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김밥을 'Sushi'에서 'Kimbap'으로 독립시켜 수출하는 사회적기업 ㈜복을만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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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김밥을 'Sushi'에서 'Kimbap'으로 독립시켜 수출하는 사회적기업 ㈜복을만드는사람들
'삼전사기(三顚四起)'로 현재까지 온 복만사 대표 조은우
사회적기업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회적기업 전도사
올해 예상 매출 70억 원 중에 절반 정도를 유럽, 미국 등에 수출하는 사회적기업
사회적기업 취약계층 고용을 위한 인건비 지원은 기업 성장의 마중물
  • 2023.09.27 14:22
  • by 정원각 객원기자

2023년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11년을 맞는 해로 협동조합 법제화를 비롯하여 각 사회적경제 조직의 제도화를 점검할 시점이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정책이 크게 축소되는 기조 속에 침체국면에 처할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구시 동구 안심마을 ▲전남 영광군 여민동락 ▲전남 목포 건맥1897협동조합 ▲경남 창원시 내서푸른주민회 ▲충북 옥천고래실 등 사회적경제 분야 조직들의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타 사회적경제기업이 참고할 수 있게 모범적인 현장 기업들을 어떻게 활동하고 운영하는지 생생한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에 나가서 편의점 등에 있는 김밥을 보면 영어로 'Sushi' 또는 'Korean Sushi'로 되어 있다. 그런 표기를 볼 때 기분이 착잡해진다. 이유는 알다시피 초밥과 김밥은 전혀 다른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국가 브랜드 파워에 의해 sushi라고 쓰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쓰기 시작했는지 또는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오랜기간 동안 김밥과 전혀 다른 음식인 스시(sushi, 초밥)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김밥을 'Kimbap'으로 쓰면서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 대단한 일의 출발이 자본 규모가 큰 대기업도 아니고 수도권도 아니다. 서울에서 가장 먼 경남 하동에 있는 사회적기업 ㈜복을만드는사람들(이후 '복만사')이다.

취약계층 고용, 지역 농산물 사용, 김밥을 'sushi'가 아닌 'Kimbap' 등 세 가지 사회적 가치 실현 

김밥을 '스시(sushi)'가 아닌 'Kimbap'으로 표시한다는 것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이름으로 시장에 진입한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기존의 명칭이 확보해 놓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모험이다. 사회적기업으로 취약계층 고용이라는 사회적 가치 한 가지만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복만사는 김밥 재료로 국내산 특히,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가치를 더 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김밥이라는 명칭을 제대로 사용한다'는 음식문화적 가치를 추가했다. 사회적 가치를 하나 추구할 때마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 김밥을 Kimbap으로 수출하는 제품들.
▲ 김밥을 Kimbap으로 수출하는 제품들.

첫째, 취약계층 고용에 대한 것이다. 복만사가 고용하고 있는 취약계층은 농촌에 사는 어르신들이다. 나이가 많으면 젊은 사람들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취업이 젊은 사람들에 비해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취약계층을 고용한 기업에 대해 세금 감면이나 4대 보험 등 직간접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물론 전액은 아니다. 해당 정책 참여 연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둘째, 지역 농산물 사용이다.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내산, 지역 농산물이 수입 농산물보다 비싼 것은 일반적이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많은 기업들은 소비자 가격을 낮추거나 이윤을 높이기 위해 값싼 수입 재료를 사용한다. 셋째, 김밥의 영어식 이름을 'Sushi', 'Korean Sushi'에서 'Kimbap'으로 되찾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해외에 우리나라 음식 이름이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는 것이며,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명칭 사용에 따르는 시장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처음에는 사회적기업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조은우 대표

그러면 대기업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니며, 사회적으로 유명한 기업도 아닌데 왜 이런 3중의 어려움을 감수할까? 이에 대해 '㈜복을만드는사람들'의 창업자인 조은우 대표에게 들을 수 있었다. 조 대표의 사업 경력은 나이에 비해 꽤 오래됐다. 20대 중반부터 외식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경제적으로 빨리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회적기업을 알게 된 후에도 사회적기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 가운데 3분의 2를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 또는 기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동의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하동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회적기업 '에코맘의산골이유식'을 함께 창업했지만 스스로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사회적기업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 스토리를 정리했다.
 

▲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설명하는 사회적기업의 영역.
▲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설명하는 사회적기업의 영역.

가정 형편도 어려웠지만 공부에 대한 취미가 없기도 했다.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대학은 애초부터 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고 좋아했다. 그래서 이후 직업도 디자인 쪽에서 일을 하려고 학원에 다녔다. 그렇지만 대학을 안 나온 학원 경력은 직업을 가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침 학원에서 디자인 학과를 뽑는 2년제 대학에 다녀 보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게 됐고,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서울에 있는 디자인 계통의 직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월급이 너무 적었다. 서울에서 정상적으로 살기 힘든 수준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

진주에 돌아와서 ‘화씨화로’라는 삼겹살 식당을 개업했다. 열심히 했더니 사업이 잘됐다. 그리고 2호점도 냈다. 한 달에 순수익이 1천만 원 넘게 들어왔다. 식당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했다. 시간이 남는 낮에는 꽃집도 했을 정도로 열심히 장사했다. 하지만 어려운 집을 일으켜야 했고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서울에 갔다. 이번에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개인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2011년 신사동에 '반기다(飯氣茶)'라는 죽집을 열었다. 이후 '에코맘의산골이유식'을 창업한 오천호 대표(조은우 대표는 오천호 대표의 선배)와 함께 일을 했다. 죽집을 한 것은 고령화 시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판이었다. 쫄딱 망해서 진주에서 외식업으로 번 돈을 다 까먹었다. 온라인 판매로 승부를 보고자 했으나 신사동 그 가게에서는 죽 제조 시설을 할 수가 없었다. 시장 조사부터 법적 조건 등에 대해 준비가 부족했다.
 

▲ 당시 사업을 했던 화씨화로와 반기다.
▲ 당시 사업을 했던 화씨화로와 반기다.

하지만 그 실패에서 이후 사업에 대한 아이템은 얻었다. 죽 또는 이유식에 대한 시장 가능성이다. 두 사람은 오 대표의 고향인 하동에 내려와서 이유식 공장을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상황을 알아보니 최소한 공장을 지을 땅 정도는 있어야 했다. 사업에 실패한 두 사람에게 땅을 구입할 자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농업회사 슬로푸드(주)를 경영하는 이강삼 대표와 만나게 됐다. 이 대표는 매실 가공 공장을 세우려고 하던 땅이 있다며,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곳에 이유식 공장을 하라고 했다. 너무나 기뻤다.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생산했으며,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천호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은우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기업이 사업과 이윤에 충실하면 되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한 회사에 두 사람의 CEO가 있으면 회사가 어려워진다는 생각으로 오천호 대표에게 맡기고 나왔다. 

어려운 시절을 책을 통해 극복

죽집 반기다의 실패에 이어 두 번째 힘들었던 시기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었다. 다행히 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책의 힘이었다. 시골 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씨가 쓴 책 중에서 '자기혁명'이란 책이 있는데 거기에 '사람에게 큰 시련, 고통을 주는 것은 하늘이 그 사람을 성장시키려고 주는 시련이다'라는 성현의 이야기가 조 대표를 붙잡았다. 책이 없었으면 무너졌을 것이다. 겨우 추스르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하동이었고 '한다사푸드'라는 이름의 개인 사업체였다. 
 

▲ 한사다푸드 / 하동찰호떡
▲ 한사다푸드 / 하동찰호떡

하동은 경남에서 관광이 어느 정도 되는 편인데 하동을 상징하는 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템을 빵으로 했다. 처음에는 '하동찰빵'으로 했는데 별 호응이 없었다. 이번에는 '하동찰호떡'으로 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괜찮았다. 이후 다섯 가지 색으로 한 '오색호떡'을 출시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호떡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하나는 계절적인 성격이 너무 강해, 겨울 외에는 안 팔리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가격이 너무 싸서 고급화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아이템을 바꿔야 했다. 아이템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전환을 하기로 했다.

장사에서 사업으로,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세 가지의 중요한 변화를 주었다. 먼저 회사를 개인 사업체에서 주식회사라는 법인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개인 자영업, 장사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한다는 의미였다. 다음으로 회사 명칭의 변화다. 한다사푸드에서 '복을만드는사람들'로 변경했다.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복을 담아서 사회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고객, 소비자 나아가 사회를 중심에 두겠다는 의미로 질적 전환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사회적 가치의 내용은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지역 농수축산물 소비에 기여하는 사회적기업는 것이다. 하동에서 사업을 하면서 지역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한 것이다.
 

▲ 치즈스틱을 먹으려고 줄을 선 모습과 치즈스틱 생산.
▲ 치즈스틱을 먹으려고 줄을 선 모습과 치즈스틱 생산.

2015년 예비사회적기업에 지정이 되었다. 그리고 첫 제품으로 '치즈스틱'을 출시했다. 치즈를 기본으로 하고 농수축산물을 매칭하고 빵가루를 입혀서 튀기는 것인데 반응은 아주 좋았다. 이렇게 변화하는 시기에 하동의 다른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도움을 받았다. 자금 부족으로 공장을 세우지 못해서 재첩 공장 빈 곳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하동율림영농조합법인의 공장에서 만들 수 있게 해 주었다. 좀 있다가 이강삼 대표가 다시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대표가 자신의 형을 설득하여 300평을 저렴하게 빌려주어서 복만사의 공장을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치즈스틱에 대한 반응은 백화점 등에서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호응이 컸다.

15호점까지 나갔던 프랜차이즈는 포기

2018년에는 평소에 꿈꿔왔던 프랜차이즈를 시도했다. 대구광역시 동성로의 매장에서 테스트를 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았다. 이후 15호점까지 늘렸다. 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5개 중에서 장사가 잘 안되는 3~4곳이 문제였다. 잘 되는 곳은 프랜차이즈 가입자가 스스로 홍보도 하고 시식도 하고 열심히 한다. 그러나 잘 안되는 곳은 본인의 노력보다 본사에 계속 전화를 한다. 조 대표 혼자 영업, 홍보, 경영 등 다 하는 구조인데 하루 열 번 이상 전화를 하면서 요구하는 가입자의 민원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프랜차이즈는 또 다른 차원의 사업이었다. 프랜차이즈는 당분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고 프랜차이즈 매장들을 점차 줄여 갔다.

고속도로 휴게소 공급과 홍콩에 수출을 시작한 치즈스틱으로 2019년 매출 18억 원

이러던 중에 2018년 일산킨텍스에서 열린 식품 관련 박람회에 참가했다. 그 자리에서 고속도로 휴게소를 약 20개를 운영하는 사업체 담당자와 연결이 됐다.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20개의 고속도로 휴게소에 개별 납품을 하다 보니 운반비 등이 커서 수익도 낮고 몸도 힘들었다. 그런데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230곳 중에서 130곳에 납품을 하는 전문 유통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자기들에게 공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렇게 연결되다 보니 2019년에는 치즈스틱 단품으로 매출이 18억 원까지 올라왔다. 아울러 박람회에서 연결된 홍콩의 바이어도 치츠스틱을 수입했다. 2018년, 2019년은 그동안의 실패를 보상받는 장밋빛 시기였다.

냉동 비건 김밥으로 사업 아이템을 확대

이런 내용을 기반으로 2019년에는 사업을 확대했다. 김밥을 하기로 한 것이다. 대지 2천 평의 공장 부지에 공장과 사무실 등 건물 500평의 규모를 추진했다. 2018, 2019년 사업 실적이 좋아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도 시설자금 대출이 쉬웠고 신용보증기금의 사회적기업 특별자금이 도움이 되었다. 마침 농촌기술센터의 사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긴 것이다. 2019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2020년 6월 완공했다. 사업 아이템으로 냉동 김밥을 선택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동을 비롯하여 경남, 전남 등에서 나오는 농수축산물을 연계하기 위해서 김밥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냉동을 선택한 것은 수출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치즈스틱을 수입하는 홍콩의 파트너가 홍콩에서 약 20개의 식당을 경영하는데 자기 식당에서 김밥을 팔고 싶어 했다.
 

▲ 냉동 비건 김밥 제조 과정.
▲ 냉동 비건 김밥 제조 과정.

냉동 김밥을 만드는 데에도 과정이 많았다. 김밥에 수산물, 축산물 또는 그 가공 재료가 들어가면 해당 국가에서 수입 허가가 나지 않아서 농산물 재료만 넣을 수밖에 없었다. 비건 시장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수출입 관련 규정 때문에 농산물만 넣었는데 비건 김밥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김밥을 냉동으로 했을 때 터지는 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였다. 터진 김밥을 전자레인지로 돌리면 김밥이 부서지는 등 엉망이 되는 것이 문제였다. 현장 직원들과 많은 실험을 했다. 김밥에 들어가는 쌀, 김 등 원부 재료의 문제였다. 많은 노력 끝에 터지지 않게 성공했다. 다음 단계는 해동할 때 3분 이내에 해동이 되게 하는 것이 문제였다. 해동 시간이 너무 길면 기다리는 시간도 문제고 김밥이 말라서 식감이 딱딱해진다.

코로나19로 다시 파산 위기에 몰림, 세 번째 위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비건 김밥이면서 저칼로리 김밥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그리고 해동할 때 3분 이내에 골고루 다 해동될 수 있게 한 김밥트레이는 특허를 받았다. 이렇게 있는 힘을 다해 준비한 냉동 김밥 수출이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전 세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장 준공과 함께 침몰하게 생겼다. 기존의 치즈스틱도 매출이 크게 빠졌다. 치즈스틱의 주 매출이 백화점, 고속도로 휴게소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폐쇄 또는 식사 금지라는 철퇴를 맞은 것이다. 백신이 나오면 좀 나아지겠지, 치료제가 개발되면 풀리겠지 등등. 하지만 2년이 넘어가면서도 풀리지 않아 경영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더구나 김밥 분야 사업을 확장한 상황이라 더 어려웠다. 개인 사업으로 할 때는 혼자 고통을 당하면 그만인데 이젠 그럴 수도 없었다. 하동에 큰 물난리가 났을 때 '공장이 차라리 물에 잠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 마켓컬리에 올라가 있는 비건 김밥.
 ▲ 마켓컬리에 올라가 있는 비건 김밥.

그러던 중에 2021년 여름에 열린 식품박람회는 한 줄기 빛이었다.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기에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박람회에서 온라인 대형 유통채널 마켓컬리 관계자와의 만남은 오프라인이 팬데믹으로 무너지는 가운데 활성화되는 새로운 시장의 출발이 되었다. 사실 냉동 김밥은 냉장 김밥에 비해 공정이 훨씬 많고 정교해서 원가가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기존 국내의 김밥 관계자들은 냉장보다 냉동이 더 비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납품 가격이 안 맞아 고속도로 휴게소 등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마켓컬리에서는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건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납품하자마자 댓글이 첫날 100개, 다음날 수백 개, 천 개 등 달리는데 대부분 칭찬과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비건 김밥인데 프리미엄 성격까지 곁들여져 더 호응이 좋았다.

홍콩과 미국, 유럽 등에서 불티나는 한국 Kimbap 수출의 원조 복만사

수출도 점점 살아났다. 특히, 미국에서 유튜브 인플루언서인 재미 교포가 김밥에 대해 홍보를 한 다음 대박이 났다. 미국 유명 소매 유통 회사 중의 하나인 트레이더조(TRADER JOE'svg Inc.)에서 거래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첫 거래 물량 규모가 40톤 컨테이너 20개였다. 복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었다. 그래서 후발 업체인 경북 구미의 업체가 연결되었다. 복만사가 트레이더조측에 레시피를 제공했지만 아쉽지 않다. 물론 트레이더조에 6개월에서 1년 기다리라고 하고 복만사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 유럽 등에서 한국의 김밥(Kimbap) 열풍을 키워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 시기를 탈 때, 한국의 김밥이 성장하고 그 속에서 복만사도 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 복만사 휴계실 / ㈜복을만드는사람들
▲ 복만사 휴계실 / ㈜복을만드는사람들

이러한 판단은 적중했다. 복만사는 2022년 기준으로 12개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더 늘고 있다. 국내 판매 매출도 마찬가지로 성장하고 있다. 같은 해, 국내와 수출 합해서 매출액이 45억 원이었다. 2023년은 70억 원 매출을 예상한다.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냉동 김밥 수출은 수천억 원대로 성장할 것이다. 현재 코스트코와도 협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얻은 기쁨은 김밥을 Kimbap으로 부르지 못하고 Sushi로 부르던 시절을 끝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하동의 농산물, 완도의 김 등 국내 농산물 소비에도 한몫하고 있다. 현재 취약계층 어르신이 전체 40명의 직원 중에 60%다. 

김밥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기업 인건비 지원은 계속되어야

이제 복만사는 2024년 8월이면 사회적기업 지원 5년이 끝난다. 그러던 중에 정부가 2024년 사회적기업 예산 61%를 줄인다고 하니까 너무 안타깝다는 것이다. 물론 복만사는 인건비 지원이 없어도 경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적으로 김밥 이슈가 생겼을 때 생산설비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에 지원이 없어지면 아무래도 수출 규모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복만사가 성장할 때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사회적기업 인증 등을 거치면서 취약계층 고용에 따른 인건비 지원이 큰 힘이 되었는데 이제 다른 사회적기업들에 그런 기회가 사라진다고 하니 걱정이 많고 아쉽다는 것이다. 그런 지원이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복만사와 같은 기업을 만드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취약계층 고용에 대한 인건비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농촌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일부 정부 지원금을 포함하여 사회적기업이 지급하는 급여를 통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런 기회가 사라짐으로 인해 빈곤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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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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