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아닌 현실에서 만난 기본소득 실현된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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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아닌 현실에서 만난 기본소득 실현된 농촌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시행지, 연천군 청산면을 가다
청산면 주민들이 말하는 '농촌기본소득'
여성회 연천군 농업정책과 농업정책팀 팀장 인터뷰
  • 2022.11.09 13:23
  • by 노윤정 기자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지난 5월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란, 경기도가 도내 농촌 지역 중 대상지를 선정하여 향후 5년간 정기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해당 정책의 효과를 실증하는 사업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공감대 확산과 보편적 기본소득 실현에 기여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여 도농 간 소득격차를 완화하며, 농촌의 사회적 활력을 제고하여 지역의 소멸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농촌기본소득의 주요 내용은 ▲대상 지역의 모든 거주민에게(주민등록지 기준) ▲개인을 대상으로 ▲무조건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것. 이에 따라 도는 지난해 청산면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하고 청산면 주민들에게 지역화폐로 월 15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사업비는 경기도와 연천군이 7대 3 비율로 분담하며, 지급된 기본소득은 '경기지역화폐 가맹점 관리지침'에 따라 청산면 내에 있는 연 매출 10억 원 미만 사업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병원, 약국, 학원은 사용처 제한 예외 업종).

 

지난 5월,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주민들에게 처음으로 '농촌기본소득'이 지급됐다. 농가 단위가 아니라 농민 개인에게 현금(지역화폐)을 지급하는 국내 최초의 사례이자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이라는 5가지 기본소득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점에서 사업 설계 단계부터 관심을 받아 왔다. 첫 시도인 만큼 농민과 농촌 주민 당사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긴 숙의 과정을 거쳤고, 드디어 올해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농촌기본소득 지급이 시작된 지 약 5개월. 과연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연천군으로 향했다.

 

▲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시행 중인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라이프인
▲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시행 중인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라이프인

연천군은 농촌 지역이자 접경 지역이다. 여타 농촌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로 인해 가평군과 함께 도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으며, 접경 지역이라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등에 따라 다양한 규제를 받는다. 청산면은 그중에서도 특히 인구소멸 위기가 심각한 곳이다. 실제로 방문한 마을은 조용하고 한산했다. 평일 낮에 방문해서 그런지, 인적은 더욱 드물었다.

그렇게 한적한 길을 걷다가 청산면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 씨(가명)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씨도 청산면 주민으로서 농촌기본소득을 받고 있었다. 그에게 농촌기본소득을 어디에 사용하는지를 물으니 "기름도 넣고, 생필품도 사죠. 마을 사람들이 활용하기에 아주 좋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특히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효과를 더 크게 체감하는 듯 보였다.

"안 그래도 마을에 사람이 없으니 상권이 침체돼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더 어려웠잖아요. 그런데 마을에 돈이 들어오고 경제 활동이 일어나니까 너무 좋죠. 이 가게가 있는 자리도 몇 년 동안 비어 있던 자리였어요. 이렇게 새로운 가게가 생기니 건물주 입장에서는 세도 들어오고 얼마나 좋아요. 또, 이 지역에 편의점이 없었는데 여기 편의점도 생겼잖아요."

실제로 농촌기본소득 지급을 앞둔 시점인 올해 상반기에 청산면에서는 지역화폐 사용가맹점 12곳이 신규 등록했으며, 지급 시작 후에는 개점휴업 중이던 가게가 다시 장사를 시작한 사례도 있었다. 김 씨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시골에서는 작은 상점 하나 차리는 것도 겁난다고.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데 적어도 5년(농촌기본소득 지급 기간. -편집자 주-) 동안은 사람들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보장해 주잖아요. 또, 5년이 지난 뒤에 상황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까 이런 가게들도 생기는 거지."

김 씨는 이후로도 '농촌기본소득이 우리 지역에 얼마나 유익한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특별히 아쉬운 점은 없는 듯 보였다. 반면 농촌기본소득 사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 주민들도 있었다. 차양 그늘 아래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던 마을 어르신들은 농촌기본소득에 관해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주면 좋기는 하지. 그런데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언제 주는지, 받은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잘 몰라. 젊은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확인하기도 하는데, 우리 같은 노인들은 힘들지."

"쓸 곳이 별로 없어. 살 게 없으니까 자식들 오면 주유소에서 기름이나 넣어준다고. 또, 작은 슈퍼에서만 사라고 하는데(농촌기본소득 사용처를 병원·약국·학원 제외하고 연 매출 10억 원 미만 사업장으로 한정한 것을 의미. -편집자 주-) 노인들은 쌀 한 포대 사다 놓으면 두세 달은 잡수고, 세제 한 번 사다 두면 두세 달 쓰고 그렇잖아. 여기에는 노인들이 많으니 처음 받았을 때 많이 사러 가고 지금은 또 별로 안 가."

"병원에서도 쓸 수 있는 건 좋은데 여기 없으니까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해요. 그런데 어르신들에게는 혼자 버스 타고 병원 가는 것도 일이에요. 물론 이건 기본소득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이처럼 주민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다양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적어도 농촌기본소득 지급 자체에 부정적인 주민들은 없는 듯 보였다. 시범사업 초기 단계이다 보니 보완할 점들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와 연천군은 사업 시행 전 간담회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사업의 실효성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청산면 지역에서 시범사업 전 과정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실무를 담당하는 연천군 농업정책과 농업정책팀의 여성회 팀장을 만나 들어봤다.

 

▲ 청산면에 위치한 한 주유소. 주유소 입구에는 '농민·농촌기본소득' 사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라이프인
▲ 청산면에 위치한 한 주유소. 주유소 입구에는 '농민·농촌기본소득' 사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라이프인

5월부터 농촌기본소득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지급 후 주민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지급 전에는 주민들에게 농촌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잘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인분들에게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등록하고, 지역화폐 사용처임을 알리는 스티커를 붙이라고 안내해도 잘 안 하시더라. 그러다가 5월 말에 농촌기본소득이 지급되고 난 뒤에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 지역경제과에 지역화폐 가맹점 등록을 신청하면 처리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그 절차를 빨리 진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분들에게는 바로 체감이 되나 보다 싶었다.

농촌기본소득의 사용처가 한정돼 있어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맞다. 그런 민원이 많다. 그런데 시행 전부터 주민자치협의회나 이장협의회 같은 곳들과 함께 토론하며 의견을 반영해 왔다. 사용 지역을 연천군 전체로 하는 방안도 고민했는데, 어떤 주민분이 그러시더라. 이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올해 62억 원 정도인데, 이 돈이 청산면 안에서 소비되도록 하는 것과 연천군 전체에서 소비되게 하는 것이 같겠느냐고. 이 사업의 원 취지대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사용 지역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물론 앞으로도 주민분들이 계속 불편함을 이야기한다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도에 건의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초반이라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사용처도 늘어나지 않겠나. 지금도 벌써 미용실이나 편의점 같은 곳들이 새로 생겼다.

사용처가 부족한 것 외에 또 다른 애로사항도 있나?

주민들이 '이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야'라고 인식하여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간 사업이 아니라, 도에서 목적성을 갖고 하달한 사업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귀찮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셨다. 왜냐하면 도에서는 사업의 실효성 분석을 해야 하니까 여러 차례 설문을 하고 샘플 조사를 하는데, 그런 과정들이 너무 번거롭다는 것이다. 또, 주민들이 협력하고 공동체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일이 이 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인데, 코로나19 때문에 함께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기가 어려웠다.

시범사업 시행 후 청산면 인구가 7%가량 증가했다는 경기도의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도가 발표한 인구 유입 통계를 보면 20대 유입 인구도 증가한 상황에서 30대 유입 인구는 생략돼 있다.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해당 통계는 세부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겠지만, 20대 유입 인구 증가는 직업군인들이 주소지를 옮긴 효과라고 파악하고 있다. 청산면 지역에 군 부대가 있는데, 부대 내 군인들이 주소지를 옮기지 않고 살다가 이번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주소지를 이전한 경우들이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농촌기본소득이 지역의 정주 인구를 늘리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려면 어떤 것들이 보완돼야 한다고 보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민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고, 주민들의 변화를 촉발하는 공동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8월에 경기도농수산진흥원에서 마을공동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공모한 적이 있다. 그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지역 안에서 할 수 있을지, 혼자 준비하려면 어려우니까 공동체 안에서 준비할 수 있지 않을지를 고민하면서 들어온 젊은 분들도 계시더라. 그러니까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공동체를 지원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들을 늘리고 아이 보육과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조금씩 '그 지역에 가면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더라'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도 들어오고 주민들도 애향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동의한다. 농촌에서 인구 이탈이 발생하는 이유는 소득 문제만은 아니다. 인프라 부족이라는 문제도 클 것이다.

교육이나 문화생활, 일자리 모든 부분에서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들은 아니다. 다만,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5년 동안 주민들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군에서는 공동체 활동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할 예정이다. 지역 내에서 스스로 문제를 발굴해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마을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면, 지역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겠나. 예를 들어 교육 문제 같은 경우에도 주민들이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서 학교가 반영하도록 요구한다면, 지역의 교육도 바뀔 것이다. 우리 지역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원과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변화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주민설명회. ⓒ연천군
▲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주민설명회. ⓒ연천군

설명을 듣다 보니 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강조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 사업의 행정 행위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실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조건을 따지지 않고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면 이 사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지역화폐를 쓰면서 지역 내 사업체들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의 의미를 알리고, 돈을 단순히 소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지역에 있는 가게 규모도 조금씩 커질 것이고, 멀리 나가야만 구할 수 있던 물건을 우리 마을에서도 구할 수 있게 되지 않겠나. 예산을 투입해서 진행하는 사업인 만큼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홍보와 교육도 이루어져야 하고, 나아가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농촌기본소득은 결국 농촌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매개이자 문제해결 역량을 키우는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주민들이 지역에 애착을 갖고, 우리 지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을 인식하고, 함께 희망과 고민을 나누는 과정이 결국 농촌이 살길이 아닐까. 이 사업도 주민의식과 공동체가 함께 살아나야 시너지 효과가 나서 농촌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례를 통해 농촌에서 기본소득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다른 지역에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함께 지켜보고 응원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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