EU와의 브렉시트 협상 전에 영국 의회에서 큰 격차의 과반수를 점유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기회주의적 정치 행위의 결과는 ‘자기발등 찍기’로 드러났다. 보수당은 기존보다 13석이 준 318석을 획득해 오히려 의회 과반수를 잃은 뒤 북아일랜드 기반 보수주의 소수정당 DUP와 연정을 꾸려야 했다.

2017년 3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에서 만난 국가 정상들과 EU 의장단 (www.consilium.europa.eu/en/media-galleries/international-summit/2017-05-g7-summit-taormina/)

이러한 상황에서 메르켈은 유럽연합의 쌍두마차라 할 프랑스의 새 대통령 임마누엘 마크롱을 새로운 파트너로 맞이했다. 젊고 깨끗한 정치인 이미지를 내세운 마크롱은 집권 사회당의 분열과 우파 후보의 부패 스캔들을 어부지리로 삼고 결선투표제의 이점을 활용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이원집정부제 하 프랑스 대통령에게 부여된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권한을 통해 의회에서도 순식간에 일당의 지위를 점했다. 극우 정당인 프랑스 국민전선 마린 르펜의 대통령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 데 안도하면서 메르켈은 (시장 친화적) 유럽통합의 열렬한 옹호자인 마크롱과 더불어 영국 없는 유럽연합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유럽은 이미 새로운 불확실성과 위기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그 동안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유럽연합을 사실상 이끌었던 독일의 위상과 메르켈의 리더십에도 균열이 발생했다. 2017년 9월 총선에서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은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었지만 지지율 폭락으로 빛이 바랬다. 전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의장이던 마틴 슐츠(Martin Schultz)가 이끄는 사민당은 전후 역사상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며 연정 협상 불참을 선언했다. 반면,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5 퍼센트 진입 장벽을 넘어 의회에 처음 진출했다. 선거 이후 메르켈이 주도한 연정 협상이 결렬되면서 독일 정치는 장기간 표류했고, 사민당이 입장을 바꾸어 연정 협상에 임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에 이어 독일에서도 전후 민주주의 질서를 주도해온 좌우의 중도 정당들이 기득권 엘리트 세력으로 비난받으면서 극우와 극좌, 특히 민족주의 포퓰리스트 정당들로부터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등장과 영국의 EU탈퇴, 흔들리는 메르켈 리더십...민족주의와 포퓰리즘 등장과 가치 공동체 EU에 켜진 경고등...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리더십 요구 

약 3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 냉전이 종식되면서 EU 확대를 통한 통합과 번영의 시대를 낙관하던 유럽 시민들은 EU의 역할과 유럽 통합의 미래에 대해 점점 더 불신하게 되었다. 10년 전인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에 영향을 받은 유럽 재정위기는 유럽연합의 정책 결정 시스템과 위기 대응 능력의 중대한 결함을 드러내며 남유럽과 북유럽 간의 분열을 불러왔다.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과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사태는 ‘소프트파워’를 내세운 EU 외교안보 역량의 중요한 한계를 드러냈다. 선거 민주주의의 포장 아래 푸틴의 장기 집권을 용인하며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한 러시아가 지정학적 슈퍼파워로 귀환한 것을 알린 일련의 사태 전개는 유럽 전역에서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다시 불러냈다.

2015년 유럽 난민 위기는 유럽 내부의 사회경제적 균열과 국제관계의 균열에 더해 인종, 국적, 종교, 섹슈얼리티 등 문화적 정체성 이슈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을 촉발시켰다. 특히 난민 행렬에 대한 동유럽과 서유럽의 상반된 대응이 전개되면서 양 지역 국가들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새삼 환기됐다. <유럽연합 헌장>과 <유럽 인권협약> 등에서 내걸고 있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의 3대 가치와 원칙들이 헝가리와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에서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가치 공동체로서의 유럽연합의 위상과 역할에 경고등이 켜졌다. 서유럽에서도 이민 규제를 요구하는 민족주의 포퓰리즘 정당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국경 통제와 치안 강화, 이민과 난민 자격의 엄격한 심사 정책이 추진됐다.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포용적 난민 정책을 펴온 스웨덴의 사민당 정부가 극우 스웨덴 민주당(Swedish Democrats)의 득세를 막기 위해 2015년 가을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등 정책 전환을 단행하자 유럽 시민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그리하여 2018년 새해 벽두의 유럽과 세계는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의 시대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20세기 혁명과 내전,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장기 냉전과 진영 간 대결 체제를 거치며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로 수렴되는 듯 보였던 세계사의 전개는 어디로 방향을 틀 것인지 매우 불확실한 상태가 되었다. 시장 근본주의와 국가주의적 전체주의가 경합하던 ‘극단의 시대’를 뚫고 사회적 조정 시장경제와 합의 민주주의에 바탕한 보편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수립한 북유럽 국가들도 다가오는 ‘슈퍼’불확실성의 시대에 다각도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서구 사이에서 20세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은 핀란드에서는 2017년 독립 100주년과 2018년 내전 100주년을 맞아 과거의 성찰과 미래의 설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2018년, 유럽과 세계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의 도전, 슈퍼파워들의 귀환과 권력정치(real politics)의 득세,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운위되는 고도 과학기술과 정보 자본주의 시대에 새로운 정치적 대안은 어떻게 가능한가?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어떤 사회적, 민주적 혁신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가? 유럽이 당면한 도전과 변화는 한국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향후 필자가 쓰는 칼럼들은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고정된 것은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후기) 현대성의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특정 국가나 지역을 하나의 고정된 모델로 간주하고 이를 본받자는 관습적 접근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북)유럽도 한국도 전환기적 시대 변화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우리가 발딛고 선 삶의 현실과 맥락에 대한 치열한 성찰, 현실 너머의 새로운 사회를 전망할 수 있는 정치적, 정책적 상상력, 그리고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자기조직화와 연대가 절실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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