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in 한국] 최악의 주거 환경 속 동자동 쪽방 주민의 삶
상태바
[희망 in 한국] 최악의 주거 환경 속 동자동 쪽방 주민의 삶
  • 2024.04.23 10:00
  • by 김영국 위원장(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 동자동 쪽방건물 내부모습. ⓒ 동자동사랑방
▲ 동자동 쪽방건물 내부모습. ⓒ 동자동사랑방

서울역 건너편에 있는 동자동 쪽방촌은 전국 최대의 쪽방촌으로 현재 9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의 옛 이름은 도동 1번지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민 판자촌이었고, 이후 서울역 앞에 밀집되어 있던 여인숙을 중심으로 쪽방촌이 형성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착할 곳을 찾던 홈리스들이 대거 유입됐으며 현재도 동자동 쪽방촌은 홈리스들의 정착지가 되고 있다.

쪽방촌 건물 대부분이 50년 이상 된 노후한 건물로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보다 못한 주거 환경을 가져 '최악의 주거'로 불린다. 쪽방촌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쪽방촌의 노후하고 비위생적인 주거 환경을 보며,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복도는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둡고, 복도를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있는 방들은 대부분 1.5평 남짓하다. 그보다 작은 방들도 많다. 여러 명의 주민이 한 개의 샤워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취사장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취사장이 없는 곳이 더 많아 샤워실에서 식자재를 씻어 준비한 후 방에서 가스버너를 이용해 식사를 준비한다. 

쪽방촌 건물주들은 쪽방 세입자를 관리인으로 두고 건물을 관리한다. 관리인은 월세를 받아 건물주에게 전달하거나 빈방에 세입자를 채우기 위해 신경 쓸 뿐 주거 환경을 관리하진 않는다. 쪽방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 보수가 시급하고 관리가 필요하지만, 건물주도 관리인도 신경 쓰지 않아 주민들은 악취 나고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 살고 있다. 누수로 천장이 내려앉아 수리를 요구해도, 한겨울에 난방을 요구해도 건물주들은 개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겨울, 쪽방촌 어느 건물에서는 보일러가 고장나서 건물주에게 수리를 요구했더니 알아서 고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그 건물에 있던 주민들은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한겨울을 나야 했다.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에서 눈만 내밀고 있어도 추워서 뼈마디가 시리다고 했다.

또 어느 건물에서는 수도가 동파되어 계단으로 물이 넘쳤고, 그 물은 한파에 그대로 얼어붙어 주민들은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해당 건물은 평소에도 소유주가 세입자들의 생활 환경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곳이었다. 계단이 층층이 얼어붙어 빙판이 되어 버린 모습이 언론에 보도된 후에야 용산구청과 서울역 쪽방 상담소에서 나와 계단에 모래를 뿌리고 얼음을 깨트렸다. 그제야 주민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봄이 시작되면 쪽방의 닫혔던 방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환기가 되지 않는 쪽방은 더워지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기온이 올라갈수록 방에 있을 수 없게 되어 한여름은 40도가 넘는 방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폭염 속의 밖이 더 시원해 자발적인 노숙을 하게 된다.

ⓒ동자동사랑방
ⓒ동자동사랑방

최근 몇 년 사이 기후위기 문제가 대두되면서 쪽방의 열악한 주거가 주목받는데, 최악의 주거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는 도시 빈민의 삶이 기후위기로 더 위험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쪽방 주민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해 질문한다면 주민들은 "쪽방은 원래 이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재난이 일상이 된 환경에 익숙해져 기후위기로 인해 악화되는 문제는 불편함이 조금 더 더해지는 것일 뿐 새삼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쪽방의 열악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계획한 것이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이하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다. 쪽방 주민들은 정부가 수십 년 동안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아 쪽방이 최악의 주거지로 전락했으니, 정부가 나서서 쪽방 문제를 해결하라고 끊임없이 촉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정부는 2020년 1월 영등포 쪽방촌에 대한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고, 이후 대전 지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2021년 2월 5일 전국 최대의 쪽방촌인 동자동 대상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에는 개발 구역 안의 쪽방 및 일반주택 세입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1,250호와 공공 분양 200호, 민간분양 960호를 포함하여 총 2,41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선(先)이주 선(善)순환의 이주 대책이 포함돼, 개발하는 동안에도 주민들이 개발 구역 안에 지어진 이주단지에서 살 수 있다. 살던 곳을 떠나지 않아도 되니 주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토지·건물주들은 개발발표 즉시 극렬히 반대하며 저항했다. 공공개발을 반대하는 의미의 빨간 깃발을 건물마다 꽂아 동네를 을씨년스럽게 만들었고 '사유재산 강탈하는 공공주택사업 결사반대',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 '제2의 용산참사 피바람 각오하라!'와 같은 내용의 대형 현수막들을 개발 구역 곳곳에 걸었다.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토지·건물주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국토교통부는 의견을 청취한다며 2021년 12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민간개발안을 검토했지만, 공공개발 대비 공공성과 실현 가능성이 미흡하여 수용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쪽방 주민들은 각자의 사정 속에 처지가 비슷한 이웃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수십 년을 살아 왔다. 이들이 쪽방촌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건물주들은 쪽방 주민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세입자의 권리를 묵살했다. 정부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발표했을 때, 쪽방촌 주민들은 환호하며 이제야 지긋지긋한 쪽방을 벗어날 수 있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토지·건물주들이 개발로 발생하는 막대한 이윤을 챙기기 위해 민간개발을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여, 발표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그동안 쪽방이었던 건물이 민간개발되는 과정에서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것을 목격하거나 직접 경험했다. 그렇기에 공공에서 주거를 보장하는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주민들에게 집다운 집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발표 초기,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토지·건물주 일부는 국민의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별위원회와 가진 현장간담회에서 '서울 한복판 노른자 땅에 왜 공공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냐'며 성토했다. 그들에게 서울 중심지는 자신들만이 살아야 하는 곳이었고, 그곳에 공공 임대아파트가 지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발표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표면적으로는 진전된 것이 없다. 지난해 12월, 주민 대표와 국토부 담당자와 만났던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던 것은 「공공주택특별법」이 개정돼 실거주하지 않아도 입주권을 줄 수 있게 됐고, 토지·건물주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보상과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체가 모인 상태에서 설명하고 싶지만, 지난해 2월 24일 있었던 '공공주택사업 제도개선 주민설명회' 때 토지·건물주들이 훼방을 놓아 어쩔 수 없이 개별 연락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런 설명을 들으며 사업이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가 있었다. 현 용산구 국회의원이자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자인 여당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용산구 지역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에 관해, 지역주민 다수가 반대한다며 "최근 민간인 주도로 개발하더라도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법이 통과돼서 민간개발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했다. 지난 1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간 제안 도심복합사업'을 두고 한 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시행하는 공공 도심복합사업을 신탁사,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 민간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며, 토지주의 직접시행은 20인 이내인 경우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민간 제안 도심복합사업 모델에서는 이러한 민간개발 사업에 대해 심의 기간 단축, 용적률 완화 등 각종 특례를 준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문제는 막대한 이윤을 챙기기 위한 민간기업 주도의 개발에서 시작되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국민을 위해 집을 짓지 않고 돈벌이, 이윤 위해 집을 짓는 민간기업을 지원한 결과로 국민이 집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규제를 완화하며 민간개발을 돕고 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발표 이후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쪽방 토지·건물주들은 쪽방 주민 수를 줄이기 위해 서울시에 쪽방 지정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세입자를 내보낸 후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지 않고 건물을 비워 두고 있다. 전입 신고도 못 하게 한다. 쪽방 주민 수가 적을수록 자신들이 주도하는 개발계획에서 주민들에 대한 대책을 축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쪽방에 살던 주민들은 또 다른 쪽방으로 쫓겨나다시피 이사하고, 쪽방 주민에서 제외되어 서울시가 쪽방 주민에게 제공하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에 부닥치게 됐지만, 서울시도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동자동사랑방
ⓒ동자동사랑방

동자동 주민들은 쪽방을 벗어나 집 같은 집에 살게 됐다는 희망을 갖게 해놓고는, 민간개발을 검토하며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하는 정부에 분노한다. 토지·건물주들은 민간 제안 도심복합사업으로 또다시 민간개발을 도모하고 있고, 주민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힘든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발표 후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행여나 무산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한 마음이 커진다. 주민 대부분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다 보니, 개발사업 발표 후 3년이 지나는 동안 90명이 세상을 떠났다. 집 같은 집에서 살아 보게 됐다며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때까지 살아있겠냐고 걱정했던 마음이 현실이 됐고, 주민들은 죽어서야 쪽방을 떠날 수 있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최악의 주거로 불리는 쪽방의 비인간적인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표한 정책 사업이다. 이것이 민간개발로 무산된다면 도시 빈민들을 위한 주거복지를 외면하는 행태이고,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며 국민의 주거 문제를 외면하는 행위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된다는 큰 의미가 있다. 이와 더불어 공급 전체의 60%를 공공임대와 공공분양으로 공급한다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토부는 하루빨리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비인간적인 주거환경에 있는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에서 살 수 있도록 하며, 민간개발로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민의 불안한 주거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국 위원장(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편집자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