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라이프] 농사말고 할매랑 장사해볼까?
상태바
[村라이프] 농사말고 할매랑 장사해볼까?
경남 함양, '고마워, 할매' 청년마을사업 운영자 및 참여자 숲속언니들, 심현점 씨 인터뷰 ①
농촌지역 청년유입으로 노인층 문화 향유 및 돌봄 효과, 창의적 활동과 수익창출 등 활력 제고
  • 2023.07.28 10:22
  • by 이새벽 기자

'한 달 살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유행한 지도 한참이다. 그만큼 대도시가 아닌 비수도권, 농촌에서의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지 않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계 수단, 소위 '먹고사니즘'의 문제를 비롯하여, 과연 지역에서 나의 삶을 잘 꾸릴 수 있을지 여러 방면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렇기에 귀농·귀촌에 관심 있는 청년들은 지역을 일단 '경험'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에서 관계인구 유입을 위한 다양한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혹은 외지 청년들과 마을 주민들의 협업 방식으로 지역을 경험하도록 돕는 조직·기관들이 있다. 라이프인은 지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 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곳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나에게 할매란 편한 친구다. 오늘 즐거웠던 일, 짜증났던 일을 속 시원하게 이야기 나누며 맞장구 치고 웃을 수 있는 친구. 심심할 때 찾아가서 윷놀이도 하고 화투도 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 같다." (경상남도 함양군 정착 청년, 김승현 숲속언니들 홍보팀장) 

"나에게 도손이(‘도시에서 온 손녀’라는 뜻으로, 함양 2주 살이 프로그램 참여자를 의미)란 손주다. 할머니 보고 싶어 왔다며 애교 부릴 때 너무 좋고 고맙다. 밥이라도 먹여 보내고 싶은 손주다." (경상남도 함양군 거주민 72세 심현점 씨) 

많은 농어촌 지역이 소멸위기 문제를 겪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10월 인구감소지수를 활용해 전국 지자체 중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지정 및 고시했다. 여러 지자체가 소멸위기를 겪는 큰 이유는 청년들의 이주다. 많은 청년이 더 나은 생활 여건과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반면, 도시의 높은 인구 밀도와 치열한 경쟁에 지쳐서 여유로운 지역의 삶을 꿈꾸는 청년들도 있다. 그러나 귀촌하는 청년은 많지 않다. 귀촌이 왜 어려운 걸까? 

귀촌을 희망하는 청년이 실제 도시를 떠나 지역에 가서 살기 위해서는 그곳에서의 일과 삶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농촌 지역에서 농업뿐 아니라 다른 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음을, 다채로운 문화를 누릴 수 있음을 확인한다면, 청년들은 농촌에서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경남 함양에 있는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에서는 함양 2주 살이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 노인과 외지 청년 간의 다양한 협업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프로그램 참여자 중 5명이 함양에 정착을 시도했고 그 중 4명이 계속 거주 중이다. 청년마을을 운영하는 숲속언니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한데, 맏언니는 지역민과 소통하는 문제해결사다. 

'고마워, 할매'에서 청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숲속언니들의 박세원 대표(콩콩언니), 협업에 참여 중인 현지 노인 심현점 씨(진해댁), 외지 청년에서 함양 주민이 된 김승현 숲속언니들 홍보팀장(엄지언니)과 이야기 나눴다. 

▲ 숲속언니들. (왼쪽부터)라바언니, 콩콩언니, 엄지언니, 푸름언니, 단지언니. ⓒ숲속언니들
▲ 숲속언니들. (왼쪽부터)라바언니, 콩콩언니, 엄지언니, 푸름언니, 단지언니. ⓒ숲속언니들

콩콩언니 "귀농귀촌, 나중이어야 할 필요 없죠. 지금이 더 좋아!"

콩 농사를 지어 '콩콩언니'라 불리는 박세원 대표는 함양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퇴사하고 귀향했다. 많은 청년이 충분한 일자리, 편리한 생활환경, 문화 향유 등의 이유로 도시 생활을 선호하는데, 박 대표는 반대로 시골생활을 택했다. 

Q. 도시생활을 뒤로 하고 귀촌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박세원: 나는 대학 교수님의 추천으로 방송 매체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때 같은 부서 선배와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함양에서 살다 왔고, 어머니는 함양에서 콩 농사를 짓고 된장을 만드신다"고 하니 선배가 "넌 좋겠다. 다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왜 이런 힘든 일 하려 하냐. 고향 내려가서 살 수 있는 것이 난 부럽다"고 말했다. 그때 '왜 내 꿈을 먼저 이룬 사람이 오히려 나에게 부럽다고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내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른 뒤 내가 귀향한다면 그것을 지금 실현해도 좋겠다.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Q. 숲속언니들은 어떻게 결성됐으며 기업미션은 무엇인가? 

박세원: 2019년 함양으로 내려온 나는 농업 관련 일을 전혀 몰랐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 관련 교육을 들을 때 숲속언니들 창립 멤버 6명을 만나게 됐고 내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가진 제품을 스스로 판매해보고자 온라인 가게 개설을 목표로 모였고, 이후 청년마을을 운영하게 됐다. 농촌에서 농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다. 

▲ 함양 2주 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지 청년이 현지 노인에게서 두부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숲속언니들
▲ 함양 2주 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지 청년이 현지 노인에게서 두부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숲속언니들

Q. '고마워, 할매'의 특징은 현지 노인과 외지 청년을 연결하며 지역생활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를 주 사업 내용으로 삼은 배경과 이유는 무엇인가? 

박세원: 맏언니 '단지언니'가 함양에서 터를 잡으면서 삼휴마을 인근에 마련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전부터 할머니들이 캐 오신 쑥과 양파를 팔아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외지 청년이 함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계층이 여성 노인이다. 여성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30% 이상이다. 외지 청년과 할머니를 연결하면 지역생활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요소로 음식을 떠올렸고, 할머니의 요리법을 청년들이 배워보는 것을 사업 내용으로 삼았다. 

진해댁 "청년들과 식당 열고 장사하니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아" 

함양에서 진해댁으로 불리는 심현점 씨는 삼휴마을에서 거주한 지 20년이 넘었다. 지난해 함양 2주 살이 프로그램 ‘안녕, 할매’부터 올해 '할매랑 한상차림', '할매랑 팝업식당', '할매랑 손맛배송' 등 요리 협업으로 사업모델을 실험하는 '할매의 부엌'에 참여하고 있다. 농사 외에 즐길 거리가 없었는데 청년들이 와서 함께 그림도 그려 즐겁다는 심씨. 

▲ 심현점 씨가 외지 청년과 요리하고 있다. ⓒ숲속언니들
▲ 심현점 씨가 외지 청년과 요리하고 있다. ⓒ숲속언니들

Q. 외지 청년들을 만나니 어떠한가? 
심현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오더라. 할머니들이 청년들에게 농사나 요리를 알려주곤 하는데, 반대로 우리가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구나'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요즘은 그들을 위해 중매를 서 주고 싶다. 할머니들끼리 모였을 땐 '그 청년 참 좋더라' 하면서 도시에서 온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곤 한다. 그들이 시골에서 계속 살면 좋겠다.

Q. '고마워, 할매'에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제일 의미를 느낀 활동은 무엇이었나?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나? 

심현점: 정말 다양하게 활동했다. 양파로 김치 담그기, 두부 만들기, 매실 활용 요리법 전수 등. 식당을 열어 할머니들은 주먹밥을 만들고, 청년들은 버섯전골을 만들어 함께 팔기도 했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두부 만들기다. 나도 두부 만드는 방법은 몰랐는데 '고마워, 할매' 활동하면서 배웠다. 그래서 제일 기억에 남는다. 식당을 열어 장사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이런 경험을 하니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다. 이제는 할머니들이 이전과 다르게 호미질을 하면서도 '오늘 활동은 무엇이 좋더라' 하면서 이야기도 나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이 동네는 복 받았다'고 말한다. 청년들이 왔다가 돌아가기 전에는 항상 할머니들을 위해 요리해서 대접해주는데 그들의 음식 요리법을 배우고 싶다. 

▲ 삼휴마을 거주민과 함양 2주 살이 프로그램 4월 2기 참여자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숲속언니들
▲ 삼휴마을 거주민과 함양 2주 살이 프로그램 4월 2기 참여자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숲속언니들

Q. '고마워, 할매' 참여자로서 숲속언니들, 도손이들, 함양군에게 바라는 점은 각각 무엇인가

심현점: 이런 사업을 지원하는 정부에 고마운 마음이다. 시골에 내려온 청년들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주거시설 등 안정된 생활기반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요즘 시골에 사람들이 자꾸 떠나는데 시골로 올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주면 하는 바람이다. 
청년들이 여기에 와서 우리와 소통하니 결실이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 이곳에 정착해 아기를 낳는 모습도 보고 싶다. 20년 동안 동네에서 아기 태어나는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인터뷰 ②에서 계속)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새벽 기자
이새벽 기자
기자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