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버리지마] 멸균팩, '재활용 안 어려움'이 되려면
상태바
[날 버리지마] 멸균팩, '재활용 안 어려움'이 되려면
  • 2023.10.04 17:01
  • by 정화령 기자

 

기술과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지구의 자원이 마치 무한하다는 듯이 사용해 왔다. 그 결과로 오늘날 망가진 지구 환경을 목도하고 있으며,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따라서 선형경제에서 벗어나 순환경제로 나아가고,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원의 소모와 폐기, 폐기물의 환경 영향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장 핵심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잘 분해되지 않고 유해 물질을 유출하여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라이프인은 플라스틱 재활용과 미세플라스틱, 탄소 절감 효과가 뛰어나 플라스틱의 대체재로 주목받는 멸균팩 활용 등을 둘러싼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기후위기의 해결책으로 자원 재활용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적극적인 행동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중 고급 펄프로 제작하는 종이팩은 재활용하기 좋은 원료이다. 하지만 내부가 비닐 소재로 코팅되어 있어 재활용 과정이 일반 '종이'와 달라, 흔히 생우유 용기로 쓰이는 '종이팩'은 종이와 분리해서 배출해야 한다.

생우유 외에 주스나 멸균우유 등 다양한 식음료 및 생수, 화장품, 치약에까지 사용되는 멸균팩은 내부가 알루미늄으로 코팅돼 있다. 그 때문에 재활용 과정이 종이팩보다 더 복잡하다. 대표적인 멸균팩인 테트라팩의 경우 외부가 6겹으로 코팅되어 있는데 재활용에는 불리하지만, 습기‧안정성‧강도 측면에서 모두 우수하며 산소와 냄새, 빛을 차단하는 데도 탁월하다. 또한 손으로 쉽게 찢어서 개봉하는 종이팩과는 다르게, 뚜껑이나 빨대를 꽂는 구멍을 별도로 둔다. 두꺼운 코팅층이 있어 종이팩에 비해 화려하게 인쇄가 가능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 종이팩과 멸균팩 분리배출 시범사업 포스터 이미지 중 일부. (현재는 시행하지 않음) ⓒ환경부
▲ 종이팩과 멸균팩 분리배출 시범사업 포스터 이미지 중 일부. (현재는 시행하지 않음) ⓒ환경부

이런 구별 점과 플라스틱 대비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장점 때문에 멸균팩 사용량은 점점 늘고 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2014년 16,744t이던 멸균팩 출고량은 지난해 32,128t으로, 8년 동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전체 종이팩 중 약 47%를 차지한다. 하지만 국내 멸균팩 재활용 체계는 아직 빈약하다. 자체 조사에 따르면 멸균팩 재활용 설비를 갖춘 업체는 국내 한 곳으로, 종이 타월로 재생산하고 있다. 생협과 제로웨이스트 숍 그리고 몇몇 음료 업체에서 멸균팩 회수와 재사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전체 생산량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부터는 멸균팩 재활용이 더 어려워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환경부는 지난해 9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 기준'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 예고했는데, 그중 2024년부터는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에 '재활용 어려움' 등급이었으나 표시 적용 예외였던 '알루미늄박이 부착된 종이팩'을 적용 예외 항목에서 삭제한 것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대체제로 멸균팩을 사용한 생수를 출시하고,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활동을 진행해 온 아이쿱자연드림에서는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을 표기하면 재활용률은 앞으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며, 환경부의 해당 방침 철회를 요청하는 '종이 멸균팩 재활용 지지 서명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서명 운동은 홈페이지에서 현재 약 22만 1,600명이 참여하고 있다. 

ⓒ자연드림 홈페이지
ⓒ자연드림 홈페이지

이 내용에 관해 환경부 담당자는 "재활용 공정이 수월하지 않아 원래부터 '재활용 어려움' 표기가 돼야 했었으나, 업계와 간담회 등을 통해 유예 기간을 가졌었다. 하지만 시범 사업을 해봐도 회수율이 너무 낮고, 재활용 공정도 확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멸균팩이 재활용이 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함이다"라고 '재활용 어려움' 표기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활용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재활용 어려운 종이이기 때문에 수거를 더 철저히 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해서 고시가 개정된 것"이라며 앞으로 재활용 업체가 늘어나고 보편화되면 보통, 우수, 최우수 단계로 상향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한 "생협 등에서 활발하게 자체 수거하고 다양하게 재생산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전체 멸균팩 사용량에 비춰보면 미미한 양이기 때문에 앞으로 전반적인 회수 체계에 관해서는 계속 논의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 차원의 멸균팩 재활용은 불가능할까? 2021년 한국산학기술학회 논문지에 발표한 '해외사례 분석을 통한 국내 멸균팩 재활용 연구'에 따르면 벨기에는 멸균팩 재활용률이 무려 99.4%에 이른다. 쓰레기 배출 단계에서 분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불량 반입 시에는 경고장을 부착하고 수거하지 않는다. 종이와 별도로 재활용 가치가 높은 음료 용기의 분리수거가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다. 스웨덴은 전국에 약 5,800개의 분리수거 장소를 설치하여, 멸균팩도 별도로 수거한다. 스웨덴 역시 폐지와 음료팩은 별도로 구분하여 재활용 기업으로 보내지고, 생산 공정에서 펄프 외에 알루미늄이나 접착제 등 이물질은 열병합발전소로 보내져서 필요한 열로 재사용된다.

연구에서는 "일반 종이 폐지와 철저한 분리 및 배출 시스템이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멸균팩 회수율이 낮은 근본 원인이 멸균팩 전용 재활용 회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 생협에서 종이 타월뿐 아니라 건축 자재까지 다양한 소재로 재탄생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자원 순환을 위해서는 수거와 재활용, 제도의 삼박자가 맞춰져 멸균팩이 더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