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in 한국] 존 로크와 '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의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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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in 한국] 존 로크와 '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의 정치사상
2024년 희망한국 만들기 수요세미나: 자유와 공정의 사상①
  • 2024.01.16 10:00
  • by 문지영(서강대학교 글로컬사회문화연구소)
▲존 로크. 고드프리 넬러 作.
▲ 존 로크. 고드프리 넬러 作.

Ⅰ. 존 로크와 '통치에 관한 두 편의 논고'

로크는 1632년 8월 29일 영국의 남서쪽 서머싯 주에 속한 링턴에서 태어났다. 청교도적 배경의 젠트리 집안에서 자랐고, 웨스트민스터 스쿨 졸업 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고전·철학·수사학 등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하지만 당대 자연과학이 거둔 새로운 경험적 방법의 성공에 감명을 받아 자연과학, 특히 의학으로 학문적 관심을 넓히고 의료업 면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이렇듯 로크는 17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신' 지식인이라 불릴 만한 학자다. 하지만 지식의 진보에 대한 그의 관심은 현실과 거리를 두고 혹은 현실과 적절히 타협하며 상아탑에서 자신의 지위에 안주하게 하는 대신, 영국의 근대 혁명 현장으로 그를 이끌었다. 로크는 후일 '휘그'로 불리게 되는 반(反)왕당파 세력의 핵심 이론가이자 정치 전략가로 당대 '명예혁명'(명예혁명은 그것이 가리키는 일단의 사건 또는 사태에 대한 온전히 합의된 명칭이 아니다. 명칭 자체가 그 사건 혹은 사태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까지 주로 이 명칭이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 글에서 역시 명예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한다)의 맥락에 깊숙이 개입했고, 시대를 넘어 자유주의·의회민주주의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캐롤라이나 기초헌법 제·개정에 참여하는 등 잉글랜드 정부의 아메리카 식민지 정책 실무자 및 입법가로 활약했으며, 토지보다 인간의 노동에 초점을 맞춰 국가의 정치·경제적 기반과 국제 경제 질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경제·무역 전문가로서 잉글랜드의 세제 및 통화 개혁을 위한 하원위원회 위원·고문, 상무부 이사 등 공직을 맡기도 했다.

로크가 죽음을 맞기 전 4년 간 지낸 곳은 영국의 남동쪽 에식스 주에 있는 작은 마을 오츠의 친구 부부 집이었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 집을 떠난 뒤로 그는 자기 소유의 일정한 거처 없이 여러 곳을 오가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소유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우면서도 놀랍다. 현재 카탈로그가 정리되어 있는 책만 해도 3,641권에 이르는데, 인간의 삶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얼마나 폭넓었는지, 그가 얼마나 성실히 연구하며 자신의 앎을 실천으로 연결하려 했는지 말해주는 기록이자 자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704년 10월 28일 여러 친구들의 애도 속에 죽음을 맞은 로크의 무덤은 에식스 주 하이 레이버에 있다.
 

▲ 로메인 드 후그의 '윌리엄 3세의 잉글랜드 상륙'(Arrival of William III of Orange in England). 'History of the World, Volume VII' 스캔본.
▲ 로메인 드 후그의 '윌리엄 3세의 잉글랜드 상륙'(Arrival of William III of Orange in England). 'History of the World, Volume VII' 스캔본.

'통치에 관한 두 편의 논고'는 잉글랜드에서 명예혁명이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의 즉위로 결말이 난 뒤 몇 달 지나지 않은 1689년 11월에 출간됐다. 그래서 상당히 오랫동안 로크가 그 책을 집필한 동기는 혁명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단의 로크 연구자들이 방대한 역사적 자료들을 추적·재구성하여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 책의 초고는 적어도 1679~83년 사이에 집필이 완료됐다. 잉글랜드 역사에서 이 시기는 요크공 제임스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토리와 휘그 간의 갈등이 극심했던 시기로, 휘그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한 사람이었던 로크는 찰스 2세와 (장차 왕위 계승이 유력시되던) 제임스가 지향하는 절대왕권과 그 이론적 기반인 왕권신수설에 반격을 가하면서 국가 권력과 정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필요를 느꼈다.

요컨대, '통치에 관한 두 편의 논고'는 근대 자유주의적 국가를 위한 혁명을 추동하고 지지하려는 목적을 지닌 것이었다. 이 저서의 영향력으로 치자면, 명예혁명 후의 영국 현실은 '통치에 관한 두 편의 논고'에 대한 이해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해질 정도다. 미국의 독립혁명과 건국의 정치적 이념 또한 로크의 사상에 크게 빚지고 있다. 영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적 근대가 '표준'으로 부과되는 세상에서 로크와 그의 저서는 중요한 탐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에서 '통치에 관한 두 편의 논고'로 번역한 'Two Treatises of Government'는 시기를 달리하여 쓰인 두 개의 긴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논문에 로크 자신이 붙인 제목은 '로버트 필머 경 및 그 추종자들의 그릇된 원리와 근거가 발각되어 뒤집히다'인데, 당대 왕권신수설의 대표적 옹호자였던 필머의 논변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런 만큼 내용이 상당히 시의성을 띤 것이어서 명예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는 로크 당대에도 이미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반면에 두 번째 논문은 명예혁명을 정점으로 하는 영국의 역사적 격변을 이끌어내고 그 성격을 특징지은 이념적 토대를 대변하는 저작이자 '최초의 자유주의'를 그려내는 텍스트로서 오늘날까지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그래서 '2024년 희망한국 만들기 수요세미나: 자유와 공정의 사상'을 통해 진행된 로크 강좌도 '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이하 '두 번째 논고'. 원문 인용은 관행에 따라 해당 절의 번호-§-를 표기)의 정치사상을 주로 다룬다.

Ⅱ. '두 번째 논고'의 정치사상과 자유주의

흔히 로크는 자유주의의 기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로크는 '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아직 만들어지기도 전에 활동했던 사상가이므로 스스로를 자유주의와 연관시킨 적이 없고, 자신이 장차 자유주의의 시조가 되리라는 기대 또한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인물들을 몇 명 떠올려 보기만 하면, 그들 모두와 로크를 연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예컨대, 몽테스키외, 아담 스미스, 제퍼슨, 콩스탕, 바스티아, 토크빌, 존 스튜어트 밀, 그린, 뒤르켐, 듀이, 베버, 케인즈에서 하이예크와 벌린, 노직, 롤즈 등에 이르는 자유주의자들의 면면은 그들 공통의 조상으로서 로크의 초상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매우 난감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로크를 '최초의 자유주의자'로 인정하는 일은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 논고'에서 자유주의를 읽어내고 또 구성·재구성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 자유주의를 둘러싼 담론 투쟁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글에서는 로크적 자유주의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몇몇 개념을 중심으로 대강의 윤곽을 그려보는 데 만족하기로 한다.

출간 무렵에 '첫 번째 논고'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따로 작성되어 삽입된 제1장 서론에서 로크는 자기 논의의 목적이 왕권신수설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정부·정치권력의 기원을 알아내는 데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곧이어 제2장에서는 자연 상태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며, 정치사회의 시작과 정부의 목적에 관한 논의는 8~9장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앞서 언급한 '통치에 관한 두 편의 논고' 집필 동기를 감안할 때, 로크의 당면한 관심은 왕권신수설 대신 인민주권론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국가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런 아이디어의 실현을 설득력 있게 호소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 상태와 자연 상태의 인간에 대한 앞선 논의는 새로운 국가 모델, 정치권력의 정당한 기원과 관련하여 로크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장의 전제 내지 근거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로크적 자유주의의 키워드라 할 '자유'와 '평등' 개념도 이 자연 상태 논의에서 제시된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오직 "자연법의 테두리 내에서 자신들이 알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하고 소유물과 인신을 처분"를 누리는 존재다(§4). 다시 말해, 자연 상태의 '자유로운' 인간은 '자기지배'(self-dominion) 또는 '자기소유'(self-ownership)를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이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한 지배권을 갖는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사는 자연 상태가 '방종의 상태'도 '전쟁 상태'도 아닐 수 있는 까닭은, 자연법이 자연 상태의 모든 인간을 구속하며 인간은 "온 인류에게, 모두가 평등하고 독립적이므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지닌 생명, 건강, 자유, 혹은 소유물들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가르"치는 그 법을 자신의 이성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6). 로크에게 있어 인간의 자유는 그가 이성을 갖는다는 데 근거하며, 자유와 이성 모두 인간에게 '본래적'인 것이다.

한편, 이성과 자유를 본성으로 하는 인간들의 자연 상태는 '평등의 상태'이기도 하다. 이때 '평등'이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권력과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그 점에서 역시 인간에게 '본래적'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로크는 인간의 자연적 평등이 모든 종류의 평등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나이나 덕성, 혹은 어떤 부분의 우수성이나 공적(merit)에 따라 사람들 간에 일정한 위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출생이나 이해관계, 보은, 존경심 등도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이유로 인정된다. 그런데 로크에 따르면 이런 위계나 복종은 그가 말하는 자연 상태의 평등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의 자연적 평등이란 '자연적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이기 때문으로 설명되는데, 여기서 다시 '평등'은 "모든 사람들이 관할권이나 지배권의 측면에서 서로에 대해 누리는 평등"으로 규정된다(§54). 결국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이성-자유-평등은 이렇듯 '권리' 개념을 중심으로 긴밀히 연결된다.

이성적 피조물로서의 인간을 자연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이제 로크는 '소유'에 대한 대담한 논의로 나아간다. 로크에게 있어 '소유'는 "인간들이 자신의 노동에 의해 각자 자기가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자연의 사물들을 자기 것으로 전유할 권리"로 규정된다. 이때 '자연'은 인류에게 공유물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런 해석은 (토지를 포함하는) 자연과 자연의 모든 산물이 원칙적으로 왕의 것이며 왕의 자비와 시혜에 의해 접근이 허용되거나 사적 소유가 발생한다고 보는 지배 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노동'이 소유의 권리를 발생시킨다고 주장하는 로크는 또한 인간들 사이에서 "근면의 정도가 상이함에 따라" 소유물의 비율에 차이가 발생하게 되며, 화폐의 발명을 통해 "소유물을 지속시키고 확대할 기회"가 생겨나게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논의에서 소유의 불평등이나 토지의 불균형한 배분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로크가 보기에 "한 인간이 자기가 그 산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토지를 공정하게 보유해도 되는 방식"이 현실에서 통용되는 까닭은 사람들이 "사회의 경계 밖에서, 게다가 협약도 없이 단지 금과 은에 가치를 부여하고 화폐 사용에 암묵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50).

이 세상은 애초에 인류에게 공동으로 속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 소유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하느님이 세상을 인간의 보존과 삶의 유익을 위해 부여한 탓이다. 그러므로 로크에게 있어 소유의 규칙 및 한계는 자명하다. 즉, "모든 인간이 자기가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가져야" 하며(§36), "적어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충분히 그리고 똑같이 좋은 것이 공유물로 남아 있"어야 한다(§27). 로크는 자기가 사용할 수 있을 만큼보다 더 많이 쌓아 두는 것은 부정직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며 다른 사람의 몫의 침해하는 범죄에 다름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헛된 야망과 소유에 대한 저주받은 사랑, 즉 사악한 정욕이 인간들의 마음을 타락시켜 참된 권력과 명예에 대해 오인하게 만들기 전", 그러니까 화폐를 발명해서 사용하는 데 합의하기 이전 시기를 '황금시대'(§111)로 보는 로크의 입장을 고려하면, 심각한 소유물의 불평등은 정치사회를 수립하기로 협약을 맺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정부 하에서 시정 또는 완화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는 "정부 아래서는 법률이 소유의 권리를 규제하고 토지 소유물이 실정적 헌법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50).

정치사회와 정부의 시작 및 목적에 관한 논의 역시 "인간은 자연에 의해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이어서, 아무도 그 자신의 동의 없이는 이 상태로부터 내몰려 타인의 정치권력에 종속될 수 없다"(§95)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로크에 따르면, "정부의 모든 평화로운 시작"은 '인민의 동의'에서 말미암으며(§112), 정치권력의 기원도 "오직 공동체를 구성하는 자들의 협약과 합의 그리고 상호 동의에 있다"(§171). 로크가 제시하는 정부의 목적이 그 기원과 떨어질 수 없이 연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즉, 정부가 존재하는 목적은 사회구성원 개인의 '소유-생명, 자유, 자산-의 보존 및 평화롭고 안전한 향유'인데, 이는 맥락에 따라 '공동체의 좋음'. '인류의 좋음'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로크가 구상하는 국가에서 최고 권력은 '입법 권력'이다. 그런데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의 위력이 어떻게 사용될지 지시할 권리를 갖는 권력"으로 정의되는 이 권력은 "특정 목적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단지 신탁 권력일 뿐"이다(§143, 149). 로크는 최고 집행권자의 '대권'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법의 규정 없이, 때로는 법에 반해서까지도 공공선을 위해 재량에 따라 행동하는 권력"으로 규정(§160)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행 권력이 입법 권력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156)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권'이란 "좋은 일을 할 권력"이어야 한다고 못 박는다(§164). 즉, 입법 권력이든 집행 권력 및 대권이든 그 목적은 '공공선'과 '공익', '인민의 좋음'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권력 행사의 최대한도 역시 그런 목적에 구애된다.

따라서 입법부나 군주 둘 중 어느 한쪽이 자신들의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 경우 인민은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자연적으로 자유로우며 평등한 인간들이 자신의 개별적인 자연권을 정부에 위임한 이유는 공공선과 소유의 보존을 위함이었으므로, 그런 목적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 그렇게 행사하려는 계획을 품기만 해도 정부 해체 사유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 권력이 "인민의 평화, 안녕, 공공선"이라는 목적(§131)을 위반할 경우 그것을 "폐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최고 권력은 인민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고 봄(§149)으로써, 나아가 "군주나 입법부가 그들의 신탁과 상반되게 행동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재판관 역시 '인민'이라고 주장(§240)함으로써 로크는 자유주의적 사유를 토대로 한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밑그림을 그려낸다.

ⓒ후마니타스
ⓒ후마니타스

Ⅲ. '최초의 자유주의자' 로크에게서 배우다

'두 번째 논고'를 통해 전개되는 로크의 정치사상이 '최초의 자유주의'를 보여준다는 말은 아마도 로크 이후 30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등장한 여러 갈래의 자유주의들을 관통하는 자유주의 특유의 가치 내지 원리를 이 저작이 잘 드러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달리 말해, 로크가 자유주의의 기원이라는 평가는 동시에 그의 정치사상이 드러내는 복합성·다면성을 시사한다. 그만큼 '두 번째 논고'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셈이다. 이 책이 오늘날까지 끝없는 탐구와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까닭도 상당 부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논고'를 통해 만나는 '최초의 자유주의자' 로크에 대한 다양하고 때로 상반되는 평가들을 후대의 연구자들이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한 탓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로크적 자유주의가 그 자체로 반(反)절대주의, 자유지상주의, 경제적 평등주의, 개인주의, 공동체주의, 제국주의, 유토피아의 요소를 제각각 품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로 인해 로크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로크의 정치사상은 무엇이 자유주의의 본질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계승·발전되었는지를 추적·논의하는 과정에서 여러 얼굴로 소환되며 끊임없이 해석·재해석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두 번째 논고'를 읽는 한국의 독자들은 이 책에서 접하는 로크의 언어가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을 구성하고 또 평가하는 우리의 언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로크가 역설하며 추구하는 정부, 그가 제안하는 국가와 시민 개인의 관계는 오늘날 우리도 여전히 바라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혹은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폐단이 정녕 로크의 논변에서 기원했으며 로크의 논변을 통해 정당화되어 온 것이라고 확신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사회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든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든 간에, 로크의 사유를 찬찬히 따라가 보는 일은 틀림없이 의미 있으리라 믿는다. '두 번째 논고'는 양쪽 모두에 자신의 사유와 실천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반성해 볼 수 있는 질문을 줄 것이고, 또 답을 찾아보게 이끌 것이다. 나아가 양쪽이 함께 공유할 만한 자유주의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댈 터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논고'의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현실이 로크적 자유주의의 이상과 상당히 어긋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반대로 생각해서 로크를 찬양하거나 혹은 경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로크를 읽고 서로 이해한 바를 나누며 더 나은 미래를 같이 상상할 기회를 꿈꾼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심을 거두지 않는 한, 그런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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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영(서강대학교 글로컬사회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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