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떠나간 도시, 우리는 클리블랜드 모델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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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떠나간 도시, 우리는 클리블랜드 모델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까?
책 '모두를 위한 경제' 리뷰 
  • 2023.08.30 14:15
  • by 정화령 기자

지난 5월, 전라북도 군산시는 5년간의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마치고 고용지표가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발표했다. 군산시가 발표한 '고용위기지역 최종 운영성과 및 평가'에 따르면 취업자는 2018년 대비 6.5% 증가했으며 특히 상용 근로자는 증가, 임시‧일용근로자 수가 감소했다. 또한 청년고용률은 2015년도 이후 최대치인 33.1%를 달성해 전반적인 고용지표가 고용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과 GM(제너럴모터스) 군산공장 철수 후 2018년 4월 고용위기지역으로 최초 지정됐다. 이후 지원사업을 3차례 연장하며 총 106억 7천만 원의 국비를 투입해 군산고용복지센터를 운영하고, 고용유지지원금을 비롯한 제도지원을 확대했다. 지난해 말부터 일부 재가동한 군산조선소도 지역 고용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다. 이런 배경으로 지난 8월 2일 열린 고용노동부 주관 '2023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 대상'에서 군산시가 2개 부문 장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군산시 인구를 살펴보면 만 65세 이상은 19.8% 증가하고 만 15에서 29세 청년층 인구는 11.8% 감소했다. 총생산 비중도 여전히 제조업이 가장 높긴 하지만 매년 지속해서 줄고,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이 증가하는 추세로 산업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군산조선소를 운영하는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의 경우, 청년층 구인이 어려워 인력난을 겪는다는 보도도 전해졌다. 꾸준한 인구 감소로 작년에는 '소멸 위기 지역'으로 새롭게 포함되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 6조 6천억 원의 민간 자본 투자가 이뤄지며 기대를 모으던 새만금 기반 시설 개발 사업도 전면 재검토 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외부 기업 유치로 지역이 다시 부흥할 수 있다는 기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이다. 

 

▲ 제인스빌 이야기 표지. ⓒ인터넷 교보문고
▲ 제인스빌 이야기 표지. ⓒ인터넷 교보문고

이처럼 기업이 떠난 도시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없으면 다시 살아날 동력을 갖추기 어려운 것일까? 한국에서 철수하기 10년 전인 2008년 12월,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GM 공장 조립 라인이 멈췄다. 1923년부터 GM의 쉐보레를 생산한 제인스빌 지역은, 라디오 방송국은 뉴스를 공장의 근무 교대에 맞춰 편성하고 식료품은 GM 노동자 임금 인상 폭에 맞춰 상승할 정도로 기업과 지역이 밀접한 곳이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에이미 골드스타인이 쓴 '제인스빌 이야기(공장이 떠난 도시에서)'는 공장 폐쇄부터 6년간의 변화를 면밀하게 담고 있다. 특히 GMer(GM 직원)가 아니더라도 협력업체 등 관련 종사자와 그 가족 삶의 변화도 적나라하다. 

도시의 어두운 곳에서는 10대 수백 명이 연쇄적 가계 파산의 희생자가 되었다. 중산층 가계의 지위가 낮아지며 노동계급 가족은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연쇄적 하락을 견디지 못해 약물에 의존하거나 자녀를 두고 떠난 부모도 있다. 또 다른 일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책 내용 중 일부 요약)

에이미 골드스타인은 '외부의 그 누구에게도 도시의 중산층을 재건하기 위한 묘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리한다. 경제 활성 프로젝트로 새로운 일자리가 2천 개 생겼지만, 공장 폐쇄 대비 4천5백 개 줄어든 수치이다. 그녀는 경제 발전에 사활을 건 운동가들과 지역 주민 다수가 경험하는 현실 사이에는 '낙관주의의 격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지역에 물류센터도 들어오고 2019년에는 제인스빌이 속한 록카운티의 실업률은 4% 아래로 떨어졌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실질 임금은 눈에 띄게 하락했고 제조업은 90년대 대비 45% 감소했다. 공장이 떠난 도시에 고용률이 오른다고 다시 사람들이 행복해질 거라는 건 지나친 낙관주의라는 뜻이다. 

 

▲ 모두를 위한 경제 표지. ⓒ인터넷 교보문고
▲ 모두를 위한 경제 표지. ⓒ인터넷 교보문고

반면 NGO '협력하는 민주주의'실행 부의장인 마저리 켈리와 의장 테드 하워드가 쓴 '모두를 위한 경제'에서는 클리블랜드와 프레스턴에서 일어난 경제 민주주의 운동으로, 대기업이 주도하지 않고 거기에만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경제 체제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를 '록펠러가 세우고 록펠러가 내버린 도시'라고 표현한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의 본거지였고, 클리블랜드 철강 노동자들은 막강한 노조를 조직해 한때 전국에서 시간당 임금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1960년대 백인 거주자와 기업이 대거 빠져나가며 가장 가난한 대도시로 추락했다. 여기에서는 자본주의가 훑고 지나간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여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경제에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민주주의가 정치뿐 아니라 경제와 일터를 아우르는 모든 사회 영역에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한 철학자 존 듀이의 말을 빌린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경제 발전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다양한 비자유를 없애는 과정'이라고 했다. 민주적인 경제 발전으로 개인이 실질적으로 번영하는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경제 시스템이 붕괴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기업이 금전적 추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동체‧자유‧민주주의 등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을 망가뜨리면 시스템도 망가진다.

이 책에서는 함께 번영하기 위한 경제 설계의 원칙으로 다음 일곱 가지를 이야기한다. ▲공공선을 우선시하는 '공동체의 원칙' ▲배제된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포용의 원칙' ▲지역 자산을 마을에 두는 '장소의 원칙' ▲자본보다 노동을 우선하는 '좋은 노동의 원칙' ▲공정과 지속가능성에 기반한 경영 구조를 설계하는 '민주적 소유권의 원칙' ▲생태계를 지키는 '지속가능성의 원칙' ▲사람과 지역에 투자 목적을 두는 '윤리적 금융의 원칙'. 클리블랜드는 이중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와 유니버시티 병원을 중심으로 한 장소의 원칙으로 클리블랜드를 분석했다. 지역에 뿌리내린 '앵커 기관'이 마을 협동조합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지역의 협동조합들은 흑자로 전환했고, 에버그린 세탁 협동조합은 직원을 세 배로 늘릴 수 있었다. 

물론 저자도 민주적 경제 시스템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토피아는 아님을 전제한다. 하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입장에 서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공동체를 지키고 모두의 안녕을 위해 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의 원칙을 되새길 수 있다. 또한 클리블랜드뿐 아니라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책 끝에는 민주적 경제 체제를 만드는 여러 단체를 소개하고 있어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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