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의 가능성 ②] 오래된 미래,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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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제의 가능성 ②] 오래된 미래,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공제
  • 2021.08.05 22:20
  • by 송소연 기자

공제(控除)는 항목에서 차감한다는 뜻이다. 공제(共濟)는 협동조합방식의 보험을 의미한다. 그런데 생협법에서 공제(共濟)가 공제(控除)된 듯 추진되지 않고 있다. 2010년 생협법 개정으로 생협은 공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지만,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격적으로 공제사업을 운영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라이프인은 생협 3.0시대가 오기를 희망하며 복지 사각지대의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확장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공제(共濟)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사회적경제 공제사업이 왜 필요할까? 유럽과 일본의 경우 사회적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공제가 보험시장의 40%를 차지하며 소비자의 힘으로 사회안전망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공제는 많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과 영리보험 사이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사회적경제 공제사업의 상부상조를 바탕으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만든다면 사각지대의 틈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사회적경제에서 공제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협동조합과 공제는 태생이 같은 제도라고 볼 수 있다. 17세기 영국 노동자들의 우리나라의 전통 사회의 계 모임과 비슷한 우애조합(Friendly Society)과 상호부조협회를 만들어 공제사업을 했다. 당시 사회보장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조합원들끼리 기금을 모아 질병과 장애, 사망 등의 위험에 대처했다. 이후 공제회는 협동조합, 공제조합, 노동조합으로 분화했다. 특히, 당사자들이 단결하여 사업을 일으키려던 협동조합 설립자들은 소액을 정기적으로 모아서 축적하는 공제회의 경험에서 자본을 모으는 방법을 배웠다. 
 

로치데일 공정개척자조합 건물
▲ 로치데일 공정개척자조합 건물.

1844년 영국 랭커셔주의 작은 마을 로치데일에서 노동자 28명은 1파운드씩 모아 세계 최초의 소비자협동조합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토드레인가에 식료품 점포를 임대해 품질 좋은 식량을 저렴한 가격으로 조합원에게 판매했고, 상부상조와 자치, 자조의 운영원리는 근대적 협동조합의 근간이 되었다.

로치데일의 선구자들로 불리는 이 협동조합의 창립자들 대부분 직공이자 노동운동가, 해고자였다. 당시 협동조합은 우애조합법(Friendly Society Act)에 따라 법적으로 등록을 할 수 있었는데, 1832년 오언주의자들이 밝힌 협동조합의 원칙과 1837년 설립된 오언주의 공제회의 정관을 참조했다고 한다.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은 "소비자협동조합은 소비자를 위해서 효율적으로 생산을 조직하고, 소비자의 자각한 요구에 기반한 생산을 하고 잉여는 소비자에게 환원한다."라는 소비자협동조합의 원형을 만들었다. 또한, 사업에서 창출한 부는 조합원의 도덕적, 사회적, 복지 서비스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쓰였다. 조합원 공제사업을 담당하는 로치데일 공정 질병 공제조합(Rochdale Equitable Provident Sick and Benefit Society)은 협동조합 보험조합(CIS; Co‐operative Insurance Society)로 재편되어 회복기 환자를 위한 휴양소를 지어 운영하고 1904년부터는 사망보험금을 지불할 정도로 조합원의 복리후생에 관여했다.  

일본의 협동조합 공제는 1947년~1949년에 걸쳐서 각종 협동조합 법이 제정된 이후 본격화되어 일본 경제·사회적인 부분에서 주요 기틀이 되고 있다. 기존의 사회보장체계에 속하지 않는 일자리나 새로운 부문에서 협동조합 공제는 정부보다 더 빠르게 당사자들을 직접 구제하기도 한다. 2017년 기준, 단체 수는 약 2천6백 개, 조합원은 약 7천 7백만 명, 계약 건수는 약 1억 4천만 건, 수입공제료는 약 6조7천억 엔, 지급공제금은 약 4조2천억 엔이다. 

# 워커즈 컬렉티브
일공동체인 워커즈 컬렉티브의 조합원은 출자·운영·노동에 참여하는데, 고용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워커즈컬렉티브공제를 운영해 이들은 취업활동 중 부상, 사망, 휴업 시 수당을 준다. 작은 규모지만 알차게 조합원의 안전망 역할을 한다. 

# 생활클럽생협
지역 노인 돌봄을 제공하는 생활클럽생협은 조합원 공제회인 NPO법인 ACT를 설립했다. 1,800여 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해 있으며, 경증장애, 후유증치료, 돌봄 봉사 중 발생할 수 있는 개인배상책임을 모두 커버하는 종합의료보장을 실현한다.

# 소고생협
니이가타현(新潟県) 소고생협은 공제생협에서 소비자생협을 창립한 일본의 대표적 생활협동조합이다. 니이가타현은 2004년 7월 대홍수, 10월 대지진(진도 7)이 발생했는데 소고생협 임직원은 재난지역을 직접 방문해 공제 신청을 받았다. 총 약 4천 세대를 방문해 약 43억 5천만 엔을 조합원에게 지불했다. 이때 이미 조합원과 유대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어 모든 절차가 간소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더 많은 편익 제공이 가능했다. 
 

▲ 라군아로(Lagun-Aro).
▲ 라군아로(Lagun-Aro).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이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협동조합은행 '라보랄 쿠차(Laboral Kutxa, 구 노동인민금고)'와 라군아로(Lagun-Aro)라는 공제 사업이 있다. 라군아로는 프랑코 독재 정권이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되면서 공공복지체계로부터 소외되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을 합쳐 놓은 형태에 실업급여까지를 담당한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몬드라곤의 파고르전자 가전이 파산했다. 라군아로는 파고르 가전 모든 조합원에게 다른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직한 조합원에게 최대 3년까지 급여의 80%를 실업급여로 지원하고 실직자를 고용한 조합에게 1인당 6만 유로(8천여만 원)의 고용지원금을 지급해 재고용을 촉진했다. 그 결과 조합원 1,900명 중 단 한 명의 해고자는 없었다. 400명의 퇴직자를 제외한 모두가 몬드라곤 소속 다른 협동조합으로 재배치 됐다.

2015년 기준 라군아로 가입자는 약 2만8천 명에 의료혜택을 받는 가족까지 하면 7만 명이다. 연금의 경우 평균 매년 1인당 약 1,750만 원(월 146만 원)정도 수령한다. 1인당 실수령액의 경우에는 2010년 이후로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는데, 연금 이외에 추가적로 정부에서 자영업자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을 같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생활수준은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 사회도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노동 등 불안전한 노동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장제도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관련 기본법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정되어 공제사업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공제가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공제조합 설립을 위한 기본법이 없다.

2010년 개정된 생협법에 따라 생협도 공제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제 시행을 위한 감독 기준, 시행령 시행규칙 마련 등 후속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공제는 사회적경제 분야인 협동조합 조직에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관계법의 미비로 인해 10년 동안 지지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경제조직의 공제사업에 대해 재무건전성, 리스크 관리의 취약성과 은행보다 보험사에 비해 규모가 작고 운영에 있어 전문성에 대해 소관부처와 금융당국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충분히 유럽이나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극복 가능한 문제다. 스스로 참여하고, 함께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결정하고, 실현해 나가는 공동체만큼 강한 복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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