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주거를 넘어 의료, 교육까지 강한 유대로 함께 하는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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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주거를 넘어 의료, 교육까지 강한 유대로 함께 하는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
  • 2024.03.01 16:00
  • by 정원각 객원기자

필자는 2023년에는 ▲동고동락협동조합 ▲부산커피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멘퍼스 ▲전남 목포 건맥1897협동조합 ▲참손길공동체협동조합 등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립한 사회적경제기업 모델을 소개함으로써 현재 어려운 사회적경제기업들이 배울 수 있는 정보와 팁을 제공하였다면 2024년에는 ▲주택 분야 ▲에너지·태양광 분야 ▲의료복지 분야 ▲사회서비스 분야 ▲자금조달 분야 ▲판로 개척 분야 ▲자원재생 분야 ▲컨설팅·인큐베이팅 분야 등 분야별 사회연대경제조직들을 방문해 어떻게 활동하고 운영하는지 생생한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주택만 아니라 교육비, 의료비 모두 무상인 협동조합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의 조합원 중에서 개인의 전체 소득 가운데 24%를 은혜공동체에 내면 본인과 자녀의 교육비, 의료비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서 실현하고 있는 수준의 복지다. 그리고 로버트 오언이 미국 인디애나주에 가서 시도했던 뉴하모니, 도산 안창호 선생이 꿈꾸던 이상촌, 현재 지구촌 일부에서 실현하거나 추구하는 커뮤니티의 한 모습이다. 서울 도봉구 도봉산 아래 자리하고 있는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을 방문하여 이 협동조합의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이사장을 지낸 박민수 목사를 만나 24년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했다.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은 은혜공동체라는 개신교 모임에서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 서울시 도봉구에 있는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
▲ 서울시 도봉구에 있는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

은혜공동체는 2000년, 초대교회, 제자 공동체 등 예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러한 삶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기존의 교회, 예배 등의 형식과 다르고 성경에 대한 생각은 폭이 넓다. 그렇다고 기성 교단에서 생각하는 사이비, 또는 이상한 종교집단은 아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최대 교파 중의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 속해 있는 교회다. 종교인들이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영국, 독일, 북유럽에는 개신교가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는 가톨릭교회가 참여하고 관계하고 있다. 

가톨릭, 개신교 등 종교인들이 초기부터 참여한 협동조합 운동

협동조합 초기에도 그랬다. 협동조합의 출발은 1760년 런던 템스강(River Thames) 하구인 울위치 차담 지역에서 해군의 배를 수선하는 노동자들이 만든 협동조합이지만 사라졌다. 망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한 첫 협동조합이 1844년 영국 랭커셔주에 설립한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이다. 이 선구자조합의 창립 조합원 28명인데 세 그룹으로 구분된다. 첫째. 노동자들의 보통 선거권 쟁취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고 뉴질랜드까지 유배를 갔던 사람들, 즉 차티스트들이다. 둘째, 로버트 오언이 시도했던 협동조합 운동을 추구하는 오언주의자들이 있다. 셋째, 기독교인으로서 평등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이다. 
 

▲ 협동조합 건물은 3층이지만 휠체어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다.
▲ 협동조합 건물은 3층이지만 휠체어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다.

비단 기독교만이 아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불교, 이슬람 등 다른 종교에서도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물론 협동조합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종교적 세계관과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종종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에 있어서 그렇다. 협동조합 내에서 의사 결정을 할 때, 모든 조합원은 평등해야 하는데,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동조합과 종교는 지혜롭게 서로의 선, 경계를 잘 구분하고 존중해야 다고 생각한다. 

은혜공동체교회에서 교회를 떼고 은혜공동체로 하다

은혜공동체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지향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의 삶을 공부하고 훈련했다. 수년 동안의 공부와 훈련 속에서 기독교의 핵심이 산상수훈에 녹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즉, 교회라는 유형의 공간이나 헌금보다는 예수의 산상수훈의 설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린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한 자,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 등 이 사람들이 산상수훈에 나오는 복 받을 사람들이다. 2014년에는 은혜공동체교회에서 교회를 떼고 은혜공동체로 부르기로 했다. 

건물로서 교회와 헌금보다 산상수훈이 더 소중한 사람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산상수훈의 삶을 함께 살면서 실천하는 훈련을 했다. 그런데 부부도 같이 살면 처음에 많이 부딪히기 십상이다. 하물며 전혀 다른 남남이야 어떻겠는가? 그래서 함께 사는 연습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은 크게 늘어났다. 두 사람이 있을 때, 관계는 1개지만 두 사람에서 한 사람이 더 늘어나면 두 개의 관계가 아니라 네 개의 관계가 생긴다. 거기에 한 사람이 참여하여 네 사람이 되면 8개 이상의 관계가 생긴다. 다섯, 여섯 기하급수적으로 관계가 늘어난다. 그리고 그 많은 관계에서 비교, 비난, 비하, 지적, 질투, 연애, 끼리끼리 등의 일들이 발생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갈등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는 훈련을 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국내 어느 방송의 다큐 '적게 벌고 더 잘 사는 법'을 보고 좋은 영감을 받았다.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 입구에 있는 글.
▲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 입구에 있는 글.

드디어 모두 한집에 같이 살아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2015년 땅을 샀다. 2016년 설계를 하고 하반기 공사에 들어갔다. 땅을 살 때에도 은혜공동체 참여자 전체가 다니면서 부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설계를 위해 입주자와 건축사가 약 20차례 회의를 했다. 이런 과정과 논의들은 건축 이후 갈등을 줄이고 소모적인 논란을 예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연립 주택을 생각했으나 달라졌다. 공유공간이 중심이면서 개인 공간도 가질 수 있는 공유주택이 핵심 개념이었다. 이런 구상을 실현할 법인으로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 출자금은 1인 1천만 원으로 어른 조합원 30명, 9개 가구, 입주할 사람은 아이들 포함하여 45명이었다. 현재의 입주자는 일부 변화가 있어 47명이다.  

연립주택형이 아닌 공유주택으로 하고 조합원과 30년 임대 계약을 하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연건평 400평으로 공사비, 인허가, 각종 세금 등을 합하여 약 50억 원이 소요됐다. 이 중에서 조합이 사용하는 2, 3층은 30억 원이 들었다. 조합에서 주택을 후분양제로 진행하여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은혜공동체의 자금으로는 매우 부족했다. 그래서 완공하고 입주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외부 자금을 빌려야만 했다. 마침 서울시가 2012년 설립한 한국사회투자에서 저리의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입주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전세 보증금으로 상환했다. 임대 계약은 30년이다. 구청에서는 30년 임대 계약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몇 번을 반려하다가 겨우 승인을 받았다. 주택협동조합이 약자인 임차인을 위해 30년 임대 계약을 하는 것에 대해 공무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었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주택협동조합 내부 /  도서관 / 1층 카페 / 지하의 모임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주택협동조합 내부 /  도서관 / 1층 카페 / 지하의 모임실 

건물의 2층, 3층에는 1인실, 2인실, 가족실 등의 주거 공간과 도서관, 공동 세탁소, 공부방, 접견실, 식당 등이 있고 1층은 카페와 게스트룸이 있다. 지하에는 함께 모여 전체 행사를 할 수 있는 회의실 겸 공연실이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 1층과 지하 공간에서는 주택협동조합의 조합원만 아니라 은혜공동체 구성원들이 성경 공부, 예배, 인문학 강좌 등도 하고 대안학교도 운영한다. 엄격하게 구분하면 1층과 지하 공간은 은혜공동체의 소유이고 2, 3층은 주택협동조합의 소유다. 하지만 주택협동조합이 은혜공동체에서 시작했고 구성원이 역시 은혜공동체 소속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때문에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대안학교는 일반인 자녀들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 

제2의 주거 공간은 주택협동조합으로 그리고 제3의 주거 공간은 주식회사로

은혜공동체는 이제 주택협동조합 2호와 주식회사 방식의 임대사업자를 추진하고 있다. 주택협동조합 2호는 현재 있는 주택협동조합에서 걸어서 5분이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서 땅파기 공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주택은 주식회사의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주식회사로 진행하려고 하는 것은 협동조합에 대해 우리 사회 시민들의 인식만 아니라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 주택 관련 공기업들의 이해가 너무 없어서 사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30년 임대차 계약 기간에 대해 공무원들이 여러 번 반려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사회적경제에 호의적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제1주택협동조합 근처에서 터파기를 하는 제2주택협동조합. / 은혜공동체의 제1주택협동조합, 제2주택협동조합이 있는 마을.
제1주택협동조합 근처에서 터파기를 하는 제2주택협동조합. / 은혜공동체의 제1주택협동조합, 제2주택협동조합이 있는 마을.

문재인 정부 시절 정부는 임대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임대사업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면서 장려했다. 그런데 그 장려가 수백 채의 집을 소유하면서 투기 목적으로 임대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자 사회 문제가 됐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임대사업자들을 규제했는데 이번에는 주택협동조합과 같은 선의의 사업자들이 유탄을 맞았다. 한 예로 지역의 한 주택협동조합이 다세대 주택을 매입하여 협동조합을 했는데 갑자기 거액의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해서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은 임대사업자 중에서도 주택을 매입이 아니라 새로 건설한 방식이어서 종합부동산세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주택협동조합에 가입을 위해서는 1년 동안 교육에 참가해야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은 주택을 협동조합이라는 법인이 소유하고 조합원들은 평생 임차인으로 살 수 있는 협동조합 본래의 모습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보기 어려운 협동조합이다. 이러한 은혜공동체에 대한 소식이 소문이 나자, 조합원에 가입하려는 문의가 많 늘어났다. 그래서 내부에서 방법을 정했다. 조합원이 되기 전에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데, 구성원이 되려면 다른 조건은 없이 1년 과정의 공동체 학교를 졸업하면 된다. 그리고 공동체 정기 모임에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주택협동조합 조합원만으로 가입하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왜 이런 공동체 생활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공부하고 동의하며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타 종교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오늘공동체  

이제 은혜공동체는 명칭도 '오늘공동체'로 바꾸려고 한다. 은혜라는 단어가 특정 종교를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2023년부터 1년이 넘게 불교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태국에 있는 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아속공동체'를 방문하여 공부도 하고 교류하고자 한다. 기독교를 포함한 불교 타 종교 그리고 사회에 대한 다양한 공부 등을 통틀어서 인문학 공부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문학에 대한 공부와 소양이 은혜공동체, 주택협동조합에서도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은혜공동체의 제1주택협동조합.
▲ 은혜공동체의 제1주택협동조합.

은혜공동체의 비전은 함께 주거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주택협동조합의 조합원이면서 은혜공동체의 회원인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아플 때 무료로 치료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소득의 24%를 내면 자신과 자녀들에게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종의 복지이자 공제다. 은혜공동체의 회원(어린아이 포함) 130명 중에 이 무상 교육, 무상 의료에 참여하는 사람은 77명이다. 소득의 24%로 정한 것은 이스라엘이 포로 시기에 꿈꾸던 공동체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 이미 적자가 아니라 흑자이며 기금도 약 3억 원 이상이 적립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 협동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은혜공동체

앞으로 '오늘공동체'가 어떻게 발전하고 성숙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실험만으로도 이미 큰 족적을 남겼다. 이제 제2주택협동조합, 제3공동주거시설 등이 완성될 때는 지금보다 두 배, 세 배가 아닌 다섯 배, 여섯 배의 분야에서 협동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관계가 2명에서 3명, 4명 늘어날 때 관계와 갈등이 산술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처럼 협동의 성과 역시 사업과 참여자의 규모에 따라 크게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공동체, 은혜공동체주택협동조합을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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