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x공정무역] 공정여행도 윤리적 소비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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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x공정무역] 공정여행도 윤리적 소비의 발걸음
  • 2018.12.19 20:47
  • by 정혜연(관악iCOOP생협)

여행과 무역이 공정해 지면 어떤일들이 일어날까?

여행이 공정해 지면 우리가 쓰는 돈이 그 지역과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여행, 숲을 지켜내는 여행, 사라져가는 동물들이 살아나는 여행,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경험하는 여행, 쓰고 버리는 소비가 아닌 관계의 여행을 할 수 있다. 

무역 공정해 지면 기존 관행무역 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불이익을 받고있는 생산자와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을 통해 거래하고, 일상적적인 소비로 빈곤해결 뿐 아니라 환경, 인권, 난민, 불평등, 지속가능한 발전 등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공정한 여행과 무역이 만나면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f(공정여행x 공정무역)은 어떤 점들을 연결하는 선을 그래 낼 수 있을까? 여행사, 여행자, 현지인을 매개변수로 필리핀 파나이섬 안티케주가 접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떤 방정식을 구했는지 살펴보자.

 

2012년 1월 15개월 된 둘째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가끔 보던 <KBS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필리핀 파나이섬 안티케에 세워진 마스코바도 공장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공정여행을 통해 다시 이 마스코바도 공장과 조우하게 되었다.

오후 비행기를 타고 4시간여를 날아 필리핀 칼리보 공항에 도착했다. 칼리보 공항은 마치 시골 버스 정류장처럼 아담했다. 이동하기 늦은 시간이라 하룻밤 휴식을 취하고자 칼리보 시내의 콘도텔에 갔다. 호텔 로비에 아기자기하고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음날 6시,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근처 공원을 산책을 했다. 아직 11월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도 커다란 크리스마스 조형물 제작이 한창이었다. 필리핀에서는 '일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쓴다'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배경으로 호텔 로비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우리는 마스코바도 공장이 있는 안티케로 향했다.

 

 

차로 3시간 30분 정도 달리니 논과 사탕수수 밭 사이에 지어진 빨간 지붕의 마스코바도 공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그렸던 공장이 보이자 어제까지도 아무렇지도 않던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안티케 공정무역 센터(Antique Fair Trade Center, AFTC) 매니저 엘리자베스와 조합원들이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간단한 인사 후에 마스코바도 공장 옆에 있는 우리의 숙소, 커뮤니티 센터로 이동해 짐을 풀었다. 그리고, 마스코바도 설탕 만들기 체험을 하기 위해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센터에서 차로 10분쯤 이동하자 사탕수수 밭이 나왔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과 같이 정글을 헤치고 나아 갈 때 사용하는 기다란 칼이 손에 쥐어졌다. 잎과 줄기가 약간 갈색으로 된 사탕수수를 휘어 윗부분(이 부분을 잘 다듬어 씨눈이 옆으로 가도록 땅에 심으면 다시 자란다)을 먼저 잘라내었다.

윗부분을 잘라낸 나머지는 뿌리 가까이에서 칼로 단번에 내리쳐 잘라내는데 힘 조절이 쉽지 않았다. 방법을 알려주시던 마리오 씨가 사탕수수를 다듬어 맛을 보도록 해주셨다. 한입 베어무니 상큼하고 달큰한 즙이 나왔다. 한국에서 냉동된 사탕수수를 먹어보셨던분은 맛이 정말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센터로 돌아와서 수확한 사탕수수를 착즙기에 밀어 넣었다. 마스코바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계를 사용하는 유일한 단계였다. 착즙하고 난 사탕수수는 말려 마스코바도 설탕을 만드는 땔감으로 사용됐다. 사탕수수에서 착즙된 액체는 공장 벽과 바로 연결된 스테인레스 관을 따라 이동되어 필터로 한번 거른 후 커다란 스텐용기에 담겨졌다. 비슷한 스텐 통이 5개가 있었는데 이동하면서 점점 색깔이 진해지고 마침내 조청처럼 진득해지면 넓은 스텐 판으로 옮겨져 삽으로 바슬바슬해질 때까지 계속 저어준다고 한다. 공장안에서의 과정은 모두 사람의 손으로 진행되었다. 괜히 마스코바도가 ‘근육’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였다.

 

 

날씨도 더운데 선풍기 하나 없이 모자와 마스크, 작업복을 입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일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니 지난 여름 서울의 무더위보다 더하지 않을까 싶다. 공장 내부는 대부분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어 깨끗했고 생산한 마스코바도는 전량 아이쿱생협으로 공급되는데 한번 더 체에 걸러 곱게 만들어 보내진다.

공장 내부에서는 몇 가지 궁금한 내용에 대해 매니저 엘리자베스의 큰 아들인 프레디가 설명해줬다. 스무 살의 이 청년은 의사가 되려고 일로일로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한국말도 조금 알아서 어떻게 배웠냐고 물으니 드라마와 노래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필리핀의 주요 교통수단인 트라이시클을 타고 마을 탐방을 했다. 처음 타 본 트라이시클은 나름 놀이기구처럼 스릴이 있었다. 비포장된 길을 다니다 보니 바닥에 돌이 튀거나 할 때 정말 소리도 크고 진동이 커 모두들 소리를 지르곤 했다. 운전하는 아빠를 따라온 꼬마는 아빠 앞에서 헬멧도 안전벨트로 없이 의젓한 자세를 유지했는데 소리를 지르는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곤 했다.

학교와 시장 등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방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도마뱀이었다! 과거 호주에서 봤던 도마뱀은 작고 귀엽기라도 했는데 이 동네 도마뱀은 회색빛에 크기도 제법 커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레디는 물지 않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화장실에 더 큰 녀석이 나타나서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고 침대 여유가 있던 옆방으로 피난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세째 날, 센터에서 1시간 30분 차로 이동한 후 10여분 배를 타고 마라리손 섬에 놀러갔다. 물놀이와 산행 중 산행을 택한 나는 긴 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갔는데 배에서 타고 내릴 때 당황했다. 당연히 배가 접안할 수 있는 부두시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변에서 배까지 약간 물속을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평상시 내가 얼마나 편안함에 익숙해 있는지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마라리손 섬은 공정여행이 시작된 후 우리 팀이 처음 가는 곳이였다. 주로 현지인들이 가는 곳이라 외국인은 우리뿐인 것 같았다. 현지식을 파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단, 야채 반찬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필리핀에서는 기후 때문에 야채가 고기와 값이 비슷하거나 야채가 더 비싸다고 한다. 안티케 커뮤니티 센터에서 식사를 할 때는 우리를 위해 생야채를 많이 준비해 주셨다. 

현지 가이드(이곳에서 산행을 갈 때는 현지 가이드를 꼭 고용해야 한다) 두 분과 산행팀은 오리엔테이션에서 알려주신 인생샷을 찍으러 길을 걸어 올라갔다. 간간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랜만에 산행을 하니 조금 숨이 가쁘고 땀은 흘렀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정상(사실은 여러 꼭대기 중 하나)에 오르니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점프샷도 찍고 어제 사탕수수 베는 것을 알려주시던 마리오 씨와 사진을 찍었다. 비록 인생샷은 못 찍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맘껏 보고 올 수 있었다.

 

 

센터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못하는 영어로 리버티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버티는 엘리자베스의 큰딸이자, 어제 만난 프레디의 누나였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고 특수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동생이 넷인데 엄마가 가족을 위해 정말 많이 희생하셨다고 말하는 그녀가 역시 큰딸인 나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안티케 공정무역센터(Antique Fair Trade Center, AFTC) 매니저 엘리자베스와 동료들

 

돌아와 저녁 마을축제를 위해 김치전과 라면을 준비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코코넛 오일이나 팜유을 사용해서인지 함께 음식을 준비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유채유에 관심을 보였다. 그분은 일손을 돕기 위해 PFTC(Panay Fair Trade Center)에서 왔는데, 나중에 출중한 댄스실력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셨다. 

마을 분들이 몇 가지 음식을 가지고 오셨고 모두 함께 식사를 했다. 처음 만나는 마을 분들과 아이들은 김치전과 라면을 권하자 수줍어하시며 조금씩 맛을 보았다. 한국의 잡채와 비슷한, 야채가 적고 면이 아주 가는 음식이 있었는데 음식 이름은 잊었지만 맛은 정말 좋았다. 

식사 후에는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조합원 자녀들로 구성된 <마스코바도 키즈> 어린이들이 수줍고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었다. 중간 중간엔 마을 분들이 결성한 <마스코바도 원>, <마스코바도 보이즈>의 신나는 댄스도 이어졌다. 프레디와 방탄소년단 덕후인 우리 일행과의 콜라보레이션도 멋있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함께 강남스타일을 부르며 춤을 추었는데 첨엔 수줍어하던 아이들도 흥이 나서 어울렸다. 

 

마을축제/김치전과 선물들(챙겨 온 선물을 모아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많았다. 심지어 방탄소년단이 신어 유명해졌다던 한정판 운동화도 있었다)

 

여러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적절한 피로는 숙면을 도와주리라 기대했지만 반전이 있었으니 조용한 시골마을에 밤새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누가 저리도 노래를 열심히 부를까 궁금했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알고 보니 간밤의 파티를 위해 노래방 기기를 빌렸는데 오늘 반납하는 것이 아까워 동네 청년들이 공장에서 시쳇말로 밤새도록 노래로 뽕을 뽑으셨다고 한다. 역시 젊음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것인가 보다.

예정과 달리 우리는 의견을 모아 일찍 칼리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에 마을 분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이 들었다. 프레디는 웃으며 가지 말라고, 다음에 또 오라고 했지만 차마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아쉬움에 공장과 커뮤니티 센터 곳곳을 꼼꼼히 눈에 담았다.

칼리보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지역의 역사가 담긴 작은 박물관을 관람한 후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몰로 갔다. 며칠 동안 먹고 싶던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먹으며 고민 끝에 몇 가지 선물을 골랐다. 가격은 오히려 주전부리를 사며 들렀던 곳이나 박물관이 더 저렴했다.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했는데 공항의 전산이 다운되어서 수기로 수속이 진행되어 무려 한 시간 반을 서 있었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이런 돌발 상황은 여행의 좋은 추억으로 남곤 한다. 밤 비행기를 타고 불편하지만 열심히 졸다가 인천 공항에 내렸다.

 

칼리보 공원과 칼리보 박물관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생생한 경험들은 앞으로 진행하게될 공정무역 수업에서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국내 산지 체험을 다녀왔을 때처럼 비록 물리적 거리는 상당히 멀지만 마음의 거리는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다만 AFTC의 공동체는 마스코바도 생산을 통해 어떤 삶의 변화가 있었는지, 매해 어떤 발전을 하고 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부족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공정여행이 보통의 여행과 달리 원주민들의 삶에 직접 도움이 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가능하다면 다른 공정무역 산지도 공정여행으로 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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