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in 한국] "주거는 인권이다"…주거권 밖에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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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in 한국] "주거는 인권이다"…주거권 밖에 있는 사람들
  • 2024.04.23 10:00
  • by 이희숙 변호사(재단법인 동천)

■ 주거빈곤 현안 

세계 10위 경제대국, 서울 집값 평균 11억,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고 있지만 주거빈곤 현실은 참혹하다. 

태어나 보니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서 자라야 하는 주거빈곤아동이 5%에 이른다. 5%의 아동은 곰팡이가 피어 있고 천장이 무너진 집, 재래식 화장실을 쓰며 살고 있으며, 건강과 신체 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KBS 보도에 따르면 주거빈곤가구의 9.5%가 아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답했는데, 이는 '주거빈곤' 상태가 아닌 가구보다 4배 높은 수치이다. 주거빈곤아동은 주의력 저하, 감정 기복 등 정서적 어려움도 호소하고 있다. 열악한 주거 환경은 학업 성취도와 사회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주거권 보장 캠페인 '집다운 집으로' 광고 갈무리.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주거권 보장 캠페인 '집다운 집으로' 광고 갈무리.

정부는 낮은 출생률을 걱정하며 출산 장려를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태어난 아이들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는 등한시하는 것이다.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주거약자법) 대상에 아동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아동복지법」에는 아동 주거권 증진에 관한 규정이 없다. 민간 단체에서 빈곤 아동의 주거 환경 개선을 돕고 있지만 참혹한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실정이다.

아동 주거권 문제는 가정 밖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진다.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2.9%(2021년 청소년 통계)에 이르는데,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생존형 가출이 주요 사유다. 이들이 쉼터에서 퇴소하여 거리로 나오게 되는 경우 18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복지법) 대상에서 제외된다. 「청소년복지지원법」은 쉼터 퇴소 청소년에 대한 주거 지원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청년 주거권 문제는 더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서울 지역 1인 청년가구 중 37%가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집이나 지하(반지하)·옥상(옥탑)·고시원 등 비주택에 거주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어 충격을 준 바 있다(2018, 통계청). 전국 전체 청년 가구 중 주거빈곤상태에 있는 가구는 17.6%인 점과 비교할 때 서울 지역이 특히 심각한데, 지하, 옥상, 고시원에 사는 청년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와 서울시는 청년을 위한 공공임대를 늘리고 전세 대출을 확대했으나, 37%에 이르는 청년 주거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전세대출은 전세사기와 맞물려 감당할 수 없는 빚까지 더하기도 했다. 전세사기의 공포로 전세 수요가 월세로 몰려 월세 부담 또한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서울 연립다세대(60㎡ 이하) 평균 전월세 실거래가는 2022년 한 해 동안 10% 이상 상승했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3). 전세사기가 무서워 차라리 '지옥고'(지하·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의 줄임말)에서 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주거빈곤은 노년층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비주택 주민들을 조사한 결과, 전체 가구 중 65세 이상 고령가구가 42.8%에 달했다. 1평 남짓하는 참혹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동자동 쪽방촌에는 65세 이상 독거노인 비율이 35%에 달한다.

■ 공공임대주택 공급 현황 및 문제점

▲ 'LH 장기공공주택 재고 현황 분석결과' 자료 갈무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LH 장기공공주택 재고 현황 분석결과' 자료 갈무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부는 위와 같은 주거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온 것일까.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8%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9위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공급에도 불구하고 주거빈곤이 지속되고 있다면, 재고율을 자찬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 발표 공공임대주택 중에는 10년 임대나 분양전환 임대 등 장기공공임대로 보기 어려운 주택이 포함돼 있다. 또 행복주택 등으로 공급 대상 범위가 확대된 이면에 취약계층에 대한 공급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있어 정부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의 의지가 부족한 점도 문제다. 지난해 주택도시기금 예산은 105조 원에 이르지만 임대주택지원 융자는 11조 8천억 원, 임대주택지원 출자는 5조 7천억 원에 불과하다. 반면 기금의 여유자금운용은 27조 원에 이른다.

2023년도 국민임대주택, 영구임대주택, 행복주택, 통합공공임대주택 융자 관련 예산은 2022년보다 6,719억 원 감소했고, 출자 예산은 2,254억 원 감소했다. 다가구매입임대주택 융자 및 출자 금액은 2022년 대비 44%인 3조 원가량이 감소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2024년도에도 다가구매입임대주택, 통합공공임대주택 등에 관련한 예산은 감소했다. 이와 같은 예산 감축에 따라 주거취약계층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꿈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높은 사회주택 비율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43%), 네덜란드 암스테르담(42%), 영국 런던(21%), 프랑스 파리(19%)가 보여주는 수치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꿈의 수치다. 

■ 주거빈곤 해결 과제

▲ LH가 2016~2020년 서울·경기 지역에서 사들인 매입임대 주택의 유형별 현황. 2021년 국토위 국감자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LH가 2016~2020년 서울·경기 지역에서 사들인 매입임대 주택의 유형별 현황. 2021년 국토위 국감자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부는 저출생 대응 정책으로 출산가구에 대해 금리 혜택을 강화한 구입·전세자금 대출을 강화하고, 공공분양주택 공급 확대를 통해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구입·전세자금 대출 확대가 집값이나 전세금 상승을 이끌어 실질적으로 이자 부담만 증가시키지 않을지 걱정이다. 공공분양주택 공급 확대 역시 내 집 마련을 꿈꾸기도 어려운 취약계층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로또 당첨'과 같은 청약의 행운을 얻지 못한 대다수 사람은 희망고문을 당하며 기다리는 사이, 질병이나 실업 등으로 순식간에 주거빈곤 상태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공공분양, 분양전환 공공임대 모두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충분한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우선해야 한다. 2024년도 주택도시기금은 자체 재원 및 이자 수입의 증가가 예상됨에도 지난해 예산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정부 내부 수입을 1조 6,000억 원가량 감축한 결과다. 주택 문제의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2024년도 국토교통부 예산 23조 6,500억 원 중 주택·기초생활보장 예산은 2조 9,000여억 원에 불과하다. 우선 주택도시기금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기금의 안정성을 고려해 정부의 지속적인 예산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

공급 방식에 있어서 대규모 택지 개발을 통한 대단지 공급은 한계에 이르렀다. 주거빈곤 문제가 심각한 서울 지역을 보면, 개발할 택지가 부족할 뿐 아니라 공공임대주택 주민에 대한 편견과 배제 문제도 심각하다. 지역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부족한 주택 물량을 신속하게 채우기 위해서 매입임대 방식이 확대돼야 한다. 얼마 전 LH도 올해 매입임대주택을 3만 7,000채 공급하고 그중 70%를 수도권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매입임대주택은 비영리단체, 협동조합 등을 위탁관리의 주체로 삼고 사회서비스, 공동체 활동 등을 결합한 형태로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취약계층의 주거권이 증진되지는 않는다. 1인 가구 노인, 청년 등이 고립되지 않도록 주거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고, 각종 사회서비스를 연계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주거복지를 결합한 주택이 공급되려면 LH나 주택관리공단보다는 주거복지 분야 비영리단체나 주민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이 위탁관리를 맡는 것이 효과적이다. 

■ 법령 개정 방향 

참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헌법에 주거권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주거를 소비재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권의 본질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나아갈 때, 임대차 관계가 재정립되고 주거빈곤 해소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주거기본법」상 최저주거기준을 강화하고, 미달 가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비영리단체나 협동조합 등의 장기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및 「공공주택특별법」 등의 개정, 아동·청소년의 주거권 보호를 위한 법 개정 등 산적한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주거는 인권이다. 곰팡이가 가득한 지하방에서 꿈을 잃어가는 아이들, 쪽방에서 고시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어르신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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